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건국을 선포하고 남한 단독 정부가 수립 된지 올해로 68주년을 맞는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의 민주공화국 역사가 아직 1백년도 되지 못하고, 그마저 세계 유일의 분단국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의 민주국가가 되기까지의 민주투사들이 흘린 피가 결코 적다 할 수가 없다.

그 70년 가까이 민주주의와 국가부흥을 내세워 국민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정치인 숫자는 가히 기하급수적이고 그들의 정치욕구를 앞세워 태동된 정당들이 보수, 진보를 합해 부지기수였다. 그동안 태생한 정당들 이름만 열거해서 보면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가 적어도 수백 년은 넘은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건국 후 태동한 ‘자유당’ ‘민주당’을 거쳐 5.16후의 ‘민주공화당’을 지나 1981년 신군부 쿠데타에 의해 만들어진 집권당 ‘민주정의당’을 비롯해서 소위 2중대, 3중대 등으로 불린 관제야당이 다당제라는 이름아래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때 유치송 씨가 이끈 제1야당이랍시는 ‘민주한국당’을 비롯 신생야당의 숫자가 10여개가 넘었다. 세계사적으로 정당이름이 그때처럼 다채로운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 후 1990년 들어 노태우의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3당통합해 ‘민주자유당’으로 새 창당돼서 그 5년 후인 1995년에 김영삼 단일지도체제의 ‘신한국당’으로 당명(黨名) 변경됐다. 그리고 1997년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하여 ‘한나라당’으로 다시 창당했다. 이런 가운데 3당 합당에 반대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 약칭 ‘평민당’이 1987년에 창당을 했고, 다시 1991년에 당명을 ‘신민주연합당’으로 바꿔 약칭 ‘신민당’으로 부르면서 꼬마민주당으로 불린 이기택 대표 중심의 민주당을 새 ‘민주당’으로 신설 합당하는 절차로 소멸시켰다.

그리고 4년 후인 1995년 14대 대선 패배로 정계은퇴 선언을 했던 김대중이 정계복귀와 함께 신당 창당을 공식화해 ‘새정치국민회의’ 약칭 ‘국민회의’가 출범했다. 이는 결국 야당분열로 이어져 야당 중진급 국회의원들이 대거 낙선하여 야권 참패로 나타났으나, 1999년 15대 대선에서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과의 극히 이질적인 DJP연합을 통해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2000년 1월에 급기야 ‘국민회의’가 집권 ‘새천년민주당’으로 확대 개편된 것이다. 그 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이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은 또다시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들에 의해 참담한 분열을 맞아야했다. 노무현 당선 1년이 채 안된 2003년 11월 노무현계가 ‘열린우리당’으로 딴살림을 차려나갔다. 이렇게 해서 분당의 책임을 떠안은 열린우리당이 예기치 않게 노무현 탄핵소추사건의 여파를 타고 17대 총선에서 1988년 이후 처음으로 과반수의석을 차지하여 제1당으로 발돋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정치는 역시 생물이었다. 총선 후의 재보권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여지없이 참패하면서 탈당의원이 늘어나 과반의석이 무너지고, 결국 2007년 8월 ‘대통합민주당’이란 신당으로 이합집산한지 단 10일 만에 새로 복구된 민주당에 흡수되고 만 것이다. 이렇게 덩치를 불린 민주당이 다시 6개월 후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약칭 ‘민주당’으로 됐다. 복구됐던 민주당은 이같이 불과 얼마만에 다시 합당으로 소멸된 것이다.

이처럼 호화찬란한 우리 정당역사 탓에 이제 새 당명 짓기가 모랫더미 속의 진주알 찾기보다 어려워졌다. 얼마나 궁색했으면 옛 국민당 이름 중간에 ‘의’글자 하나 더 넣어 ‘국민의당’을 새 이름으로 내세우고, 언뜻 들으면 코믹스럽고 해괴해 보이기까지 하는 당명(黨名)이 만들어지는 지경이다. 이 상태면 건국 100년쯤 지나는 시점이면 이합집산으로 뜨고 사라진 정당 숫자가 어느 만큼이고, 또 그 이름들이 어떻게 지어졌을지 비소(誹笑)를 금치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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