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형래 감독이 또 일을 저질렀다. ‘용가리’ 이후로 4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심 감독은 이번에 SF 영화 ‘디워(D-War)’를 들고 나타났는데,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3분짜리 대모 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된 이후에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네이버 영화 평점은 관람전 9.34/10, 관람후 8.20/10(22일 기준)에 달했다. 영화 ‘태풍’이 관람후 5.83/10(22일 기준)의 평점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광고비를 받고 게시물을 게재하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도 네티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영구아트측에 티저 동영상을 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지난 20일 내년 여름 개봉을 앞두고, 영화 후반작업이 한창인 ‘영구아트무비’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SF 영화감독, 심형래씨를 만났다. 김포공항에서도 한참을 시골 논길을 따라 들어가서야 찾을 수 있었던 ‘영구아트무비’는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만든 회사다. 주변에는 황량하니 아무것도 없었는데, 알고보니 훗날 영화 스튜디오와 테마파크를 조성하기 위해 여유 공간이 많은 이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심 감독과 인터뷰 시작 전, 김민국 조감독이 먼저 회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전체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CG팀, 3D팀, 영구아트의 심장부인 메인 컴퓨터실, 편집실, 야외세트장, 영화에 사용된 갑옷과 헬기 등을 일일이 직접 보여주며, 자신감에 넘치는 조감독의 설명은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영화 ‘디워’가 영구아트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을 기자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김 조감독의 설명을 통해 영화에 대한 방대한 스케일을 알아가면서 심형래 감독의 무한한 능력에 내심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던 순간, 친근한 옆집 아저씨의 모습으로 계단을 올라오는 심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SF 영화에 심어 넣은, 한국사랑

심 감독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면을 꽉 채운 대형 TV가 눈에 띄었다. 기자들이 찾아가면 보여준다는 대모 동영상과 메이킹 필름. 역시나 심 감독은 “옆으로 와서 앉으세요”라며 먼저 영화를 틀었다. 조선시대와 포졸들이 등장하는 초반부, 조금 어색한 한국 영화 같은 느낌이 들 무렵,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에서나 볼 법한 괴수 군단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갑자기 SF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한복 입은 조선시대에 스타워즈를 상상케 하는 SF 영상의 적절한 조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선시대가 나오는 이 장면에 대해서는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다. 미래지향적인 SF 영화에 조선시대의 포졸들이 나와 대포와 총으로 싸우는 장면이 너무 유치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심 감독은 “그건 모르는 소리”라며 잘라 말했다. “세계시장을 상대로 하는 SF 영화에 누가 조선시대를 접목시킬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됐잖아요. 서양 애들이 언제 조선시대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겠냐구요.”그럼 의도적으로 넣은 거냐고 반문했더니 “당연히 그렇다”고 한다. “영화의 처음과 끝에 한국적인 요소를 가미해 세계에서 한국이 돋보여지길 원했어요. 어떤 영화들 보면 한국인은 다 이상한 사람으로 묘사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영화가 끝나는 부분에도 로버트 포스터가 ‘한국의 전설이 최고’라는 코멘트를 하기도 하고, 나중에 자막이 올라갈 때도 ‘아리랑’ 음악으로 영화가 마무리 되도록 했지요.”

“저게 우리 기술로 찍은 거라니까.”

같이 영화를 보던 심 감독은 이무기가 나와 건물을 부수고 지하 주차장을 뚫고 지나가는 화면들을 가리키면서 “저게 다 우리 기술로 만든 거라구”라며 자신감에 찬 자랑을 시작했다. “저 화면은 LA 시내를 가로막고, 미국 최초로 탱크 5대를 갖다놓고, 실탄 1,000발을 쏘며 촬영한 장면이에요. 촬영 전날까지도 허가가 안났는데, 내가 직접 슈워제네거 주지사에게 편지를 써서 찍을 수 있었어요. 촬영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직원은 그냥 해고했어요. 할 수 있다고 믿어야 같이 일을 할 수 있거든요.”영화 대모 동영상 후반부에 LA 라이브러리 타워를 감싸고 올라간 이무기의 웅장한 모습이 보여지자 심 감독은 또 한번 “저게 우리 기술력으로 찍은 거라니까요”라며 자신감에 찬 어조로 말했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배우들도 헬기를 타는 것을 무서워했는데, 제가 직접 저 빌딩에 올라가서 헬기를 타고 찍었어요. 세계에서 이런 SF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미국과 우리 영구아트’ 딱 두 곳이에요. 아무데도 없다니까, 자체적인 기술력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이요.”이어 보여주는 메이킹 필름. 총 5년간의 제작기간, 제작비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지만 어마어마한 제작비, 차량폭파만 120대, 엑스트라 2만4,000여명 등 영화 ‘디워’에 기울인 노력은 정말 대단했다. 미국 로케이션 촬영 80%, 현지 20%로 제작된 영화이니만큼 미국에서의 촬영 현장이 많았다.

