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의장은 이날 열린우리당 당선자들과 함께 경기도 일산 홀트복지타운을 방문하고 “장애인 복지 문제와 관련,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재정 지출을 늘리겠다”며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가 있은 이후 정 의장이 봉사활동을 자청, 직접 장애인을 목욕시키겠다고 나서면서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연출됐다. 현장에 있었던 열린우리당 관계자와 기자들에 따르면, 정 의장은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맨발로 목욕탕에 들어섰고 발가벗고 누운 송모씨를 목욕시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제는 언론사 카메라들이 정 의장이 송씨를 목욕시키는 장면을 그대로 담아내면서부터. 언론사 카메라는 집요하게 정 의장의 뒤를 쫓았다. 쏟아지는 플레시 세례 속에서 송씨는 눈을 감지 않았고 옆에서 정 의장을 거들던 최성 당선자는 “유명한 분한테 너 머리 감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목욕탕 타일 바닥에 벌거벗고 누운 장애인의 인권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날 정 의장의 봉사활동을 담은 사진은 다음과 네이버 등 포털 사이트에 오르는 것은 물론 동영상으로 MBC 노컷뉴스에 오르기도 했다. MBC는 이 동영상을 ‘정치권과 가정의 달’이라는 제목으로 내보내면서 송씨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았다. YTN은 ‘돌발영상’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보도하면서 “장애인은 소품이 아닙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YTN도 선정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정 의장이 목욕을 시킨 송씨는 선천성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연합뉴스> 등이 ‘장애아’라고 표현한 것과 달리 30세였다고 한다.이와 관련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장애인 단체들은 4일 각각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들 언론사의 사진과 동영상이 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열린우리당과 해당 언론사에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사장 이성재)는 ‘더 이상 장애인을 이용하지 마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장애인을 이용한 이미지 정치 중단과 방송법에 장애인 차별 금지 규정 제정, 장애인의 치부를 시설 운영에 이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또 이 성명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국민을 이용하곤 했는데, 더 이상 장애인을 이용한 이미지 정치를 반복하지 말고 소리 없이 진정한 장애인복지를 펼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일산홀트복지타운 관계자에 대해서도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언론 보도에 대해 ‘장애인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하기보다 시청률에만 급급해, 약자의 현실을 이용해 선정적인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못된 습성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같은 날,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이동권연대)도 ‘장애인에게도 인권은 있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열린우리당의 중증장애인을 이용한 정치적인 목욕쇼에 분노한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이동권연대는 ‘이번 보도는 열린우리당과 언론이 그토록 연출하고 싶었던 감동의 모습은커녕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한 장애인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는 위선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히고, 나아가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중증장애인을 물건처럼 이들에게 제공한 일산홀트복지타운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열린우리당에 ‘한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은 이번 사태를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방송과 신문, 인터넷 등에서 선정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 언론사들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러한 장면을 연출하도록 내버려 둔 일산홀트복지타운도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에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회장 장기철)도 지난 4일 성명서를 내고 ‘지난 17대 총선에서 9번째 공약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내걸었던 열린우리당의 이번 행동은, 과연 그들이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열린우리당이 맞는지 의문스럽다”며 사진을 공개한 <연합뉴스> 측에도 유감을 표하며 사과와 사진 삭제를 요구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상임대표 이예자)도 지난 5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치인, 복지관계자, 언론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발가벗겨진 채 유린당하는 장애 아동의 현실을 직시하며,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장애아동인권 보장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와 일상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을 촉구했다.이번 사건에 대해 열린우리당 서영교 부대변인은 “문제의 심각성을 열린우리당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며 “문제를 인식해 홈페이지에 게재되었던 사진을 지난 4일 즉시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식적으로 당 차원에서 입장을 정리한 바는 없고 공보실 내부 논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또 서 부대변인은 “문제가 된 사진을 게재한 언론사에 사진 협조 요청을 한 사실이 없고, 6일 중으로 해당 언론사에 사진게재 중지를 공식적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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