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역습에 이한구 당했다?

여론조사 결과 내용 살펴보니 TK지역 진박후보 1명만 1위
코너에 몰린 김무성의 역습…이한구 “여연 소관 아니냐” 김무성 겨냥
19대에서도 여론조사 유출로 집단 탈당…20대도 집단탈당 현상 재현?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여권이 ‘여론조사 문건 유출 파문’으로 쑥대밭이 됐다.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공천관리위원회에 보고했다는 여론조사가 유출되면서 그 배경을 놓고 당내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A4 용지 5장짜리인 문건에는 서울과 부산, 대구, 인천, 대전, 경기, 경남 등 79곳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여론조사 수치도 게재돼 있다.
하지만 문건의 유출 경위에 대해선 누가 어떤 목적으로 유출했는지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궁금증만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권 주변에선 김무성 대표가 ‘살생부 논란’으로 체면을 구겼고,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에게 힘이 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비박계가 공천관리위원회를 흔들기 위해 여론조사 결과를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더 나아가 친박계에서 우선추천제 등을 통해 ‘비박 대학살’을 할 경우 비박계 인사들은 당 공천에 불복,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내세워 탈당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다.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새누리당 여론조사 유출 파문, 그 막전막후를 들춰봤다.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문건이 처음 유출된 것은 지난 3일. 카카오톡 등 SNS를 중심으로 지역별 공천 신청자 명단과 여론조사 수치로 추정되는 내용이 담긴 사진이 유출됐다. 내용 출처 및 유포 경로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다만 당 관계자들은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심사에 참고하기 위한 여의도연구소의 사전 여론조사 결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홍문표 사무부총장은 조사결과와 전혀 다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고 좀 혼란스러워서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당 지도부 등에서는 명확한 답을 피했지만 단순한 찌라시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당내 인사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기자들도 문건의 출처와 배경 등을 파악하느라 분주히 움직였지만 그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배포했을 것이란 추측만 난무했다.

현역의원이 뒤지거나
근소한 차이로 앞서

여론조사 문건에는 70여 곳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유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역 의원이 경쟁 후보에게 밀리는 지역이 적지 않다. ‘현역 의원 교체’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TK지역도 마찬가지다. 대구 한 초선 의원은 25%를 기록한 반면, 경쟁후보 A는 41%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초선 의원도 경쟁후보보다 4.1% 뒤처졌다. 다른 두 후보도 3.4%, 5.9% 정도 현역의원에게 뒤지는 정도다. 경선을 치르더라도 현역 의원이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대구의 또 다른 초선 의원은 1위를 달리고 있으나 2위 후보와 1%, 3위와는 4%밖에 격차가 나지 않는다. 오차범위 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어,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진박 후보’의 경우는 어떠할까. 선두를 달리고 있는 후보는 1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5명의 후보들은 현역 의원이나 다른 후보들에게 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 지역 한 초선 의원도 전직 기초단체장 출신 후보보다 80% 뒤졌다. 경기 지역 B, C 의원도 경쟁 후보보다 13%, 7% 밀렸다. 울산 지역 한 의원의 지지율은 경쟁 후보보다 6% 낮았다.

현역 의원이 겨우겨우 앞서는 지역도 적잖다. 부산 지역 한 재선 의원은 경쟁 후보보다 0.5% 앞섰다. 반면 유출된 자료에 나온 현역 의원 18명은 상대 후보보다 10% 이상 앞섰다. 또 비례대표 의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2위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

여론조사 문건 유출 놓고
비박은 친박, 친박은 비박

문건 내용을 접한 여권 관계자들은 비박계에서 유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살생부’ 논란이 불거져 무게 중심이 친박계로 쏠린 당내 상황을 봤을 때 비박계가 흘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실제 김 대표는 비박계인 정두언 의원에게 ‘찌라시’에 나온 ‘살생부’ 내용을 전했다가 제대로 힘을 잃었다. 지난달 29일 공식 사과한 데 이어 ‘공관위의 공정성을 저해하는 일체의 언행에 대해 적극 조사해 엄중하게 처리하겠다’는 최고위원들의 결정에 동의했다. 이 때문에 공천 주도권이 이한구 공관위원장에게 넘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더구나 비박계 인사들 사이에서는 김 대표가 밀리면서 “김 대표를 믿고 따라가야 하느냐”는 말까지 나왔다. 일부에선 김 대표가 결단을 내려 ‘자신을 희생하는 차원’에서 총선 불출마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여론조사 문건이 유출됐다. 코너에 몰렸던 김 대표로서는 움직일 공간이 생겼다. 말 그대로 친박쪽에 쏠렸던 무게추가 자신에게 쏠렸던 것. 일련의 과정으로 친박계에서는 비박계를 의심하고 있다.

친박계 한 인사는 “이 위원장이 우선·단수추천지역을 확대하려고 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부러 여론조사 결과를 흘렸을 가능성이 있다”며 “결과적으로 공관위의 공정성에도 타격을 가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더 나아가 이 위원장은 “공관위와 관계없는 얘기다. 여연의 소관이 어디냐”고 말해 김 대표를 겨냥한 듯한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여연의 체계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실제 경선 후보자 선정을 위한 사전 여론조사는 여연이 실시한 뒤 실무책임자가 공관위에 직접 보고하는 구조다. 공관위에서 유출되지 않았다면 여연 실무라인을 통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위원장도 이 점을 꼬집은 것이다. 한마디로 공관위가 아닌 이상 김 대표를 통해 비박계로 유포됐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이 김 대표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살생부 파문으로 주도권을 잃은 비박계가 여론조사 유출을 통해 반격하려는 것 아니냐는 게 친박계의 시각이다. 특히 공관위 공정성에 타격을 줘 이 위원장을 비롯해 친박계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비박계에서는 펄쩍 뛰며 ‘여론조사 유출 배후’로 지목된 것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그러면서 공관위 차원의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비박계 한 의원은 “이 위원장이 다른 곳으로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는데 옳지 않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공관위가 책임지고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비박계 의원은 “실체도 불분명한 조사를 통해 현역 의원을 탈락시키려는 것 아니냐”며 “주류 측의 물갈이 시도가 드러난 것으로 본다”고 의심했다. 비박계 기획설로 보는 친박계의 시각을 불식하려는 의도로 이러한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여론조사가 유출됨에 따라 공관위에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공천 불복’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있다. 2012년 19대 공천 당시 현역 의원 컷오프를 위한 여론조사 결과가 유출되면서 친박계 의원들이 집단 탈당했다는 사실이 이러한 시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실제 여론조사에 한참 뒤진 후보가 최종 공천자로 확정돼 논란이 됐고, 후보들은 탈당을 통해 출마했다. 여기에 친박연대까지 등장했던 것.

이 때문에 그때와 같은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분위기다. 비박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공천 배제’됐을 경우 집단 탈당을 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비박연대’ 등을 만들어 친박계와 한판 승부를 펼칠 수도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7122love@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