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으로 가요’ ‘슬픔이여 안녕’ 모두 가수출신의 연기자들이 주연급 배역을 맡고 있는 드라마다. 90년대만 해도 드라마에 깜짝 출연, 양념 역할을 톡톡히 했던 그들이 이제는 까메오나 조연급이 아닌 주연으로 등장, 각 방송사 드라마의 얼굴이 되고 있는 것. 가수겸 연예인들의 전성시대로 봐도 무방한 형국이다. 가수들의 연기자 겸업은 최근 일은 아니다. 90년대 엄정화, 임창정이 브라운관과 스크린, 그리고 가요계를 넘나들며 인기를 한 몸에 받은 대표적인 연예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가요계에선 거의 얼굴을 보기 힘들고 배우로 정착한 상황이다.

비의 성공… 가수들 연기자 겸업선언 촉발

최근 연기자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가수들의 성공모델은 단연 비다. 폭발적인 춤 솜씨와 좌중을 압도하는 무대 매너로 가수로서 큰 사랑을 받았던 비는 KBS ‘상두야 학교가자’에 출연, 연기자로서 첫 선을 보였다. 공효진과 찰떡 커플로 등장한 비는 자기만의 끼를 드라마에서 맘껏 발산하며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그 결과 ‘풀하우스’에 또다시 주연을 맡았다. 풀하우스는 가수 ‘비’가 아닌 연기자 ‘비’의 진면목을 보여준 작품. 송혜교와 커플을 이룬 드라마는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최근엔 동남아에서까지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 한류스타로 거듭나게 했다. 비의 성공은 연기자로 겸업을 고려하던 젊은 가수들에게 촉매제가 됐다. 가장 적극적인 이들이 그룹 신화의 멤버들이다. 각종 연예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하며 끼를 발산하던 이들은 방송 3사의 주요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돼 가요계에서 브라운관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멤버들 중 에릭은 비와 견줄만큼 연기자 겸업에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에릭은 MBC ‘불새’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드라마 제작진에게도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연기자 에릭의 가치를 드높였다.

그 결과 MBC ‘신입사원’에선 드라마의 대표 얼굴로 등장하기도 했다. 전진은 KBS ‘구미호 외전’에 출연한 이후 최근 SBS ‘해변으로가요’에 출연중이다. 엔디 역시 조만간 연기자로 등장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성우, 이현우, 이지훈, 강타 등도 최근 본업인 노래보다는 연기에 더 열심인 가수들이다. 여가수들 역시 드라마의 얼굴로 앞다퉈 출연하고 있다. 대표적인 가수가 장나라다. 가수로 먼저 연예계에 데뷔했던 장나라는 특유의 귀엽고 발랄한 캐릭터로 어필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핑클의 성유리도 성공한 사례다. 성유리는 SBS ‘천년지애’에서 공주어투로 인기를 끌면서 주목을 받았고 연기력을 인정받아 MBC ‘황태자의 첫사랑’에 출연했다. ‘러빙유’ ‘원더풀라이프’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한 SES 출신 유진 역시 가수보다 이제는 연기자 유진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가수들의 잇단 브라운관 진출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가수들의 풍부한 감수성과 익숙한 인지도가 드라마에도 어울려 극의 재미를 살린다는 호의적인 평가도 있다.

이효리·박정아 등은 실패

하지만 높은 인기에만 급급해 어설픈 연기로 드라마의 맥을 끊어 놓는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실제 ‘이효리 신드롬’을 낳으며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일약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았던 이효리는 브라운관 도전에 실패한 사례로 통한다. 이효리는 드라마 ‘세잎클로버’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했지만 연기력에서 시청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높은 인기에도 불구, 시청률은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쥬얼리의 박정아도 ‘남자가 사랑할 때’를 통해 연기 겸업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오히려 시청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방송가의 한 관계자는 “몇몇 가수들이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가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했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며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가수들의 높은 인기를 시청률에 반영하고 싶은 방송사들의 욕심이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수들의 브라운관 진출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음반시장의 불황이 가수들의 겸업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MP3 등 급변하는 가요계 환경에 음반시장이 적응하지 못하면서 음반업계가 불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신인 가수들은 아예 연기 겸업을 통해 승부를 보려고 하는 사례까지 빚어지고 있다. 가수와 연기의 겸업이 매니지먼트사의 마케팅 작업의 일환이 되고 있는 것. 방송가의 한 관계자는 “요즘의 스타들은 만능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기 때문에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은 막을 수 없는 대세다.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제작진에게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이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는데 적절한 준비과정과 검증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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