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2월 17일 밤 전남 여수(麗水) 앞바다에 침투한 북한 반잠수정을 포착, 18일 오전 6시 50분께 격침시킬 때까지 일련의 작전과정은 육·해·공군이 완벽하게 손발을 맞춰 이뤄낸 개가(凱歌)였다. 상륙을 시도하던 북한 반잠수정은 해안 초병(哨兵)에게 발각되자 최초 발견지점으로부터 1백여㎞ 떨어진 거제도(巨濟島) 남방 1백㎞ 해상까지 달아났고 우리 군(軍)은 6시간 35분에 걸친 숨막히는 추격전(追擊戰) 끝에 저항하는 반잠수정에 함포사격을 퍼부어 수장시켰다.


북한 반잠수정이 최초로 발견된 것은 17일 오후 11시 15분께. 달빛이 없는 무월광기(無月光期)여서 우리 군에는 해안경계태세 강화지시가 내려진 상태였다.


당시 육군 31사단 95연대 1대대 여수 임포소초 초병 김태완 이병(21)은 야간감시장비(TOD)를 통해 해상을 감시하다 소초 전방 2㎞ 지점에서 수상한 선박 1척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감시장비를 자세히 들여다보던 김 이병은 5톤(t)크기의 선박에 안테나와 해치 2개가 설치돼 있고 4명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선체의 절반 이상이 물 속에 잠긴 채 날렵하게 생긴 선박은 첫눈에도 일반 어선과 달라보였다.


순간적으로 ‘간첩선(間諜船)’임을 직감한 김이병은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킨 채 인터콤(내부 통화장치)을 통해 소초 상황실에 이상선박의 출현사실을 보고했다.


15분 후 해군과 육군 경비정 2척이 출동, 수상한 선박이 발견된 방죽포 해안 일대를 수색했으나 반잠수정의 자취를 찾을 수는 없었다.


반잠수정이 다시 임포소초 야간감시장비에 포착된 것은 18일 오전 1시 40분께. 반잠수정은 아군에 발각됐다는 낌새를 채고 이미 임포소초 전방 8㎞해상에서 공해(公海)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군은 레이더 추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오전 2시 10분께 해당해역에서 조업 중인 모든 어선이 정지토록 하는 선박경보를 발령했고 경보를 무시하고 도주하는 반잠수정을 경비정 2척이 전속력으로 뒤쫓았다.


반잠수정은 최대 시속 40∼50노트(70∼80㎞/h)의 고속으로 꽁무니를 빼려 했으나 남해상을 그물처럼 촘촘히 경계하고 있는 육군과 해군 레이더의 촉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3시 20분께 진해 해군기지에 정박 중이던 8백t급 해군 초계함인 광명함(함장 손민 중령)이 현장으로 출동했고 4시 38분께 반잠수정과 조우해 경고사격을 가하며 정지할 것을 명령했으나 반잠수정은 아군 함정을 향해 자동화기를 난사(亂射)하며 공해 쪽으로 계속 달아났다.


이 사이 우리 해군은 반잠수정이 일본 영해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8척의 함정을 동원해 외해를 차단했다.


이와 함께 새벽 3시 35분께 김해비행장을 이륙한 CN-235 조명기 3대가 4시 45분께 도주하던 반잠수정을 발견하고 아군 함포사격을 돕기 위해 조명탄(照明彈) 1백75발을 투하,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상공에는 또 반잠수정을 즉시 격침시킬 수 있도록 기총과 2.7인치 로켓으로 무장한 F-5 초계기(哨戒機) 1대가 맴돌았다.


5시 35분께 거제도 남방 1백㎞ 해상에 도달한 반잠수정은 아군 함정의 추격이 계속되고 공군의 조명탄 투하로 위치가 노출되자 도주로를 찾으려는 듯 시속 35노트에서 8노트로 속도를 갑자기 떨어뜨렸다.
 

5시 48분께 반잠수정에서 갑자기 자동화기가 발사됐고 나포(拿捕)를 위해 접근하던 아군 고속정 좌현에 ‘퍽’ ‘퍽’하는 파열음과 함께 7.62㎜ 총탄 수발이 박혔다.


투항의사가 없음을 확인한 해군 남원함(함장 이순항 중령)은 오전 5시 48분께 76㎜, 40㎜, 20㎜ 함포로 집중사격을 가했고 10분여 만에 함포 3발이 반잠수정에 명중했다.

前 북한공작원이 분석한
北잠수정 침투사건

함포에 맞은 반잠수정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하자 남원함은 수중으로 도주할 것에 대비, 함포로 추가사격을 가한뒤 폭뢰를 투하했고 오전 6시 50분께 반잠수정은 마침내 수면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1백여m아래 해저로 가라앉았다.


6시간 35분에 걸친 숨막히는 추격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북한의 반잠수정 침투는 통상 임무로서 특수공작원을 침투시키거나 수중침투로를 개척하기 위한 목적이 있으며 노동당 대남부서에서 내려보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반잠수정 사건과 관련, 지난 80년대 해안침투를 시도하다 생포된 전(前) 북한공작원 김 모씨는 “침투경로를 보아서는 ‘남포연락소’가 유력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에서 통상 잠수정은 인민무력성에서, 반잠수정은 노동당 대남부서에서 관리한다”며 “지난 1981년부터 도입된 반잠수정은 파도가 0.5m 이하일 경우 최대 부상속력이 50노트로, 거제도에서 대마도(大馬島)까지 1시간 이내에 돌파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잠수정이 해안초병에 의해 발견된 점으로 미뤄 대담한 육상침투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며 “통상 남해안에서 육상으로 침투할 경우에는 정치망, 양식장 등으로 인해 6노트 이하의 속력으로 접근하지만 탐조등(探照燈)을 비춰도 육안식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마도 초병거리를 잘못 파악한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은 원산(元山) 115연락소에서 반잠수정을 건조·수리할 수 있는 건조소와 수리소를 1개씩 갖고 있으며 여기에서 건조된 반잠수정을 남포(南浦)와 해주(海州)연락소에 공급하지만 남포와 해주연락소도 조수(潮水)간만의 차와 지형이 다른 서해안 침투를 위해 반잠수정을 실정에 맞게 수리할 수 있는 자체 수리소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어 “각 연락소에서는 특수공작원 5명으로 구성된 4개의 침투조가 편성돼 있으며 훈련용·작전용 선박을 각 조마다 갖고 있으나 실제 침투용 선박은 별도로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 “원산연락소는 동해안에서 남해안, 남포연락소는 전남 목포(木浦)에서 경남 삼천포(三千浦)까지를 작전권(作戰權)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원산연락소의 경우 동해안 전역에서 대마도 북단까지, 남포연락소는 전남 해안에서 남해안을 거쳐 대마도 남단까지 작전지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당시 반잠수정 침투 진원지가 북한의 원산연락소인지 남포연락소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전남 여수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뤄볼 때 남포연락소가 유력할 것이라고 김씨는 관측했다.


김씨는 “반잠수정이 10톤(t) 이상이면 승선인원은 4명 이상”이라며 “김씨는 북한은 남한의 해안 경비경계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수시로 잠수함을 보내 공작조를 침투시키거나 수중지형 정찰을 실시하고 실제훈련도 실시하기도 한다”고 밝혀 북한의 반잠수정 침투가 수시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윤광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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