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간 겨울 한파를 잊게 해줄 도시, 멜버른. 현지의 누리꾼들이 온기 넘치는 사진과 애정을 듬뿍 실은 메시지로 나를 흥분시켰다. 지구 반대편에서 펼쳐지는 한 여름의 드라마. 도시 매력 탐구 여행, 멜버른 보고서를 시작한다.

멜버른으로

도시의 고단함과 일상의 지루함이 거뭇하게 익어가던 겨울의 마지막 즈음. 서울은 영하의 매서운 추위로 날마다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가는 곳마다 히터가 토해내는 열기와 건조함으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맘껏 숨이라도 한번 크게 쉬어보겠다고 빌딩 문을 열고 나선 순간, 얼굴을 사정없이 강타하는 칼바람에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고 써넣었다. 몇몇 도시의 이름들 중, 유난히 빛을 내는 세 글자, 멜버른.

영국의 시사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 그것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내리 4년간 그 자리를 내주지 않은 현존하는 지구상 최고의 도시. 며칠 후 난 두꺼운 외투를 벗어젖히며 멜버른 국제공항에 발을 디뎠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빅토리아 주의 주도인 멜버른.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답지 않게 공항은 한산했고 화창한 아침 날씨는 장시간의 비행으로 움츠러든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시내에서 숙소로 가는 길은 초행길임에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노선이 하나뿐인 공항버스가 경유하는 곳도 없이 바로 종점까지 내달려주니 그저 몸을 맡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마음 졸일 필요 없이 창밖으로 펼쳐지는 멜버른의 풍경과 눈을 맞춘다. 멜버른을 360도 전망으로 한눈에 즐길 수 있는 멜버른 스타 대관람차가 환영 인사를 보내는 것 같더니 어느새 목적지인 서던 크로스 역. 드디어 멜버른의 중심부에 들어섰다.

멜버른 비지터 센터

급히 떠난 여행이 늘 그렇듯, 준비된 정보가 바닥을 드러냈다. 때문에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가장 먼저 멜버른 비지터 센터부터 찾았다.

트램을 타고 멜버른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 내리니 맞은편 페더레이션 광장 입구에 크게 쓰인 센터 간판이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멜버른의 ‘종합 관광 안내소’는 그 규모부터 심상치 않다. 여행 중 종종 들르던 평범한 인포메이션과는 사뭇 다른 모습 때문에 마치 유명 여행지 안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 볼 일은 접어 두고 구석구석 구경부터 시작한다.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다양한 안내 자료와 작은 지역까지도 상세하게 그려놓은 지도에 자꾸만 손 이 가는 건 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 이 도시를 여행하는 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다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 그것만으로 이방인의 가슴 속에 찾아들었던 낯선 감정들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

이곳을 찾은 가장 큰 목적은 투어 예약. 멜버른 여행의 백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와 필립 아일랜드 투어를 알아보기 위해 안내원과 마주했다. 얼마 후 그곳을 나오는 내 머릿속은 멜버른 여행의 깨알 같은 정보들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명소

   
▲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1854년 세워진 멜버른 최초의 기차역으로 멜버른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자 시가지와 근교를 연결하는 교통의 거점이다. 또한 멜버른을 찾은 여행자라면 가장 먼저 사진을 담아야 하는 곳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멜버른 여행자들에게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주는 곳이기 도하다.

페더레이션 광장
2002년 문을 연 시민 광장으로 멜버른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여행객들의 여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공영 방송사, 아트갤러리, 전시홀, 극장, 레스토랑, 펍 등이 들어서 있고 수시로 크고 작은 공연과 행사가 열려 여행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광장 안에서 대형 전광판의 스포츠 경기를 즐기는 한낮의 여유로운 풍경이 인상적이다.

세인트 패트릭 성당
첨탑 높이 103m의 높이를 자랑하는 호주 최대 규모의 성당 중 하나. 1858년 착공 후 약 80년의 긴 공사 기간이 말해주듯 세심한 곳 하나하나까지 사람의 정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성당이다.

공짜로 즐기는 빠르고
쉬운 시티 투어, 시티 서클 트램

새로운 여행지에 갈 때면 늘 먼저 찾는 것이 있다. 시티 투어처럼 가볍게 그 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이다.

편안하게 도시를 눈에 익힐 수 있고, 꼭 가야할 곳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점찍어 둘 수 있는 필수 아이템. 멜버른에는 이런 나의 여행 스타일에 딱 맞는 교통수단이 있다.

멜버른의 중심 업무 지구인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주변을 사각형으로 순환하며 시내 주요 여행지를 연결해주는 시티 서클 트램이 바로 그것. 멜버른 비지터 센터에서 가져온 시티 서클 트램 지도에는 정차역마다 주요 볼거리들이 잘 나타나 있다.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앞에서 기다리던 자주색 35번 트램이 서서히 플랫폼을 향해 들어온다. 다른 트램들에 비해 많이 낡아 보이는 외관은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멜버른의 고풍스러운 멋을 대변하는 것 같다. 트램 안은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로 이미 가득 들어차 있었다.

멜버른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명물 중 하나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실감하는 순간, 본격적인 멜버른 여행이 시작됐다는 설렘과 약간의 긴장감이 함께 교차한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을 보다 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잠시 내려서 둘러보고 다시 시티 서클 트램을 타 한 바퀴를 모두 돌아보기로 했다.

