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정견 발표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통일 이야기를 했다. ‘동서통합이 없으면 남북통일도 없다’고 강조한 게 대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
지난 25일 한국자유총연맹 제16대 중앙회장으로 선출된 김경재(73) 전 청와대 홍보특별보좌관(홍보특보)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김 전 특보는 이날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자유총연맹 본부에서 열린 중앙회장 선거에서 재적 대의원 459명 중 368명이 투표한 가운데 205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날부터 업무를 시작한 김 회장은 “정부와 긴밀한 연계를 통해 국론통합(國論統合)에 기여해 연맹을 통일(統一)의 아이콘, 선봉대가 되도록 헌신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자유총연맹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회장 후보로 나선 허준영 전 회장 측에서 “행정자치부가 김 전 특보를 연맹 회장에 당선시키려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연맹 측에서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고 반박하는 등 극심한 분란을 겪었다.


“김정은 폭압통치 오래 못갈 것… 통일의 선봉대로 나서겠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맨’ 출신이지만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 때 국민대통합을 내걸고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호남 출신 정치인.


1971년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 선전기획위원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기 시작해 유신체제 하에서 재야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신문’을 운영하는 등 15년간 사실상의 ‘망명생활’을 하며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형욱 회고록』 집필

월간 ‘사상계’에서 정치담당 편집자로 활동했고, 미국에 머물면서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김형욱 회고록』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 정권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냉정한 기록인 것처럼 포장돼 왔기 때문이다. 회고록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부터 84년까지 미국 뉴욕의 한인을 상대로 한 언론에 연재됐다. 한국에선 금서(禁書)였다가 민주화 시기인 87년 말 세 권으로 출간됐다. 300만 부가 팔리는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다. 박 전 대통령의 18년 정권에 대한 객관적 기록이 부족했고 6년 3개월 동안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가 회고의 주체인 데다 당시 반독재 민주화의 시대 분위기가 김형욱 회고록의 수요를 자극했다. 이 책은 그 후 숱하게 쏟아져 나온 60~70년대 정치 다큐멘터리, 각종 회고록, 현대사 평론, 학술논문의 1차 자료로 인용됐다.


김 회장은 1980년대 후반 귀국해 ‘DJ맨’으로 정치활동을 재개, 전남 순천에서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학 시절부터 DJ를 알았고 집에서 같이 살면서 ‘입주 특보’ 역할을 했다”며 “DJ의 미국 망명 시절까지도 보좌를 했기에 술버릇, 잠버릇부터 모르는 게 없다”고 말했다.


1997년 대선 당시에는 새정치국민회의 홍보위원장으로 DJ의 당선에 기여했다.


다만 DJ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고 한다. 김 회장은 “1999년 DJ의 지시로 평양을 다녀온 뒤 ‘북한을 무조건 풀어주면 안된다. 노벨평화상 받으려고 서두르시느냐’고 했더니 크게 화를 내시더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2002년 대선 때는 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의 당선을 도왔으나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당시 노 대통령에 대해 독설을 퍼붓는 등 ‘친노(노무현)세력’과 거리를 둬왔다.


김 회장은 “저는 과거 민주당(더민주)에서 제 발로 나온 게 아니라 친노(親盧)에 의해 축출된 사람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정국의 주역으로 지목되면서 2008년 총선 때는 공천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됐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2010년 평화민주당(평민당) 소속으로 전남도지사 선거, 2011년 4월에는 무소속으로 전남 순천 재·보선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후 집필 활동을 주로 하며 지냈는데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에게서 ‘도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사과할 부분을 사과하고,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겠다면 돕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이더라”고 회고했다. 


이후 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100% 대한민국 대통합위원회’ 특보로 맹활약했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대통령 홍보특보(장관급)를 맡아 박 대통령에게 대국민 소통을 늘리는 방안은 물론이고 중국, 북한 관련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을 돕게 된 이유를 묻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대통령과 DJ의 정치적 아들인 내가 힘을 합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합하는 ‘산민(産民) 통합’을 이루고 싶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3년의 임기 동안 통일운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폭압적 통치를 하는 김정은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자유총연맹이 통일의 선봉대로 나서겠다는 각오로 박 대통령의 통일정책을 보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력>
▲ 전남 순천(73)
▲ 서울대 정치학과
▲ 김대중 총재 특보
▲ 15∼16대 국회의원
▲ 민주당 중앙위원·최고위원
▲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국민대통합위 기획담당특보
▲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 청와대 홍보특별보좌관(장관급)

songwin@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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