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원유판매에 재정수입 40% 의존
궁여지책으로 국영기업 매각 “만지작”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원유를 팔아 재정수입의 40%를 충당하는 러시아에서 정부와 가계 등이 유가 폭락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에 인력을 수출하고 그들이 보내오는 송금으로 생활하는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러시아에서 오는 돈이 줄어 어려움에 빠져 있다.

러시아 경제는 지난해 저유가와 서방의 경제제재로 -3.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국영 여론조사 기관인 VTsIOM의 지난해 연말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가정의 39%가 의식주를 충분히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는 1년 전 22%에서 17%포인트 늘어난 수준이다.

러시아 정부는 가히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보인다. 크렘린의 러시아 지도부가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 얼마나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소련 창설자 블라디미르 레닌을 공개 비판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하지만 역사적 인물들을 비판해봤자 현재 러시아가 직면한 어려움을 타개하는 것과 관련한 푸틴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고통이 가중되면서 러시아 정부는 내정(內政)과 모험성 외교(外交) 둘 다를 재점검해야 한다는 압력을 갈수록 많이 받고 있다.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
올해도 어려워

패닉과 정부 기능부전의 조짐은 완연하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2015년에 이어 올해 예산을 10% 삭감하자고 나왔다. 2016년 예산은 그렇지 않아도 교육, 의료 서비스, 사회적 지출 등이 대폭 삭감된 상태다. 여기서 추가로 예산을 줄인다면 러시아 대중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 세입(歲入)을 늘리기 위해 크렘린은 로스네프트(석유), 스베르방크(은행), 아에로플로트(항공)를 포함한 대형 국유기업의 지분을 매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국유기업 정부지분을 불황기에는 매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래 전부터 말해왔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처한 현 재정상황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지분 매각이 일어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지도층이 느끼는 패닉이 앞으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속단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러시아 국민은 지도자들보다 더 침착하게 행동해왔다. 하지만 엘리트의 증대되는 근심은 국내문제에서 국제문제로 옮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나빠지자 카스피해(海)와 흑해 사이에 있는 캅카스 국가들, 그리고 중앙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러시아에 취업한 자국민이 보내오는 송금에 경제를 크게 의존하는 나라들이 ▲루블화 가치 폭락 ▲러시아 내 외국인 일자리 감소 ▲러시아 내 외국인 노동자 임금 하락이라는 ‘러시아 발(發) 3중고’로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

타지키스탄은 근로인구 4명 중 1명이 해외에서 일한다. 이들 해외 이주 근로자가 2014년 본국에 송금한 돈은 이 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2%만큼으로 세계 어느 국가보다 비율이 높다.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키르기스스탄도 GDP의 최소 10%만큼을 이주 노동자에게서 송금 받는다. 이 정도 비율은 해외에 근로자를 많이 내보내기로 유명한 필리핀보다 높다.

캅카스·중앙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는 북(北)으로, 즉 러시아로 건너가 건설 공사장 인부나 여타 저임금 일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지난해 러시아 경제가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이들 근로자의 본국 송금도 덩달아 곤두박질쳤다. 미국 달러 기준으로 타지키스탄 근로자들이 지난해 상반기 본국에 보낸 돈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4% 줄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간 돈은 절반으로, 키르기스스탄으로 건너간 돈은 3분의 2로 줄었다.

이주 노동자의 러시아 내 생활도 빠듯해졌다. 러시아에서 받는 실질임금이 지난해 11월 현재 1년 전에 비해 9% 줄었다. 일자리 감소와 이민법 강화 때문에 이주 노동자 수 자체도 감소했다. 낮은 송금은 낮은 성장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지역의 원유·가스 수입국들(아제르바이잔처럼 원유를 수출하는 국가도 있다)의 GDP 성장이 지난해 2.3%에 그쳤다고 예상했다(아직 2015년치가 집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상치다). 2014년과 2013년의 성장률은 각각 4.7%와 5.7%였다.

이런 수치들은 송금 감소의 실제 효과를 줄여서 말하는 것이다. GDP는 국내 생산을 측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송금 수령자가 현지의 재화와 용역에 돈을 덜 쓰는 정도까지만 송금 감소를 반영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송금의 직접적인 영향과 교역조건의 악화까지 계산에 넣으면 구매력은 10% 넘게 떨어졌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초과근로를 하고 저축을 헐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서도 타지키스탄 전체가구의 약 40%는 식생활조차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람들이 소비를 줄임에 따라 해당 국가 정부들은 수요를 부추기기 위해 지출을 늘리고 있다. 이 때문에 송금을 받아들이는 주요 국가들에서 재정적자는 지난해 GDP의 2%만큼 확대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역의 주요 수출품인 알루미늄, 구리, 면화 같은 원자재의 국제시세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도 정부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인근국가들
러시아發 송금 대폭 줄어

중앙아시아의 송금대란은 이 지역 특유의 것이다. 여타 지역에서는 2015년 송금 수입이 늘었다. 미국과 중동으로부터 주로 송금을 받는 남아시아에서는 6% 늘었다. 미국 달러화의 강세, 그리고 걸프 지역 국가들의 재정 팽창이 이 지역 송금액 증가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2014년 GDP의 30%만큼 송금을 받은 네팔과 같은 작은 나라들은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충격에 취약해 보인다. 중앙아메리카와 일부 태평양 섬나라들도 송금에 의존하는 데 이들 나라도 2009년에는 송금 감소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은 지구촌의 송금 총액이 줄어들었던 금세기 유일의 해였다. 이에는 2008년 미국에서 터진 세계 금융위기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송금 관련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각국에 제시하는 해법은 수입원을 다양화하라는 것이다. 이 점을 인식한 듯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투자를 받아 인프라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중국 간의 교역규모는 10년 사이 10배 증가했다. 2014년 지구촌의 송금 총액은 5800억 달러(약 700조 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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