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에서 방만경영까지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감사원 감사(監査)에서 각종 비위(非違)가 드러난 안홍철(65) 전 한국투자공사(KIC)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 시작됐다. 8일 검찰과 소식통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최근 안 전 사장에 대한 고발사건을 형사2부(양요안 부장검사)에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 절차에 돌입했다. 이에 앞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정의당은 지난해 11월 11일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안 전 사장을 뇌물공여, 뇌물수수 및 업무상 배임(背任)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부펀드인 KIC는 정부가 보유한 외환(外換) 등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공공기관이다.


안 전 사장, 1년간 해외출장으로 2억 넘게 써 하루 188만 원꼴…
26건의 비위 혐의 찾아내…안 전 사장 공직 취업 제한 요구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안 전 사장은 KIC가 절대수익펀드 위탁운용사 선정 작업을 하던 지난해 1월 자신의 장녀가 일하는 A사(社)를 방문하고 A사가 최종 후보군에 포함된 투자실무위원회에 직접 참여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사는 지난해 4월 KIC의 절대수익펀드 위탁운용사로 선정된 4곳에 포함돼 연간 360만 달러의 기본수수료를 받게 됐다.


안 전사장은 또 2014년 12월 투자 검토 대상 회사가 운영하는 프랑스 파리 소재 호텔의 최고급 로열스위트룸에 묵고, 지난해 5월에는 역시 투자 검토 대상이던 회사의 홍콩 호텔 프레지덴셜스위트룸을 이용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안 전 사장이 투숙했던 파리 호텔방은 하루 숙박료가 2천100만 원, 홍콩 호텔방은 1천469만 원이었다. 안 전 사장은 애초 파리에선 숙박료가 하루 98만 원, 홍콩에선 26만 원짜리 방을 예약했다가 투자 검토 대상인 회사가 훨씬 비싼 방으로 바꿔준 편의를 거절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안 전 사장이 이끌던 KIC는 미국 프로야구 LA다저스 구단에 대한 투자 검토를 위한 재무자문사 선정 과정에서 평가기준을 특정 회사에게 유리하게 임의로 변경하고 각 회사 제안서의 정보를 사실과 다르게 평가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KIC 감사에서 이런 사실을 포함한 26건의 문제점을 찾아내고 안 전 사장의 공직 취업을 제한할 것을 정부 당국에 요구했다. 그러나 안 전 사장은 감사원 감사결과 발표 닷새 전인 지난해 11월 6일 전격 사임했다.

“고급 렌터카에 
장관보다 비싼 호텔 투숙”

특히 안 전 사장은 지난 1년여간 출장비로 2억 원 넘게 쓴 것으로 확인돼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5월 KIC가 정의당 박원석(비례대표)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안 전 사장은 2014년 1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14개월 동안 24차례에 걸쳐 115일간 해외 출장을 다녔다. 나흘에 하루꼴로 해외에 체류한 셈이다. 이 기간 안 사장의 출장비로 KIC는 총 2억1천681만 원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1일 평균 출장비는 188만 원에 달했다. 이중 항공료가 1억4천193만 원(65%)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숙박비용(총숙박일 72일)으로 총 4천159만 원, 하루 약 58만 원씩 사용된 점이다. 이는 공무원 여비규정상 장관 등 국무위원급에게 허용되는 1일 숙박비 상한인 471달러(약 51만3천 원)보다도 약 6만7천 원 많다.


KIC는 2014년 11월 안 사장이 싱가포르 포시즌 호텔의 디럭스룸에서 사흘밤을 머문 비용으로 225만 원을 냈다. 1박에 75만 원씩이다.


또 안 사장은 지난해 1월에만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하얏트 호텔, 뉴욕 그랜드하얏트 호텔, 런던 사보이호텔에서 3박씩 머물면서 각각 190만 원, 140만 원, 200만 원을 썼다.


고급 렌터카를 이용하는 데에도 상당한 비용이 들었다. 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아우디 차량에 332만 원, 2014년 7월 중순 미국 워싱턴DC에서 캐딜락 차량에 97만 원이 지출됐다.


이와 관련, KIC는 임원 출장비용을 사전 심사하도록 돼 있던 규정을 안 사장 취임 직후인 2014년 1월 사후심사로 고친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공기업의 출장비용 사전심사를 강화하도록 규정한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공무국외여행 개선방안’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게 박원석 의원의 지적이다. 박 의원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안 사장은 LA다저스 등 투자진행과정에서 드러난 규정 위반도 모자라 국가재정이 어려운 시기에 무리한 해외출장으로 방만경영까지 하고 있다”며 “기관을 사유화(私有化)해 국민세금을 탕진한 안 사장은 즉각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기재위,
KIC 폐지 추진할까?

한편, 지난해 2월부터 국회는 상임위 차원에서 KIC를 폐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희수(62)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새누리당·경북 영천시)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재위 전체회의에 앞서 여야 간사를 만나 한국은행이 KIC를 다시 흡수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특히 야당의 사퇴 요구를 안홍철 KIC 사장이 거부하면서 KIC에 대한 국정감사와 기관보고가 파행되는 점을 언급하면서 “이번 건이 불거지고 나서 보니 더더욱 KIC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10년 전 KIC를 만들 때는 국민연금 등 다른 연기금도 운용하려고 했는데, 결국 외환보유액만 운용하게 됐다”며 “외환보유액 운용에 굳이 독립기관까지 두면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쓸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KIC는 2013년 말 기준으로 720억달러(약 76조 원)의 외환보유액을 주식·채권 등에 투자했다.


그러나 KIC는 2013년 수익률이 미국, 중국, 캐나다 등 주요 7개국 국부펀드·연기금 가운데 6위에 그치는 등 실적이 기대 이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KIC가 20억달러를 투자한 미국의 투자은행 메릴린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가가 반토막 났다. 2014년 10월 말 기준 메릴린치 투자 지분에 대한 KIC의 손실액은 7억2천만달러, 누적 수익률은 -35.82%였다.


정 위원장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에게 다른 나라의 사례를 물어보니 대부분 중앙은행에서 외환보유액 투자·운용을 한다고 했다”며 “KIC가 무리하게 수익을 내려고 ‘사고(事故)’를 치는 것보다 한국은행이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기재위에서 ‘KIC 폐지론’이 급부상한 배경에는 KIC의 운용 행태나 실적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안홍철 사장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와 ‘방만 경영’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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