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고난 불구 ‘철의 여인’으로 우뚝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2016년에도 여풍이 계속 불 것으로 보인다. 각계 분야에서 여성이 리더 자리에 오르는 일이 계속 늘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사회 활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란 의미의 ‘유리천장’에 가로막히는 일이 많았다. 능력과 자격을 갖춰도 고위직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대통령, 여성 CEO, 여성 임원 등 유리천장을 깬 주인공들이 늘어나면서 ‘여풍당당(女風堂堂)’이란 신조어도 나타났다. 이에 [일요서울]은 여성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들을 살펴봤다. 그 여섯 번째 주인공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다.

전업주부에서 총수로…롤러코스터 인생
현대상선 위해 등기이사 사의 강수뒀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1955년,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1976년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현 회장은 결혼 후 1남 2녀를 두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러다 2003년 故 정몽헌 회장이 타계한 뒤 현대그룹 수장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이 현대그룹 인수 의지를 밝히면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됐다. 이른바 ‘시숙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이 때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이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지분 40%를 확보하면서 분쟁을 일단락 시켰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자동차, 중공업 등이 계열분리된 것은 물론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건설이 채권단 관리로 넘어가는 등 고난부터 겪었다. 결국 현대건설은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됐다.

시련은 금강산 관광사업 위기로 이어졌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이 피살되면서 대북사업이 위기를 맞은 것이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1998년 현 회장의 시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물꼬를 튼 대북사업이다. 남북경협의 중추적 역할은 물론 현대그룹의 상징이었던 사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현 회장의 시름도 깊어졌다. 현재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이 계속되면서 개성공단 개발사업까지 멈춰선 상황이다.

현대그룹의 얼굴인 현대상선도 순탄치 못했다. 현대상선은 그룹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핵심계열사다. 그런데 2008년 이후 전 세계적인 해운업 불황이 지속되면서 실적이 악화되는 이중고를 안았다.

백의종군 아이콘

이 같은 어려움이 산적해 있지만 현정은 회장에 대한 기대는 여전하다. 그는 숱한 고난을 겪어오는 동안 ‘정면돌파’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그룹을 지켜온 ‘철의 여인’이란 명성을 거저 얻은 게 아닌 만큼 지금의 어려움도 극복해 낼 것이란 희망이다.

앞서 현정은 회장은 자구 구조조정안으로 성과를 거둔 바 있다.

현 회장은 자구 구조조정안을 통해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 등 알짜 계열사를 매각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택했다.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로는 현대엘리베이터를 비롯해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아산, 현대유엔아이, 현대경제연구원, 현대투자네트워크, 현대저축은행, 현대자산운용,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 현대종합연수원 등이 있다.

그 결과 현대그룹은 순환출자 고리에 있던 주요 계열사를 매각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써 경영상태가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등 주력 계열사들은 2015년 나란히 흑자를 내고 부채비율을 낮추고 있는 상태다.

또 현정은 회장은 지난 2월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현대상선을 구하기 위해 사재 300억 원을 내놓았다.

이어 현대상선 팀장 이상 간부들도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백훈 현대상선 대표는 “저를 비롯한 현대상선 임원, 팀장 등 간부급 사원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현재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향후 거취와 처우 일체를 이사회에 맡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만, 유동성 위기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현대증권 매각이 미뤄지면서 현대상선은 용선료 삭감, 채무 재조정, 자산매각 등의 자구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현정은 회장은 현대상선의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의장직을 내려놓고, 난국 타개를 위한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은 지난 3일 공시를 통해 18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이 사임하고, 김정범 전무와 김충현 상무를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한다”고 밝혔다.

현 회장은 “등기이사직에서는 물러나지만 지난번 300억 원 사재출연과 같이 대주주로서 현대상선의 회생을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마련한 고강도 추가 자구안이 보다 중립적인 이사회의 의사결정을 통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또 현대상선은 또 7대1 감자를 결정했다. 감자 방법은 액면가 5000원의 보통주 및 우선주 7주를 1주로 병합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보통주 1억9670만7656주와 우선주 1114만7143주는 각 85.71%의 비율로 감자된다. 자본금은 감자 전 1조2124억 원에서 감자 후 1732억 원으로 줄게 된다. 신주는 오는 5월 6일 상장된다.

이 같은 결정으로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 유지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현 회장에 대한 기대의 시선도 많다. 일각에서는 오는 25일 현대상선이 창립 40주년을 맞는 만큼 현 회장의 결단이 현대그룹의 명맥을 이어가는 돌파구가 되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대상선은 “자본잠식률 50% 이상 상태가 2년 연속 발생할 경우 상장폐지 요건이 되기 때문에 이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주식병합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안이 주주총회에서 의결될 경우 현대상선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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