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개국 파견 외화벌이 2억달러…개성공단의 2배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우리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광명성호) 발사에 대한 대응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함에 따라 북한이 줄어드는 외화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노동자 해외 파견을 늘릴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근로자 해외 파견을 통해 개성공단의 2배인 연간 2억 달러 상당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외화는 대부분 노동당에 유입되고 있어 핵·미사일 개발에 쓰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미사일 개발에 쓰일 가능성국제사회 제재 여부 주목
안보리 결의 반영 주목중국·러시아 반대에 쉽지 않을 듯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50여 개국에 5~6만여명에 달하는 근로자들을 파견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러시아 2만여명, 중국 19천여명, 쿠웨이트 4~5천여명, 아랍에미리트(UAE) 2천여명, 카타르 1800여명 등 건설 수요가 많은 국가에 집중적으로 근로자들을 보내고 있다. 업종별로는 건설 직종이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봉제, 임업, 의료, IT, 농업 등의 분야로도 인력 송출이 이뤄지고 있다.
 
아울러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는 북한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들도 적지 않아 해외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들은 6만명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근로자들까지 합치면 해외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는 최대 1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 근로자 해외 파견 정책 강화
 
정부 당국자는 지난 17김정은 집권 이후 한두 명 튀어도 상관없으니 최대한 많이 내보내라고 지시함에 따라 북한은 근로자들의 해외 파견 정책을 강화하고 송출 분야 및 지역을 확대하고 있다인력파견 규모는 20102만여명 수준에서 5~6만명 수준으로 대폭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북한의 해외 파견 근로자 급증 배경에 대해 북한은 광물과 무기 이외에는 별다른 수출상품이 없고 이마저도 국제사회의 제재 탓에 수출이 여의치 않자 외화획득이 상대적으로 쉬운 해외 인력파견을 돌파구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인력 파견 대상국이 북측의 강압적 관리로 장시간 근무를 시키기에 용이하고 임금도 낮은 북한 근로자를 선호하는 것도 해외 파견이 급증한 원인으로 꼽힌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근로자의 해외 송출은 과거 장성택이 관장하고 있던 대외건설지도국에서 총괄해오다가 장성택 처형 이후 내각, , 군 등 권력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근로자 파견을 통해 연간 미화 2억 달러 상당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북한 근로자들은 월평균 미화 100~1500달러의 임금 가운데 충성자금, 국가 상납금 등 각종 명목으로 70~90%가량을 공제하고 실제로는 임금의 10~30%만 수령한다고 전했다. 개성공단 자금과 마찬가지로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가 벌어들인 외화 자금은 노동당 서기실 혹은 39호실로 유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 서기실과 39호실은 북한의 당··군이 벌어들이는 외화 자금을 총괄 관리하는 기구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당 서기실과 39호실에서 관리하는 외화는 핵·미사일 개발 및 치적사업,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등 핵심계층의 사치품 구입 등에 사용된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처럼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대북 제재를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근로자 해외 파견을 규제해야 할 필요성도 지적된다. 북한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줄어든 외화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근로자 해외 파견을 늘릴 필요성이 커졌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미뤄볼 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북한 해외 근로자 인권유린 문제가 잇따라 제기되면서 중동지역 국가를 중심으로 규제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쿠웨이트의 한 건설회사는 북한 근로자 200여명의 계약을 파기했다. 카타르 정부는 북한 근로자의 임금착취 문제가 불거지자 작년 11월부터 외국인 근로자 본인이 은행계좌에서 임금을 직접 찾아가게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는 임금보호제도'(Wage Protection System)를 시행하고 있다. 알제리 정부도 지난해 북한의 근로자 파견 확대 요청을 거부하고 원자로 청소 업무를 하는 북한 노동자 100여명에 대해 순차 철수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몽골 국가인권위원회는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인권상황에 대한 주의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해외 노동자 노예노동 실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비판여론 확산으로 (북한 당국이) 노동자 해외 파견을 대폭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북한의 노동자 송출 방식이나 임금 송금 방법이 더욱 교묘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해외에서 영업하는 북한 식당도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여기서 근무하는 근로자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은 자국 내 북한 식당에 대한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엔 100개 가까운 북한 식당이 영업 중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 대응방안 모색
 
북한의 해외 근로자 파견은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활동과 분리해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가 북한의 해외 근로자 파견을 차단하거나 통제를 강화한다면 북한의 핵개발 행위에 대한 제재·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국내외에서 점차 높아지는 상황이다.
 
북한 당국이 5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해외 파견 근로자 임금의 상당 부분을 착취해 통치 자금으로 쓰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런 해외 인력송출은 북한 당국이 WMD 관련 활동에 기여할 수 있는 대량현금 등 금융자산 제공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제재를 우회해 외화를 획득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일부 전문가는 해외 파견 근로자가 귀국하면서 외화 운반책 노릇도 한다는 증언을 들며, 제재 회피에 기여할 수 있는 대량현금 이전을 금지한 안보리 결의 2094호의 정면 위반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서 해외 파견 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이 면담 조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으로 귀국하는 노동자들은 외화를 북한에 가지고 들어가는 운반책으로 이용된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이런 점은 바로 북한의 인력송출이 심각한 인권 침해와 대량살상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중첩 지점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점에서 안보리가 북한의 최근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새로 논의 중인 대북제재 결의에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을 규제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갈지가 관심을 끈다. 그러나 안보리 결의가 북한의 해외 노동자 문제를 직접 다루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북한 해외 근로자의 최대 사용국인 중국,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서 제재 결의 채택에 거부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해외 노동자 파견 수입이 WMD 개발에 직접적으로 들어갔느냐고 중국, 러시아가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안보리 협상에서 중국은 WMD를 넘어 민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한의 일반적 경제 분야를 제재하는 것은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안보리) 대북 제재의 초점을 핵·미사일 개발에 맞췄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제한적이었다안보리에서 포괄적으로 모든 경제활동에 대해 제재를 하겠다고 해야 해외 노동자들이 빼앗기는 돈이 북한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보리 차원의 제재는 어렵더라도 양자관계나 국제기구, 다자 인권 메커니즘 등을 통해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는 나라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다.
 
북한 근로자들을 수용한 나라들에게 이들의 고용 자제를 요청하거나, 최소한 현재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국제적 노동 기준에 따른 정당한 노동 조건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유럽의회가 최근 북한 당국에 강제노동 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수용국에도 노동권 보호 의무를 환기시키는 결의를 채택한 것이 그 사례다.
 
미국 국무부에서 매년 발간하는 국가별 인신매매 보고서는 북한 근로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해 왔는데, 이것 또한 미국과 사용국 간 양자관계에서 압박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유엔 인권이사회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북한 해외 근로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주목하는 것도 수용국들에게 보이지 않는 압박이 될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도 일부 북한 근로자 수용국에 북한의 자금줄 차단 차원에서 협력을 요청하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이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제기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대상별로 가장 효과가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상황에 따라 검토 중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놓고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로서도 국제사회와의 협력하에 가능한 대응방안을 계속해서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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