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 극장가는 온통 박찬욱 감독의 화제작 ‘친절한 금자씨’ 얘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번 주에는 그 화두가 바뀌었다. 막강한 ‘금자씨’의 열풍을 소리소문없이 잠재워버린 ‘무서운’ 영화는 바로 ‘웰컴 투 동막골’.8일 쇼박스 미디어플렉스에 따르면 이 영화는 개봉 첫주만에 전국 관객 130만명을 돌파하는가 하면, 지난 주말 이틀간 서울에서 24만7,000명의 관객을 동원해 ‘친절한 금자씨’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배우는 단연 ‘올드보이’의 히어로 강혜정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만의 길을 확실히 다지고 있는 몇 안되는 배우로 꼽히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 완벽한 연기변신으로 또 한번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전천후 배우’강혜정의 힘! 강혜정의 힘!

독특한 이미지의 외모처럼 그동안 범상치 않은 배역만을 맡아 팬들의 뇌리에 너무도 강하게 박혀버린 배우 강혜정이 경직되어 있던 얼굴근육을 풀고 관객들 앞에 나타났다. 또 내친김에 머리에 나사도 몇 개 풀었다. 그리고는 투박한 말투로 목에 힘을 주어 ‘느릿느릿’ 능청스레 묻는다. “니들, 쟈들하고 친구가?” 영화속에서 순진무구한 광녀 역을 맡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 강혜정의 강원도 사투리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남북한 군인이 대치한 심각한 전쟁상황에서 그가 던지는 이 대사에 관객들은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웰컴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우연히 강원도의 외딴 마을 동막골에 모여든 국군, 인민군, 미군이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다가 미군의 융단 폭격 위험에 처한 마을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강원도 산골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광녀 ‘여일’역으로 영화는 상당부분 그의 맑고 순수한 연기에 기대어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있다. 무명감독에다가 그다지 ‘스타성’을 지닌 배우들이 없다는 이유로 사실 이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친절한 금자씨’의 아성에 눌려 빛을 볼 수 있을지 상당히 우려가 됐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정재영, 신하균 등의 실력있는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과 탄탄한 시나리오, 특히 ‘강혜정’이라는 배우의 색깔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 개봉 첫주만에 15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동막골’로 안내하는데 성공했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 얼굴의 반을 차지함직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23살의 강혜정. 도무지 속내를 들여다볼 수 없는 묘한 눈빛을 지닌 그는 그 나이로서는 보기드물게 강렬하고 깊이있는 에너지를 내뿜는 배우다.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과 넘치는 예술혼은 그가 맡은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관객들을 휘어잡는 위력을 발휘히고 있다.이번 영화 역시 ‘강혜정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의 천연덕스러우면서도 능숙한 연기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정신은 올바르지 않지만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동막골 처녀를 강혜정이 아닌 그 누가 이토록 실감나게 연기할 수 있었을까. ‘여일’역은 오직 ‘강혜정’을 위해 만들어진 배역이라는 말이 있을만큼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력은 영화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백치연기도 끝내주죠?”

“24시간 즐겁게 논다는 생각으로 촬영했어요.” 이번에 그가 맡은 역할은 그가 그동안 출연했던 영화에서 맡은 배역들과는 상당히 큰 거리감이 있다. 친아버지인줄 모르고 근친상간을 하는 딸(올드보이), 손가락 절단 위협을 받는 피아니스트(쓰리몬스터), 실패한 연애의 상처에 사로잡힌 음울한 교생(연애의 목적) 등 그동안 그가 맡은 역할은 결코 평범하지 않고 음울하면서도 강렬한 배역들이었다.따라서 그는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비해 무겁고 힘이 들어간 배역이 어울리는 배우로 각인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무겁고 딱딱한 배역만을 맡았던 그가 ‘광녀’역을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모두가 의아해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연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자신이 맡은 배역을 위해서라면 여배우로서 꺼릴법한 험한 역할이나 강도 높은 노출도 마다하지 않았던 ‘독한’ 강혜정이 머리에 꽃을 꽂은 ‘광녀’ 역을 한다는 것이 쉽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그는 그동안 굳어져온 그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배우’에 도전했다. 결과는 대성공.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 어떤 역을 맡겨놔도 능수능란하게 ‘또 하나의 강혜정’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연기력에 ‘역시 강혜정!’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근원적인 순수함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어요. 실제로 어린시절의 에피소드들이 영화에 많이 반영되기도 했구요.” 단순한 가식연기로는 표현해내기 어려운 광녀역에 최대한 몰입하기 위해 그가 사용한 방법이다.영화속에서 그는 정상인으로는 불가능한 엉뚱한 돌출행동과 느닷없는 발언으로 첨예하게 대치하던 국군과 북한군들의 긴장감을 풀어주며 화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존재다.

그가 연출해내야하는 티없이 맑고 순수한 표정과 강원도 사투리는 결코 쉽지 않은 배역이었을 터. 그러나 그는 그동안 맡았던 강하고 자극적인 배역을 뛰어넘어 머리에 꽃을 꽂고 투박하고 독특한 강원도 말투를 뱉어내는 전쟁통의 ‘광녀’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그는 “배우는 맡은 역할에 따라 성격이 변하는 걸 실감한다”며 여일역에 완전히 몰입한 자신의 상태를 전했다. 개성있으면서도 안정된 연기력으로 이 시대 최고의 유망주로 떠오른 배우 강혜정은 “영화가 너무 재미있게 잘 만들어져 부족한 내 연기가 자연스레 영화 속에 묻히는 느낌까지 받았다”는 말로 이번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강혜정은 관객들에게 ‘동막골’로 피서오라며 손짓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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