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국 유럽연합, 난민 때문에 흔들려
유럽연합 “이제 더는 오지 마라” 선언

유럽연합(EU)은 독일·프랑스·영국 같은 큰 나라부터 키프로스·크로아티아·슬로바키아 같은 작은 나라까지 모두 28개 유럽 국가를 포용한 지역 정치·경제 공동체다.
28개 회원국 중에서 19개 국가는 화폐도 통일돼 있다. EU는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미얀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브루나이 10개국이 결성한 경제 공통체인 동남아국가연합(ASEAN)보다 훨씬 결속력이 강하다. 왜냐하면 EU는 궁극적으로 정치통합까지 지향하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이 유럽의 가장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나타내는 데 미국을 본떠 ‘유럽합중국’이라는 표현을 쓴 사실이 EU의 최종 지향점을 잘 시사한다.
EU창시자인 프랑스 경제학자 장 모네는 2차 대전의 참상을 면밀히 조사하고 난 뒤 이런 소감을 밝혔다.
“개별국가들이 주권에 기초해 재구성된다면 유럽에 평화는 없을 것이다…유럽국들은 너무 작아서 국민에게 필요한 번영과 사회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 유럽국들은 반드시 스스로를 연방으로 구성해야 한다.” 모네의 이런 기본 구상을 토대로 EU는 지난 60년 간 결속을 강화해 왔다. EU국가 시민들은 EU대부분 지역을 자유롭게 여행한다. 비자는 물론 필요 없고 여권 검사도 하지 않는다.

‘단일 국경, 단일 통화’
기치 무색할 판

마치 한 나라처럼 운영돼 온 유럽이 지금 물밀 듯이 밀려드는 난민 때문에 홍역을 치르는 것은 물론 심하게 분열돼 있다. “EU는 포위당했다. 시리아·아프가니스탄·이라크 등지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난민은 유럽 중심부에서 EU의 단일 국경을 시험했다. 현재도 진행 중인 그리스 재정 위기는 EU의 단일통화에 시련을 안겼다. 영국은 조만간 EU에 잔류할지 말지를 국민투표에 부칠 예정이다. 단일 국경, 단일 통화, 안정적 회원국을 갖춘 EU의 생존은 그 어느 때보다 덜 가능해 보인다.” 옥스퍼드대학교 블라바트닉 정치대학 학장 겸 글로벌 경제관리 교수 나이리 우즈는 최근 미국 언론 기고문에서 오늘의 유럽을 이렇게 진단했다. 이처럼 심각한 EU혼란의 뿌리는 난민 유입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3월 7일 유럽행을 원하는 난민 수백만 명을 수용하고 있는 터키에 EU가 난민 관리 비용으로 지원하겠다던 돈 30억 유로를 왜 여태 안 주느냐며 EU를 대놓고 비판했다. 유럽으로 건너가는 길목에 위치한 터키는 유럽행 난민의 집결지다. 터키가 자국 영토 내에 붙잡아 놓고 있는 난민을 방출하기 시작하면 유럽은 난민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따라서 난민 추가 유입을 막아야 할 EU 입장에서 터키는 잘 달래야 할 협상 파트너다.
EU는 유럽 땅인 그리스에 도착하는 난민을 전원 터키로 되돌려 보내기를 희망한다. 그리스에서 난민 한 명이 터키로 강제 송환될 때마다 터키는 자국 내에 머무르고 있는 시리아 난민 한 명을 유럽으로 보낸다는 것이 터키-EU간 최근 합의다. 이 합의가 온전히 실행에 옮겨지고 않고는 앞으로 터키-EU 간 추가 협상에 달려 있다. 그렇다면 EU는 그리스에 추가로 도착하는 난민을 터키로 송환하면서 왜 또 터키에서 새 난민을 유럽으로 받아들이는가? 여기에 난민 문제의 미묘한 점이 숨어 있다. 지금 기를 쓰고 유럽행을 강행하는 중동·아프리카·아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 난민’이다. 이들은 먹고살기 힘들어 부자 나라인 독일이나 스웨덴으로 가서 폐를 끼치더라도 살 길을 찾고자 한다. 이런 사람들까지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 EU의 방침이다. ‘그리스→터키’ 방향으로 난민을 강제송환하면서 이와 교환해 같은 수의 시리아 난민을 ‘터키→EU’ 방향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시리아 난민 중에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난민과 더불어 ‘정치적 난민’이 많기 때문이다. 정치적 난민은 정치적 박해를 피해 제3국에서 살길을 모색하는 사람이어서 국제법상 구제(救濟)가 보장된다. 쉽게 말해 EU는 난민을 받아들이더라도 옥석(玉石)을 가리겠다는 것이다. EU가 이처럼 기존 정책을 바꾸어 난민 수용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자 유엔 난민기구에서는 “그러면 그것은 난민 협정 위반 아니냐?”라며 시비를 걸고 있다.

난민 중간 기착지
터키에만 270만 명

난민 처리를 둘러싼 EU-터키 간 거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이에 앞서 이뤄진 양해에 기초한다. 이 양해의 골자는 ▲심지어 한겨울에도 하루 2000명에 달하는 난민의 ‘터키→그리스’ 야간 도항(渡航)을 막기 위해 터키가 육상·해상 검문을 강화하고 ▲그리스에 밀입국하는 수많은 난민의 터키 귀환을 터키가 수락한다는 것이다. EU는 터키 내 시리아 난민 270만 명이 터키에 눌러앉도록 돕기 위해 교육 및 취업 관련 사업비 명목으로 터키에 30억 유로를 제공키로 한 상태다. 난민을 터키에 붙잡아 두는 대가로 터키가 내건 조건은 EU를 여행하는 터키인에 대한 비자 면제를 올 여름까지 실행하라는 것이다. 이 밖에 무언(無言)의 대상(代償)도 있다. 그것은 터키의 인권 문제와 언론자유에 대해 EU가 비판을 자제하는 것이다. EU가 목청을 높이면 터키 사회가 동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기세로 몰려드는 난민 때문에 유럽은 실존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다. 절박하기는 터키도 마찬가지다. 터키에는 등록된 시리아 난민만 270만 명 있으며, 이와 별도로 아무런 증명서 없이 나라 곳곳을 떠도는 난민이 수십만 명 있다. 이들 가운데 하루 수천 명이 터키 해안을 통해 출국해 발칸 국가들을 거쳐 독일로 향한다. 하지만 현재 발칸 국가들의 국경은 봉쇄된 상태다. 엄청난 수의 난민을 수용하는 터키의 환대에 대해 전 세계가 칭송하지만, 터키와 미국은 난민 발생의 주요 원인인 시리아 내전을 끝낼 전략에 대해 더 이상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관계는 상당히 긴장돼 있다. 시리아 내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키로 한 미국의 결정에 터키는 격렬하게 반대한다. 터키는 ‘쿠르드’ 라는 말만 들어도 기겁한다. 터키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이 결성한 쿠르드노동당(PKK)을 터키는 테러집단으로 보며 쿠르드족은 무조건 PKK와 연관됐다고 간주한다. 미국이 러시아와 직접 협상해 불안한 시리아 휴전을 이끌어낸 것에도 터키는 화가 나 있다. 터키와 시리아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터키에 시리아 난민이 그토록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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