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신청은 줄고 회생 신청은 증가 추세
파산 및 면책에 대한 도덕적 해이 막기 위해 심사절차 강화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정확히 10년째에 접어들었다. 경제적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자가 법원에 파산·면책을 신청해 통과하면 채무를 면책할 목적으로 시행됐다. 이로서 채무자는 갱생의 의지를 가지고 경제적 재기를 도모할 수 있다. 한편, 검찰은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 챙긴 변호사와 브로커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최모 씨는 매달 버는 월급의 거의 전부를 빚을 갚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자 집을 나왔다고 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상태였다. 당장 생활비가 필요하자 가지고 있던 카드에서 현금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씀씀이가 커졌고 카드론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1년 만에 같이 놀던 친구들은 각자 일을 하거나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현금 16만 4천 원과 통장에 쌓인 2천만 원의 빚이었다.
그녀도 집으로 돌아왔다. 일을 시작했다. 세금을 제하고 150만 원남짓의 월급이 들어오면 거의 모든 돈을 이자가 센 빚을 갚는 데에 사용했다. 악순환은 반복됐다. 빚을 갚자 남는 생활비는 카드로 생활하며 돌려막기식의 빚 갚기가 시작된 것이다. 더 이상 빚 갚기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녀는 2015년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파산 심사를 받기도 전에 큰 벽에 부딪혔다. 개인파산을 신청하기 위해 구비해야 하는 서류들이 너무 많았다. 또 법률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그녀가 조리 있게 보증관계, 재산 변동 내역 등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법무사무소에 대행을 맡겨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이로써 최모씨는 개인파산을 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170만 원을 다시 빚지게 되었다.
1997년 IMF 신불자
개인 파산이 구세주 역할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직자들이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전국적 부도 과정에서 개인채무자들이 대거 발생했다. 당시 한 언론에서는 2006년 피도 눈물도 없는 채권추심이라며 전국의 300만 명이 장기 매매라도 해야 하냐며 채무에 정신적 고문을 받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을 정도였다. 외환위기 이전부터 개인 파산제도는 있었지만 법원에 개인 파산이 신청된 것은 1997년이 처음이었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시행한 초창기에는 파산 신청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개인 파산제도는 사업이 부도나거나 실업자가 된 이들이 채무의 일부나 전부를 면책 또는 탕감받고 갱생하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해줬다.
법원 심사 강화로
파산·면책제도 신청 줄어
8일 법원행정처가 펴낸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0년 회생 신청은 파산 신청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으나 2012년부터 회생 신청(9만 368건)이 파산 신청(6만 1천 546건)으로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회생 신청이 10만 96건으로 나타났다. 회생 신청이 늘고 파산 신청이 줄고 있었다. 이 추세에 대하여 법원은 파산과 면책 제도의 악용을 막고자 심사절차를 강화해온 결과라고 말했다. 기존에는 신속한 절차를 위해 ‘서면 심리’를 했으나 2010년 하반기부터 법관의 구두 심문을 거치도록 개정됐다.
동대문구의 김 모 변호사는 실제로 처음 파산신청 변호를 맡았던 때를 기억했다. “첫 의뢰인의 파산 신청을 검토하는 파산 관재인이 생각보다 매우 세세히 질문을 해 놀랐다.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라는 보정명령을 통해서 매우 구체적인 사항까지도 확인했었다”고 전했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파산 관계인과 법원이 요구하는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였고, 결과적으로 의뢰인의 파산 및 면책 결정을 받아 걱정했던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파산 관재인은 파산 신청자의 보유 재산과 소득을 조사하는 사람으로 2010년부터 전국 법원의 모든 사건에 선입했다. 파산 관재인은 파산 신청자가 실제로 소득이 전혀 없는지 확인하고 가족의 재산을 조사하여 혹시 있을 재산 은닉 가능성을 확인한다. 과도한 지출이나 사기 등으로 빚을 진 경우는 면책이 허가되지 않는다.
법원, 브로커 체크리스트제 시행으로 브로커와 전쟁
인터넷 검색창에 ‘개인회생’, ‘파산’ 이라고 치자 수십 개의 법률 사이트가 나타났다. 파산과 개인 회생, 면책 등을 묻는 질문에는 어김없이 무료로 어려운 법률 진행 과정을 설명해주겠다는 글이 달렸다. 그들이 정말로 파산 절차 대리 자격이 있는 변호사나 법무사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홍보팀에서는 “인터넷 글들이 언뜻 친절하게 제도를 안내하는 것처럼 보여도 과도하게 개인회생 및 파산을 유도하는 내용이 다수이고, 제도를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광고들도 많다”고 주의를 요구했다.
또한 노인을 노리거나 채무 변제에 급급한 사람들이 혹할 만한 내용의 광고를 부착해 둔 사례도 찾아볼 수 있었다. 신복위에서는 이러한 광고는 추적이 어려운 대포 휴대폰을 사용하거나 찾아도 유령 회사가 많아 제재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호소했다.
이에 법원이 끈질긴 브로커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4년 9월부터 브로커 명단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해 법조단체와 수사기관 등에 통보하는 ‘개인회생 브로커 체크리스트’ 제도를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작년 8월에는 브로커가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에 연루된 법무법인 9개, 변호사 12명, 법무사 4명, 무자격자 5명 등 총 30인(법인 포함)을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말 회생·파산위원회 정기회의를 열어 ‘개인회생 브로커 체크리스트’를 도산사건 재판부가 있는 전국 14개 법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전국 14개 지방법원에서는 파산 신청자를 대상으로 무료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구두 상담에 그쳐 서류 작성에 어려움이 따르는 신청자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법률구조공단에 근무하는 변호사와 공익법무관의 인원이 실제 파산신청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파산제도 및 법률에 관한 정보가 궁금할 경우 법원의 전자민원센터에 접속하면 필요한 법률에 대한 절차부터 재판 지원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다. 또 대한법무사 홈페이지에는 소속된 모든 법무사의 이름과 사무실 주소를 게재하고 있어 실제 법무사가 맞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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