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실(38), 고현정(35), 고소영(34). 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들이 잇달아 스크린에 복귀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드라마와 CF를 통해 톱스타 자리를 지켜왔던 여자 스타 세 명이 오랜만에 변화된 모습으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따라서 충무로 관계자들과 영화팬들의 기대가 벌써부터 대단하다. 최진실은 6년, 고소영은 4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하고 고현정은 첫 번째 스크린 데뷔작이다. 게다가 이들이 고른 작품의 성격이 파격적인 것으로 알려져, 톱클래스 여배우들이 왜 이런 작품을 선택했는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아이 잃고 세상에 복수

지난해 4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장밋빛 인생’의 히로인, 최진실. 그녀가 ‘맹순이 신드롬’을 뒤로 하고 스크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최진실이 심사숙고 끝에 고른 작품은 바로 ‘실종’. 최진실은 영화에서 자신의 아이를 잃고 세상에 복수하는 ‘혜정’역을 맡았다. 사실 그동안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최진실이 ‘장밋빛 인생’의 흥행분위기를 이어 드라마를 또 한편 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나돌았다. 특히 MBC에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KBS ‘장밋빛 인생’에 출연하게 해준 MBC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MBC 드라마로 복귀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했던 것. 하지만 최진실은 드라마 대신 영화를 선택했다. 이에 대해 최진실측의 한 관계자는 “MBC 이진석 감독의 드라마도 신중하게 검토했었지만, 마침 또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왔기 때문에 영화 쪽으로 급선회했다”고 밝혔다.

‘실종’은 지난달 25일 공소시효가 끝난 대구 개구리 소년 실종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네 명의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최진실이 맡은 ‘혜정’ 역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과자의 집에 살고 있는 마녀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다. 자신의 아이를 잃고 혼자 살다가 우연히 자신에게 찾아온 아이들에게 한없는 상냥함과 친절함을 베풀다가 이유없이 돌변해 집착하고 상처를 주는 이중적인 인물.최진실측의 한 관계자는 최진실이 맡은 역에 대해 “영화 ‘미저리’의 여주인공과 비슷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맡은 역할이 악역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사실 1994년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서 악역을 맡은 적이 있지만, 이후 ‘마누라 죽이기’, ‘편지’, ‘고스트 맘마’,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등을 통해 로맨틱 코미나 멜로드라마를 주로 선호해 왔다. 하지만 최진실은 전남편 조성민과의 이혼의 아픔을 겪은 후, 파격적인 변신에 두려움이 없어진 듯하다.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서 남편의 외도와 불치병으로 고생하던 아줌마 연기를 훌륭히 소화해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진정한 연기자로 거듭났다는 호평을 들었다. 때문에 이번에도 최진실이 어떠한 파격 변신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이번 영화는 최진실에게는 19번째 영화에 해당하며, ‘단적비연수’ 이후 6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다. 영화는 5월말~6월경에 촬영을 시작한다.

멜로물은 ‘이제 그만’

오랜 침묵을 깨고 나온 또 한명의 스타, 바로 고소영이다. 세 명의 여배우들 중 가장 먼저 영화 촬영의 스타트를 끊었다. 고소영이 지난 2002년 ‘이중간첩’ 이후 4년만의 복귀작으로 선택한 영화는 안병기 감독의 공포영화 ‘아파트’. 매일 밤 9시 56분이 되면 맞은 편 아파트의 불이 동시에 꺼지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고소영은 남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자기 일만 하는 커리어 우면 역을 맡았다. 고소영의 컴백이 임박해 지고 있을 무렵,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고소영이 그동안 워낙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이번 복귀작도 무난하고 세련된 멜로물을 선택하지 않을까”하는 전망이 많았지만, 고소영은 호러물을 택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고소영이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만큼, 그동안 멜로 위주의 영화를 탈피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고소영은 데뷔작인 ‘구미호’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도 지니고 있어, 호러물에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한편, 요즘 한창 영화촬영에 전념하고 있는 고소영은 극중 ‘불이 꺼지면 사람이 죽는다’는 설정 때문에, 일상생활 중에도 “절대 불을 끄지 말아달라”며 환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지난 3월 중순 촬영에 들어간 영화 ‘아파트’는 6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다.

홍상수 감독과의 ‘만남’

지난해 ‘봄날’로 10년만에 성공적인 방송복귀를 한 고현정은 이번에 생애 첫 번째 영화를 찍게 됐다. 사실, 드라마 ‘봄날’로 복귀하기 전에도 영화에 출연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제야 영화를 선택한 것. 고현정이 선택한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해변의 여인’이다. 홍 감독은 ‘생활의 발견’, ‘극장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등 작가주의를 고집했던 감독. 촬영하면서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 감독의 스타일 때문에 아직까지 영화의 내용에 관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동안 유명한 감독과 함께하는 드라마와 영화쪽에서 같이 하자는 러브콜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고사해오던 고현정은 왜 하필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선택했을까. 고현정의 이런 결정을 두고 세간에서 의혹의 눈길들이 많다. 우선 홍상수 감독은 촬영 당일 현장에서 콘티를 작성해가며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반면, 고현정은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되고 계산된 듯한 연기를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이 둘의 성격이 너무 다른데, 어떻게 같이 일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높아지고 있는 것.

또한 홍상수 감독의 작품에는 여배우의 노출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동안 청순하고 반듯한 이미지만 해왔던 고현정이 이런 부담감을 감수하고 홍 감독의 작품을 선택했다는 것 역시 의문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화 관계자들은 고현정이 이번 작품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홍상수 감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인정을 받고 있고, 홍 감독의 작품들이 국제 영화제를 겨냥한 작품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겠느냐”고 분석하고 있다. 홍 감독의 영화를 통해 해외진출까지도 노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변의 여인’이 홍상수 감독의 전작들과 얼마나 다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고현정이 이번 작품을 통해 색다른 변신을 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여성 이미지 과감히 버려

최근 이렇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톱스타들이 한꺼번에 영화로 몰리면서 여배우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충무로에 단비를 내려주고 있다. 한가지 특이한 점은 이 여배우들이 기존의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과감히 던져버렸다는 점이다. 최진실은 복수에 눈이 먼 악역의 스릴러물, 고소영은 냉정하고 차가운 호러물, 고현정은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작가주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배우들의 이런 이미지 변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영화 관계자는 “30대 중후반의 여배우들이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영화의 비약적인 발전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영화가 1,000만 관객 시대로 접어들면서 ‘영화가 돈이 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제작되는 영화수가 많아지고 있고, 소재와 장르도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 실제로 올해는 예년에 비해 20편 정도가 늘어난 100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된다고 한다.또한 30대 중후반의 여배우들은 신인 여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월등히 뛰어나다는 점도 주요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중견 배우 한 명이, 신인 배우 10명 보다 연기력이나 카리스마 면에서 훨씬 월등하다”면서 “대표적으로 문소리, 염정아, 심혜진, 이미연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라고 말해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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