내 마음대로 Free Hop-on, Hop-off 시티 투어를 만들어간다. 한 바퀴를 도는 데 30분쯤 소요된다는 시티 서클 트램 투어는 그렇게 3시간을 넘어 반나절 동안 이어졌다.

가슴 속에는 멜버른의 첫 인상이 새겨졌고 수첩 속에는 꼼꼼하게 둘러봐야 할 이름들이 남겨졌다. 다시 돌아온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 내려 잠시 스치기만 했던 페더레이션 광장 깊숙한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갑자기 늘어난 일정에 걸음이 빨라졌다

▲ The Scots Church

여행 TIP

무료 트램 구간
멜버른에 전해진 훈훈한 소식 하나. 멜버른 CBD 안을 운행하는 모든 트램이 전부 무료로 전환됐다는 사실. 게다가 무료 운행 지역이 기존의 35번 시티 서클 트램이 운행하던 구간보다 더 넓어지기까지 했다. 멜버른 시내의 주요 볼거리뿐만 아니라 시내 구석구석까지 이제 차비 한 푼 들이지 않고 모두 다닐 수 있게 됐으니 멜버른을 찾은 여행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멜버른은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지나 가장 여행하기 좋은 도시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잠시 들를 만한 곳

칼튼 가든
멜버른 시티의 북쪽에 위치한 칼튼 가든은 울창한 나무숲과 프랑스 분수대가 인상적인 공원. 가든 내에 멜버른 박물관, 왕립 전시관 등이 있어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우아한 고전미가 돋보이는 왕립 전시관 은 호주에서 최초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세인트 패트릭 성당
첨탑 높이 103m의 높이를 자랑하는 호주 최대 규모의 성당 중 하나. 1858년 착공 후 약 80년의 긴 공사 기간이 말해주듯 세심한 곳 하나하나까지 사람의 정성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성당이다.

멜버른 센트럴
시내 중심의 센트럴 역과 연결된 종합 쇼핑센터로 최근 멜버른 시티 에서 가장 핫한 곳 중 하나다. 한때 멜버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 던 옛 벽돌 건물을 새로운 현대식 건물 안에 들여놓은 것 같은 독특 한 건물 설계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볼거리다.


좁은 골목 사이에 피어나는 커피 향과 이야기 꽃, 카페 골목

매일 아침 숙소를 나서서 발길을 향한 곳, 시내의 카페 골목. 숙소에서 꽤 먼 거리였지만 그곳을 찾은 이유는 커피 한 잔 때문이었다.

평소 커피를 즐기지 않지만 이따금 진한 커피 한 잔이 그리운 아침이 있다. 몇 년 전, 2주간의 시드니 출장에서 매일 아침 마시던 롱블랙 한 잔, 지금도 여유로운 출근길 아침이면 그 커피 맛이 생각나곤 한다.

호주에서도 유명한 커피의 도시 멜버른, 그리고 아침부터 모락모락 커피 향이 피어오르는 디그레이브 스트리트는 그래서 더욱 각별한 마음으로 찾은 곳이다.

매일 아침 좁은 골목의 한 귀퉁이에 앉아 뜨거운 롱블랙 한 잔을 마시는 것만으로 하루 여행은 충만하게 시작된다. 조그마한 카페 안에서 바삐 음식과 커피를 만들고 테이블과 의자를 설치하는 종업원들의 모습, 또 그들이 환한 웃음으로 커피를 가져다주며 던지는 인사에 답하며 여행이 주는 소소한 행복에 짧은 전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거리보다는 골목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은 그곳을 매일같이 찾는 것은 나만의 스케줄은 아닌 것 같았다.

많은 이들이 하루에 한 끼 식사를 즐기기 위해서 누군가는 어둑해질 무렵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서 찾아들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온전히 하루를 그 곳에서 보내는 것도 같았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디그레이브 스트리트뿐만 아니라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센트럴 플레이스 역시 카페 골목의 진풍경을 선사한다. 한 칸짜리 음식점, 한 뼘짜리 테이블, 그리고 그 위에 차려진 예쁘장한 음식들.

그곳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수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비좁은 골목 안에 여유와 낭만을 심는다. 아마도 나처럼 매일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뒷골목 카페에서 맛보는 정겨운 커피향을 조금이라 도 더 깊게 음미하고 싶어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

찾아가는 법

   
▲ 작은스프가게
센터 플레이스의 명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은 스프 가게

디그레이브 스트리트와 센터 플레이스는 이미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카페 거리가 됐지만 좁은 골목이 가득한 멜버른 시내에서도 작은 골목에 속한다. 웬만한 지도에는 표기조차 돼 있지 않거나 너무 작아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멜버른 시내의 중심인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에서 출발한다면 찾아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역 정문 앞 플린더스 스트리트를 건넌 후 좌회전(페더레이션 광장 반대 방향)해서 잠시 걸어 가다보면 좁다란 골목을 가리키는 디그레이브 스트리트 이정표를 만난다. 이 골목으로 들어가서 끝까지 올라가면 바로 센터 플레이스와 이어진다.

추천 음식

카페 거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샌드위치를 비롯해 다양한 음식들이 준비돼 있다. 그중 한국 사람들에게 유명한 음식은 특이하게도 스프 라는 사실. 국내 한 오락 프로그램 호주특집에 방영된 센터 플레이스의 작은 스프 식당은 이 거리의 명물이 됐다. 약 10가지 정도의 스프가 각각의 단지 안에 들어있는데 선택이 어렵다면 ‘Soup of the Day’에 도전하는 것도 괜찮다.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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