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대한민국처럼 ‘대권주자’로 쉽게 떠오르고 불려지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그게 우리 민주제도의 우월함 때문이라면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만, 상황이 전혀 그렇지가 못하고 지각없는 언론들의 근거 없는 ‘띄우기’ 때문이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대권 운운하기가 쉬워지고 소위 ‘잠룡’ 되기가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이나 별일 아니게 됐는지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DJ정권을 승계한, 아니 대선직전 이인제 대세론을 뒤엎고 DJ의 선택을 받은 그때까지만 해도 국회청문회 때 아버지뻘 되는 재벌 회장 앞에 명패를 집어던지는 등 독특한 의회활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 말고는 별반 내세울 것 없던 노무현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DJ의 복심으로 드러난 그때의 노무현 지지도는 5%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가 운동권의 결집과 좌파세력의 집중적인 지원을 토대로 개혁정치의 큰 별로 떠올라 국민가슴을 격동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의 대통령 당선 후 얼마 안 지나서 국민은 실망하고 낙망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은 바람만 잘 타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자리라는 국민적 조소가 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대통령 후보로 막대기만 꽂아 놓아도 너끈하게 당선 될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유권자들이 좌파정권에 몸서리를 쳤다. 그런 분위기 아니었으면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이고 지하철 요금이 얼마인지 조차 대답 못할 만큼 물정 모르는 재산가 대통령이 간신히 당내 경선에 이겨서 당당한 청와대 입성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 전까지 우리 국민정서는 대통령 자리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정치 밥 오래 먹었다고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심지어 총, 칼 들고 쿠데타로 빼앗은 정권도 모든게 ‘하늘의 뜻’으로 민심을 변화시킬 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 민심이 이제 대권 운운하는 사람들을 우습게보고 있다. 특히 근래의 야권 분열 현상이 결국 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빚어지는 힘겨루기이고 ‘추태’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야권성향의 유권자들마저 허망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는다.
아버지가 현직 대통령으로 있는 상황에서 아들 3형제 모두가 형사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진기록을 DJ정부가 세웠다. 아들 모두가 여러 가지 ‘게이트’에 복합적으로 연루되고, 이권청탁 대가로 기업에서 20억 원의 뇌물을 받은 아들이 소위 ‘최규선 게이트’에까지 동시 연루돼 수감된 데다, 큰아들 홍일 씨는 지병을 이유로 구속은 면했지만 ‘진승현 게이트’와 ‘이용호 게이트’에 함께 연루돼 가볍지 않은 처벌을 받았다.
더민주당의 문재인 대표는 이런 전력의 막내아들 홍걸 씨를 영입하고는 ‘DJ정신’의 계승 운운하여 홍걸 씨가 동교동계의 상징이나 되는 듯 추켜세우는 궁여지책이 보기 안쓰러운 모습이다. 여야 정치권의 대국민 접근방식이 이런걸 보면 우리 정치권이 유권자들 알기를 어느 만큼이나 우습게 아는지 확연해졌다.
이러니 정치와는 전혀 무관했던 엉뚱한 방면의 명망가가 하루아침에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르고, 겨우 정치권 옆에서 곁눈질 하던 사람이 대권 레이스에 뛰어드는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국회의원 가치가 바닥을 기고 있는 형편이나 국회가 정치의 큰 마당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터에 감히 지방자치단체장 한 번 못해본 초선의원끼리 야당 정치판을 주물고 있는 이 현실이 참 기이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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