그룹에서 솔로 선언, 여가수 봇물?

가수와 연기자, 경계선 모호… 전문성 지적도
음반시장 축소, 가수 매니저 기피현상 심각


최근 여성 그룹들의 해체와 탈퇴로 인해, 가요계에 솔로를 선언하는 가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연기로 전업하거나, 가수와 연기를 겸하고 있다. 일부 가요계 관계자들은 이런 현상이 ‘음반 시장 불황’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음반시장의 급격한 축소는 음반제작자들과 가수들을 어쩔 수 없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 하지만 일부에서는 ‘연기자’ 쪽으로 ‘쏠림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는 연예계 전반에 ‘전문성 상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들어 여성그룹의 해체와 멤버들의 탈퇴, 진로 전환 등이 줄을 잇고 있다. 가요계 여성그룹의 양대 산맥으로 여겨지던 핑클과 SES는 물론, 인기 상종가를 유지하고 있던 베이비복스, 샤크라, 샵, 슈가, 쥬얼리, 레드삭스 등의 멤버들 역시 그룹을 해체한 후, 멤버들이 개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중의 일부는 ‘솔로가수’로 활동하고 있고, 일부는 ‘연기자’로 전향해서 연기만 하고 있는가하면, 일부는 ‘연기+가수’를 병행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제 연기자로 봐주세요~”

우선, 인기여성 그룹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여가수들의 변신이 눈에 띄게 많은 편이다. 베이비복스의 윤은혜, 샤크라의 정려원, SES의 유진, 쥬얼리의 이지현, 핑클의 성유리, 베이비복스의 김이지, 레드삭스의 주은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여성 5인조 댄스그룹 베이비복스에서 탈퇴해 연기자로 변신을 선언한 윤은혜. 그녀는 MBC 드라마 ‘궁’에서 신세대 빈궁마마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면서 성공적인 연기자 신고식을 치렀다. ‘궁’은 당시 3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인기를 얻어 ‘궁’ 2탄 제작에 대한 논의도 진행중이다. 최근 방송되고 있는 KBS 월화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 역시 윤은혜의 밝고 쾌활한 연기 덕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4인조 여성 댄스 그룹 샤크라의 멤버 려원 역시 연기자 변신에 성공한 케이스. 샤크라의 멤버로서 6년 동안 활동했던 려원은 이름 역시 ‘정려원’으로 바꾸어 가수와 연기자로서의 이미지를 달리 하고 있다. 그러던 지난해 국민드라마로 불리던 ‘내이름 김삼순’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서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렀고, 이후 드라마 ‘가을소나기’에서 최저의 시청률로 마음 고생을 하는 등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 드라마 ‘넌 어느별에서 왔니’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 연기자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SES의 유진 역시 이제는 가수보다 ‘연기자’라는 타이틀이 더 잘 어울린다. 유진은 97년 바다, 슈와 함께 SES를 결성한후 가요계의 요정으로 데뷔해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이랬던 그녀가 2002년 드라마 ‘러빙유’로 연기에 도전, 밝고 귀여운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연기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원더풀 라이프’, ‘진짜 진짜 좋아해’ 등을 통해 이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성공한 가수출신 연기자 1호’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SES와 가요계 양대 ‘요정’으로 꼽히던 4인조 여성 그룹 핑클에서는 성유리가 연기자로 다시 태어났다. 98년 핑클의 멤버로 데뷔해 가수로 활동하던 그녀, 지난 2003년 SBS 드라마 ‘천년지애’를 통해 연기자 신고식을 치렀다. 당시 ‘~했느냐’, ‘~하거라’ 등의 말투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황태자의 첫사랑’, ‘어느 멋진 날’ 등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하면서 연기활동에 푹 빠져 있다.

이렇게 여성 그룹의 멤버들이 연기자로 변신에 성공하면서 최근 들어 여성 그룹 멤버들의 연기자 전업은 더욱 많아졌다. 레드삭스의 ‘주은’은 그룹에서 전격 탈퇴를 선언하고, 최근 한중 합작 드라마 ‘미로’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서 발판을 다지고 있다. 이밖에 쥬얼리의 멤버 이지현은 최근 소속사를 바꾸면서 연기자로서 변신을 꾀하고 있고, 베이비복스의 김이지는 KBS 드라마시티 ‘너무도 착한 그녀’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연기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솔로가 더 잘나가요”

인기 여성 그룹에서 탈퇴 또는 해체를 통해 ‘솔로’ 가수로 활동하는 여가수들 역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우선 핑클의 이효리, SES의 바다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들은 그룹에서 나와 솔로가수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샵의 이지혜, 슈가의 아유미, 베이비복스의 심은진, 레드삭스의 영인 등도 그룹으로 활동하다가 솔로로 전환한 여가수들이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역시 ‘연기’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효리 역시 2005년 ‘세잎클로버’를 통해 연기자로 변신을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면서 ‘이효리’의 연기력 부족 논란을 일으켰고, 이후 이효리는 쉽사리 연기를 다시 하지 못하고 있다.

