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개발 비리 업체 20억대 비자금 의혹

[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단군(檀君)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기대를 모으다 무산된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에서 비리(非理) 혐의가 포착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부장검사 심우정)는 지난 23일 허준영(64) 전 코레일 사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손 모씨의 자택과 사무실 등 용산 개발사업에 관련된 2∼3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의 손 씨 사무실과 주거지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용산 개발과 관련한 사업 계약서와 회계장부, 내부 보고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또 용산개발사업 추진회사였던 용산역세권개발(AMC)로도 수사관을 보내 사업 관련 자료를 임의(任意)제출 형태로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측근 수사…허준영 ‘정치권 진출 종잣돈’ 의심


최근 검찰은 용산 개발을 추진한 허 전 사장의 배임(背任) 혐의 등을 처벌해 달라는 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비리 단서(端緖)를 포착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수사 목적과 내용은 구체적으로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 전 사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2011년 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돼 용산 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검찰이 수사하는 비리 의혹은 허 전 사장의 재직 시절에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허 씨는 최근까지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을 맡았으며 차기 회장 선거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의혹업체, 사업 1건 따내고
‘비자금 저수지’ 역할?

현재 검찰은 허 전 사장의 최측근인 손 모씨의 ‘떴다방’식 사업 행태에 주목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26일 검찰에 따르면 압수수색한 자료를 토대로 W사에 입출금된 자금 흐름과 용처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손 씨는 회삿돈 횡령(橫領) 및 뇌물공여(賂物供與) 혐의를 받고 있다. 폐기물업체 대표 직함을 가진 손 씨는 해당 사업의 자금 흐름을 누구보다 잘 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업 과정에서 일부 이권을 챙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손 씨가 실질 운영주로 있던 폐기물처리업체 W사가 용산개발 관련 사업 1건만 수주한 후 자진 폐업한 과정을 면밀히 파악 중이다. 이 회사가 비자금 창구 역할을 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 W사는 2010년 7월 사업 주관사인 삼성물산으로부터 127억 원 규모의 폐기물 처리 사업을 수주했다. 수십개 하청업체 가운데 하나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손 씨는 용산 사업이 본격화하던 2010년 타인 명의로 헐값에 W사를 인수했다. 당시 W사는 이렇다 할 사업 실적이 없는 영세업체였다. W사의 사업 참여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업계 관측이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이듬해 7월 W사를 협력업체로 낙점했다. 당시 허 전 사장이 손 씨와 W사의 뒤를 봐준다는 소문이 돌았다. 허 전 사장이 삼성물산에 요청해 W사에 일감을 몰아준 게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W사는 사업이 무산된 뒤 이렇다 할 실적을 보이지 않다가 2014년께 돌연 문을 닫았다. 결국 손 씨가 인수한 뒤 이 회사의 사업 실적은 단 1건으로 남았다.


특정 업무를 위해 설립했다가 그 임무가 끝나면 해산하는 특수목적법인(SPC)처럼 ‘단타성 법인’으로 운영된 셈이다.


검찰은 이 업체가 삼성물산에서 받은 사업비 100억 여 원 가운데 20억 원대 현금이 빠져나간 점도 주목하고 있다. 개발사업체를 위장한 ‘비자금 저수지’ 역할을 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운영 과정 전반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손 씨는 허 전 사장이 일선 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때부터 교분을 쌓은 인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허 전 사장은 이 같은 관계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주 손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W사의 인수 및 폐업 경위와 사업 수주 과정, 사업비의 사용처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W사는 애초 영속성을 담보한 회사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해당 업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인사가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

검찰은 앞으로 허 전 사장의 혐의 외에도 용산 재개발 사업의 추진과정과 사업 실패 경위에 대한 진상을 철저히 파헤칠 것으로 관측된다.


수많은 투자자와 이 개발로 인해 재산권 행사를 침해당한 서부이촌동 주민 등 피해자들이 부지기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30조 원이 넘는 이런 대규모 민·관 합동 사업이 단지 자금경색과 사업주도권 다툼 때문에 중단됐을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정·관계 인사가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교관에서 경찰로 전직한 허 전 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경찰청장까지 승승장구했으나 2005년 말 ‘시위 농민 사망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에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친이(親李)계 쪽과 교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허 전 사장은 2012년 19대 총선 출마를 위해 2011년 말 사장직에서 퇴임한 꽤 비중 있는 정치 지망생이었다. 허 전 사장이 비자금을 조성한 것이 밝혀진다면 그 용처가 어디였는지, 혹여 정치권 진출을 위한 종잣돈은 아니었는지 검찰은 한 점 의혹 없이 밝혀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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