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IS, 헌법이 보장하는 미국 언론자유 최대 활용
“테러범에까지 언론자유 보장해야 하나?” 반론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미국은 언론자유와 총기소지의 권리가 완벽에 가깝게 보장된 나라다. 언론자유는 미국 헌법 제1조에, 총기소지 권리는 헌법 제2조에 각각 명시돼 있다. 이 가운데 언론자유 관련 문장은 “미국 의회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제정해서는 안된다”고 돼 있다. 입법을 통해 언론자유를 제한할 꿈도 꾸지 말라고 아예 헌법에 못 박아놓았다.

미국사회에서는 이 문장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을 제기하지 않는 한 언론자유에 재갈을 물릴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여간 위험한 주장을 펼치더라도 그것이 급박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한 언론자유라는 차원에서 너그러이 용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공적(公敵)으로 단단히 자리를 잡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인터넷을 종횡무진으로 활용해 전사(戰士) 양성에 성공하면서 미국 법학자들 사이에서 “이제 이 언론자유 규정을 재고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인터넷으로 전사 양성

이런 논의에 앞서 IS가 온라인을 통해 전사들을 모병(募兵)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본 정치인들은 미국 정부에 대해 IS의 이런 활동을 단속하라고 촉구했다.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정부가 빌 게이츠를 비롯한 정보기술(IT) 전문가들에게 위험한 인터넷 사이트 폐쇄를 요구해야 할 것이라면서 헌법 제1조를 어리석은 조항이라고 불렀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힐러리 클린턴도 정부가 이슬람 성전(聖戰)을 부추기는 웹사이트와 채팅방을 폐쇄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등장한 몇몇 법학자들은 이렇게 묻고 있다. “테러범들이 인터넷에서 폭력을 도발하고 있는 마당에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냐?”

미국에서 언론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보여주는 고전적인 사례는 관객이 가득 찬 극장에서 거짓으로 “불이야!”를 외치는 경우다. “불이야!”라는 고함이 장내에 치명적인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 언론자유는 보호받지 못한다. 그런데 군중의 쇄도(殺到)를 초래하는 것의 이점을 찬양하거나 심지어 그것을 부추기는 글을 쓰면 그것은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보아 불법이 아니다.

하버드 법과대학의 카스 R. 선스타인 교수는 이런 오랜 인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얼마 전 언론 기고문에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만 언론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미국식 기준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IS가 테러범 양성에 인터넷을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그 기준을 재고(再考)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밝혔다. 시카고대학 법학교수 에릭 포스너도 언론 기고문에서 “테러 공격으로 직접 이어지는 생각을 퍼뜨리는 IS의 능력은 언론자유 제한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포스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이 위험한 사이트들을 보지 못하게 형사 처벌하는 입법까지 제안했다. 그 법률은 모든 인터넷 사용자에게 적용되지만 포스너 교수가 중점적으로 차단하려는 사용자는 호기심에서 IS에 접속하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여러 차례 접속하면 형사 처벌하자고 그는 제안했다.

이러한 포스너의 구상에 대해 헌법학 교수 출신으로 워싱턴 소재 뉴아메리카재단 개방기술연구소의 선임연구위원인 데이비드 G. 포스트는 법률 블로그 ‘볼로크 음모’에 쓴 글에서 급진적인 견해를 억압하려는 노력은 “반대 견해에 대한 금지로 매우 쉽게 변질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시카고대학의 헌법 전문가 지오프리 R. 스톤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포스너와 선스타인은 “줄곧 도발적이었는데 학자라면 그래야 맞는다”면서 “하지만 나는 그들이 틀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우리는, 흥분했을 때 언론 제약이라는 면에서 현명한 접근법처럼 보이는 것이 그릇된 판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에 대한 허위 성명을 불법화했던 1798년 치안방해법이 연방주의자들에 의해 그들의 적인 토마스 제퍼슨 지지자들을 탄압하는 데 사용되었음을 상기시켰다.

‘현존하는 위험 테스트’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테스트’라는 개념은 1919년 셴크 대(對) 국가 간 재판에서 판사 올리버 웬델 홀름스가 내놓은 판결이유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하지만 그 개념이 오늘날과 같이 헌법적 보호를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서였다. 실제로 셴크 재판에서 재판장 홀름스 판사를 비롯한 재판부는 1차대전 당시 징병거부를 옹호한 어떤 사람에 대해 만장일치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어 같은 해 홀름스 판사는 언론 보호 강화의 초석이 된 반대의견을 냈다. 에이브럼스 대(對) 국가 간 재판에서 의견이 엇갈린 재판부는 미국의 1차대전 참전과 러시아혁명 반대 노력에 반대하는 전단을 배포한 혐의로 체포된 사람을 유죄 판결했다. 하지만 홀름스 판사는 루이스 브랜다이스 판사와 함께 그 격렬한 전단지가 구체적인 위험도 노정(露呈)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매우 싫어하는 견해의 표명을 억제하는 시도에 맞서 우리는 영구히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연방대법원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현행 의미를 확립한 것은,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단의 한 단원에 대한 유죄판결을 뒤집은 획기적인 1969년 브란덴부르그 대(對) 오하이오 주 재판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대법원은 해당 연설이 ‘긴급한 불법행동’을 부추길 가능성이 없는 한 정부는 선동적인 연설을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포스너는 한 인터뷰에서 그의 견해가 법조계에서 널리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헌법 제1조의 현대적 의미는 수백 년에 걸친 법적 사고(思考)와 균형을 반영한다면서 “기술과 사회가 변하므로 그러한 균형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대학의 법철학 교수 제레미 월드론은 헌법 제1조에 따른 혐오연설 보호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월드론은 한 인터뷰에서 “혐오연설의 인접 지대에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테스트는 부적절하다고 나는 주장했다”면서 “직접적인 위험 없이도 당신은 분위기를 더럽힐 수 있다”며 “때로 긴급한 위험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오래 기다리는 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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