미국 현지 스태프만 256명. 이중에는 ‘타이타닉’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조너선 서더드와 ‘데쓰워치’의 촬영감독 허버트 타자노브스키가 촬영을 진행했다. 주연배우는 그루지의 주연을 맡았던 꽃미남 배우 제이슨베어, 여주인공은 신예인 아만다 브룩스, 로버트 포스터 등이 열연을 펼쳤다. 한국인이 만드는 대한민국 SF 영화에 외국의 꽃미남 배우가 연기하다니, 생각만해도 뿌듯한 일이다. 또한 대규모의 외국 스태프들을 거느리고 미국의 심장부에서 탱크를 동원해 영화를 촬영하는 작은 동양인, 심형래 감독의 모습은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디워, 용가리에서 배웠다

메이킹 필름까지 보고 난 후 기자는 속으로 적지 않게 놀랐다. 특히 이 대모 동영상은 아직 10% 작업밖에 안된 거라고 한다. “여기에 사운드와 컬러, CG 작업 등을 마치면 지금보다 훨씬 낫지”라고 말하는 심 감독의 모습에서 ‘이번에는… 진짜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화면속 이무기의 움직임은 용가리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웠고, 오히려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과 비교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실 심 감독은 전국민의 관심속에 개봉했던 영화 ‘용가리’를 통해 적지 않게 실망감을 안겨준 적이 있다.

때문에 이번 영화에 대한 부담감이 컸을 텐데, 심 감독은 의외로 굉장히 여유롭다. 용가리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용가리가 없었다면 ‘디워’가 없었어요. 용가리를 통해 배급사와 계약문제 등 많이 배울 수 있었죠.”이어 그는 주위에서 실패했다고 이야기하는 ‘용가리’에 대해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용가리는 당시 한국에서만 관객동원 150만명이었어요. 그후 미국에서도 비디오 렌탈 1순위를 2주간이나 했죠. 그게 실패한 건가요? 특히, 그 당시에 나왔던 영화중에 기억나는 게 별로 없는데, 사람들이 ‘용가리’는 기억하잖아요. 그럼 성공한 거지!”그렇다면 최근에 개봉된 ‘킹콩’과 비교했을 때 ‘디워’는 어떨까. 이에 심 감독은 “킹콩에 비교해도 디워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라고 자신했다.

“킹콩은 우선 제작비가 4,000억원이나 들었고, 특히 킹콩에는 차별화가 없잖아요. ‘이무기’를 소재로 한 영화는 세계에서 이거 하나뿐이거든요. 이에 반해 킹콩은 이미 여러번 리메이크 한 작품이니까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크게 다르지요.”미국에서 박스 오피스 1위를 하는 게 목표라는 심 감독은 이번 영화 ‘디워’에 대해 정말 자신만만함을 드러냈다. “저는 영화 안해도 평생 편하게 먹고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꿈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저는 이걸 꼭 하고 싶어요. 영화를 통해 미국을 누를 수 있는 그날이 꼭 올 거라고 믿습니다.”

# 심형래 “영화에는 꿈이 있다그래서 영화감독이 좋다”

▶ 심 감독이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지 10여년이 넘었다. 맨손으로 시작한 영화 산업,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나.
- 86년에 우연히 미국과 일본을 돌아다니면서 마트에도 우리나라 캐릭터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서글펐어요. 영화의 캐릭터 시장은 정말 방대한데, 우리나라는 아무리 대형 영화를 만들어도 그걸로 끝나죠. 영화는 거대한 ‘산업’이기 때문에 굉장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저는 혼자 먹고 살려면 얼마든지 잘 먹고 살 수 있어요. 제가 한창 개그맨으로 활동할 때 연예인 소득랭킹 1위를 4년이나 했거든요. 하지만 대규모 산업인 영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 그럼 왜 SF 영화인가.
- 전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JSA’, ‘친구’ 같은 영화들이 빅히트를 쳤다고 하지만, 외국에서는 아무도 알지 못하잖아요, 공감하기도 힘들고. 저는 영화는 영화 같은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TV에서 볼 수 있는 드라마와는 어떤 차별화가 있어야죠.

▶ 최근에는 한국 영화도 많이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영화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 저는 오히려 5,60년대 영화들이 더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빨간 마후라’, ‘돌아오지 않는 해병’ 등은 지금 봐도 너무 잘 만들었어요. 요즘에는 영화가 너무 유행을 따라가요. 남북한 소재가 뜨면 다들, 그 소재의 영화를 만들기에 바쁜 것 같아요.

▶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 충무로 관계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우리나라 영화는 스타성이 너무 짙어요. 스타를 너무 따라가지 말고, 소재의 다양성을 찾으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감독이 있다고 해서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인프라 구축과 기술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죠.

▶ 개그맨 심형래와 영화감독 심형래 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 처음에는 개그맨으로 성공했으니까 개그맨도 좋고, 지금은 영화에 푹 빠져 있으니까 영화 감독도 좋아요. 그러나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하라면, 영화감독을 선택하고 싶어요. 영화는 하나의 산업으로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일자리 창출도 할 수 있어요. 한국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영화를 통해서 돈을 벌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다같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길 바라죠. 또한 영화에는 꿈이 있어요. 그래서 영화가 좋아요.

▶ 굉장히 다양한 이미지가 있다. 처음에는 바보 영구였다가, 신지식인으로 이제는 영화감독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봤으면 좋겠는가.
- 그냥 심형래로 봤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개그맨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줬는데, 이제는 영화로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싶어요. 또한 그냥 영화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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