베이비복스의 심은진은 2005년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심은진 역시 오는 9월 방송되는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에 출연하면서 연기에 도전한다. 심은진은 솔로 활동과 더불어 연기자 변신을 위해 연기수업을 꾸준히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샵의 이지혜는 그룹 해체 이후, 최근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지혜 역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연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 지금 연기 공부를 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연기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는 섣불리 연기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그룹에서 솔로 활동을 하면서 연기와 가수활동을 병행하는 여가수들도 상당수. 우선 쥬얼리 박정아, 샵의 서지영, 슈가의 황정음, 박수진 등이 대표적.
8월 25일 솔로앨범을 발표하며 이미 가수로서 노래와 끼를 인정받고 있는 박정아. 그녀는 가을에 개봉하는 영화 ‘날라리 종부뎐’에 여주인공을 맡아 ‘연기와 노래’를 병행하고 있다. 지난 22일 ‘날라리 종부뎐’ 촬영공개 현장에서 만난 박정아는 ‘철없는 종가집 며느리’ 역을 맡아 야무진 연기를 보여주며 ‘연기와 노래’를 둘다 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샵의 멤버 서지영은 이미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을 통해 연기자로서 변신을 꾀한 바 있고, 슈가의 멤버 황정음이나 박수진 역시 이제 노래보다 연기를 하기 위해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5년 사이 음반시장 4배 축소

그렇다면, 잘나가던 여성그룹의 멤버들이 이렇게 하나 둘씩 연기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한 방송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가요계의 불황이 너무 심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우선, 가요계에서는 오프라인으로 판매되는 음반의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 상태다. 그 이유는 인터넷을 통해 MP3 파일이 무분별하게 유통되면서 굳이 음반을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음반시장의 규모는 약 1,000억원 정도로, 5년전 약 4,000억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한국음반산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만장 이상이 판매된 앨범은 고작 4개에 불과하다. SG 워너비(스페셜 에디션), 김종국 3집, 버즈 2집, 동방신기 2집이 전부. 이중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은 40만장 이상이 넘은 SG 워너비의 음반이다.

2004년에 9개의 앨범이 20만장 이상의 판매를 넘었고, 2004년에도 50만장 이상의 판매를 넘은 앨범은 없다. 다만, 2003년에 김건모의 앨범이 50만장을 넘었을 뿐이다.
이렇게 해를 거듭할수록 음반시장이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자, 대부분의 가수들이 연기 쪽으로 선회를 하게 되는 것.

음반제작자들 “순식간에 수천만원 날렸다”

최근 만난 한 음반 제작자 A씨 역시 “요즘 같으면 음반제작은 다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라며 “너무 음반시장이 침체되어 있으니까 일할 맛이 안난다”고 토로했다. A씨는 “최근 신인그룹의 음반을 제작했는데, 판매율이 나오지 않는다”며 “음반제작에 들어간 몇 천만원을 순식간에 날렸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런 상황 때문에 대부분의 음반 제작자들이 가요계에 회의를 느끼고, 일을 접는가 하면, 다른 업종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음반 관계자 B씨 역시 이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있었다. B씨는 “이제 음반제작을 그만두고, 연기자 매니지먼트를 할 계획”이라며 “요즘에는 기획사에 찾아오는 연예인 지망생들에게도 가수보다는 연기자를 더 많이 권한다”고 밝혔다.

가요계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수의 매니저를 구하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한 인기 가수의 매니저는 “요즘에 매니저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돌아다니느라 힘들다”면서 “급여는 적고, 일은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 가수의 매니저를 기피하려는 현상을 보인다”며 힘들어 했다. 때문에 매니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가수가 아니라 ‘연기자’ 매니저를 원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전문성 상실”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한 방송 전문가는 “요즘에는 가수가 연기를 하고, 연기자가 가수를 한다”면서 “서로의 영역이 파괴되는 현상이 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걱정어린 지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수들의 연기 병행, 연기자로의 전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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