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제분 사위 불륜 오해’로 14년 전 살해된 딸 못 잊은 母 사망…피해자 가정 참혹하게 파괴

▲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 윤길자(당시 58)씨가 저지른 일명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의 피해자 어머니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화여자대학교 법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피해자 하지혜(당시 22)양이 윤 씨의 지시를 받은 살인 청부업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된 지 14년 만이다. 당시에는 일반적인 '묻지마 범죄'나 원한관계에 의한 사건 정도로 여겨졌으나, 그 배후가 밝혀지면서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판사인 사위가 하 양과 불륜 관계라고 오해한 윤 씨가 조카와 그의 고교 동창에게 17500만원을 주고 벌인 일이었다. 하 양은 20023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납치돼 경기 하남의 검단산 산중에서 범인들이 쏜 공기총을 맞고 숨졌다. 그로부터 수많은 세월이 훌쩍 흐른 지난 20일 하 양의 어머니 설모(64)씨가 사망하면서 이 사건이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피해자의 어머니, 설 씨의 삶은 딸이 비명에 간 이후로 피폐해졌다. 하 양의 아버지(70)아내만 보면 딸 얘기가 나와 견디기 어렵다2006년 강원도에 집을 얻어 따로 살았다. 결혼한 하 양의 오빠도 분가하자 집에는 설 씨만 남았다.
 
하 양의 오빠는 어머니가 검단산을 보며 지혜를 잊지 않으려고 하남에 계속 남아 계셨다지혜가 살해된 후 어머니가 끼니를 2~3일 거르는 것은 예사였다고 전했다.
 
집을 찾은 오빠는 거실에 애완견 배변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설 씨의 죽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사인은 키 165cm인 고인의 체중이 38kg까지 빠진 점과 집안 곳곳에 빈 술병이 있는 것을 보아 식음을 전폐해 영양실조에 의한 아사로 추정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범죄자는 결국 죄값을 치르게 되었지만, 한 여성의 미친 행동이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하 양의 가정은 참혹하게 파괴됐다.
 
사건 당일인 200236, 하 양은 새벽 5시 반쯤에 수영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선 후 연락이 끊겼다. 가족은 평소 말썽을 부린 적이 없는 하 양이 돌아오지 않자, 큰 근심에 빠져 여기저기 수소문했다. 결국 3일 후인 9일 딸이 납치되는 CCTV 영상을 확보,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진전되지 않던 수사는, 열흘 뒤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등산객에 의해 하 양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세상을 경악케 할 서막을 올리게 된다.
 
하 양의 시신은 머리와 안면에 6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부검 결과 여러 군데의 뼈가 골절되어 있는 등 잔혹하게 구타한 흔적이 발견돼 그녀가 죽음을 맞기 직전에 느꼈을 공포와 고통을 가늠할 수 있었다.
 
의심과 집착 상상 초월
 
2001, 윤 씨의 집요한 의심과 집착에 견디지 못한 하 양과 그녀의 가족들은 윤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서 승소했으며, 접근금지 명령까지 얻어냈다.
 
하 양의 이종사촌 오빠 김모 판사의 장모이자, 당시 영남제분 회장의 부인이었던 윤 씨는 1999년 사위 김 판사의 여성관계에 대한 괴전화를 받은 후 김 판사의 외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에 김 판사의 전화내용을 추궁하던 중 김 판사가 엉겁결에 전화상대로 둘러댄 사촌 여동생 하 양을 불륜의 상대로 판단하기에 이른다.
 
평소 의심이 많던 윤 씨는 한번 의심을 품자, 상상 이상의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위를 감시하기 위해 딸 내외의 방에 도청장치를 심는 한편,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하 양의 미행을 지시한다.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만 25명에 이른다. 현직 경찰, 심부름센터 직원 등을 동원해 미행망을 구축했으며, 가족의 운전기사로 일하던 조카 윤남신(당시 42)씨에게 미행망 관리 역할을 맡겨 수시로 상황을 살폈다. 심지어 윤 씨 본인이 승복 차림을 하고 변장해 직접 감시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녀는 하 양의 자택 전화를 비롯해 하 양 친구들의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전화를 하고, ‘하 양과 김 판사가 같은 건물로 들어가는 사진3억 원의 현상금을 거는 등 상상을 초월한 집착을 보였다.
 
그러나 당시 미행했던 사람들이 목격한 하 양의 동선은 집·학교·도서관이 전부여서 모두 공통적으로 하 양은 불륜과 전혀 연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윤 씨는 계속 하 양을 사위와 불륜관계라고 확신했고 급기야는 조카에게 하 양을 납치·살해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결국 며칠 뒤 하 양은 심한 구타와 함께 공기총 6발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와 어머니, 마루공원에 안치
 
윤 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기소된 뒤 오랜 법정 공방 끝에 2004년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윤 씨는 2007년부터 유방암·파킨슨증후군·우울증·당뇨 등 12개 병명이 적힌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이를 이용해 형 집행정지 처분을 받아 2013년까지 교도소 대신 대학병원 호화병실에서 외출을 수시로 하며 안락하게 생활했다. 윤 씨의 남편이 의사에게 돈을 주고 허위 진단서를 받음으로써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윤 씨의 이런 행각이 세상에 알려지자 검찰은 지난 2013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열어 윤 씨에 대한 형집행정지를 취소하고 재수감했다.
 
이는 하 양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또 다른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때부터 하양의 어머니 설 씨는 술을 더 가까이했고, 음식을 거의 섭취하지 않아 영양실조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 씨의 빈소는 하남시 검단산 아래 마루공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설 씨의 영정은 지난 2000년 딸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 갔을 때 유람선 위에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에서 설 씨 얼굴만 떼어내 만들었다.
 
아들 하 씨는 어머니께서 늘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자주 꺼내 보시던 사진이라며 이제 하늘에서 지혜를 만나시게 됐다고 울먹였다. 유족은 남양주의 한 납골당에 안치돼 있는 하 양의 유골을 설 씨가 묻힌 마루공원으로 옮길 계획이다.
 
한편 최근 윤 씨는 현재 모범수가 수감돼 있는 직업훈련 교도소에서 편한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샀다.
 
윤 씨가 수감 중인 직업훈련 교도소는 난방시설이 완비돼 일반 교도소보다 환경이 좋다. 이 곳은 수형자들이 사회 복귀에 대비해 제과제빵용접 등 직업 훈련을 받는 곳이지만, 현재 윤 씨는 직업 훈련조차 받지 않고 있다.
 
흔히 살인을 저지른 수감자들은 이곳에 오기 힘든 만큼 일각에서는 윤 씨가 특사 대상자로 이미 내정돼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내부 기준에 따라 일반 수감자들과 함께 화성 교도소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할 뿐, 윤 씨가 옮긴 경위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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