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경제계가 주도하는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천만 서명운동’에 직접 서명하여 동참했다. 이같이 특정법안 처리와 관련해 현직 대통령이 민간주도 서명운동에 참여해 독려한 일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에 따라 총리를 포함한 여러 각료들의 동참도 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정치권이 반길 리 만무하다.

국회 무시, 압박, 국회제도에 대한 도전, 어쩌고 하는 정치권 반발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야권의 공격이 극심할 건 하나 마나 한 말이 될 것이다. 그런 속에서도 생각 있는 국회의원들은 초라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형편없이 추락한 자신들의 모습에 뼈 아파할 것도 같다. 오늘의 이런 상황을 역설로 말하면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그만큼 꽃을 피웠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은 서명운동을 주도하는 상공인들에게 “저도 노동개혁법, 경제활성화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했는데도 안돼서 애가 탔는데 당사자인 여러분은 심정이 어떠실지 싶다. 힘을 보태드리려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박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직접정치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과 행정부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이제 국민한테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대국민 직접정치’ 행보를 언급한바 있다. 이처럼 대통령과 정부가 직접 나서 1000만 명 서명운동이 탄력을 받게 되면 야권과 노동계의 부담이 커지고 4월 총선 정국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때문에 야권의 반발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지위와 본분을 망각한 처사”로 국회를 압박하고 무시한다는 공격이 드세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자신들에 대해서는 유감 표명 한마디 없다. 야당에겐 19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를 넘어 송장국회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딴 나라 얘기나 같다.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해대는 구제불능에 가까운 야당의 행태가 여당의 제 눈 제가 찌른 ‘국회선진화법’때문이라면 ‘국회후진화법(?)'이라도 빨리 만들어야 국민이 살아날 판이다.

의회 선진국인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 간에 알력이 심해지자 지난해 11월 불법이민자 470만 명의 추방을 유예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또 올 초에는 총기규제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둘 다 의회에서 법안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아래 대통령 고유권한인 행정명령으로 사안을 정리했다. 물론 입법과정을 생략하는 행정명령은 변칙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대통령의 기본적 책무가 민생일진데 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 대통령은 여론에 호소하고, 변칙 논란이 있더라도 주어진 고유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다소 무리가 있고 야권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오로지 민생을 위한 것이면 그게 정의인 것이다. 결코 헌법정신을 위배한 것으로 매도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고용창출, 일자리를 외치고 있으나, 하는 짓은 기득권층의 표를 의식해서 완전 거꾸로다. 이런 국회를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응징치 못하면 우리 대의정치는 사실상 끝장이다. 지금 박 대통령의 대국민 직접정치를 좌파 등이 모처럼 만의 호재로 삼아 맹렬히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입법과정을 뛰어넘는 대통령의 행정명령 보다 직접 국민들께 호소하겠다는 생각은 훨씬 민주적이라고 본다. 현 국회상황에서 더 이상 마땅한 민주적 방법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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