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의 안방복귀로 큰 화제를 모은 SBS 주말드라마 ‘봄날’(극본 김규완·연출 김종혁)이 지난 13일 막을 내렸다. 95년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떠났던 고현정이 10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지난해 10대 연예뉴스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장안의 화제였다. 고현정의 성공과 실패를 짚어봤다.

Success ‘고현정을 잡아라’

고현정의 복귀는 대형스타의 부재로 허덕이던 방송계에 새로운 활력을 줬다. 고현정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40~50대 여성층을 브라운관에 모으는 효과도 낳았다. 10년 만에 연기를 재개했지만 고현정은 ‘명불허전’이라는 말처럼 ‘봄날’의 서정은 역을 제대로 표현해 찬사를 받았다. 아이 둘을 낳은 엄마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투명한 피부와 긴 생머리는 미용업계에 ‘고현정 효과’를 낳기도 했다. 발목까지 올라간 양말과 간간이 선보인 명품 옷들도 유행을 탔다. 드라마 ‘봄날’은 끝났지만 고현정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고현정은 드라마를 찍으며 한달 동안 광고 수입으로만 30억원을 기록, 그녀의 ‘브랜드 파워’를 증명했다. KT의 ‘안’, LG전자 냉장고 ‘디오스’에 이어 최근 LG생활건강과 1년 전속으로 모델계약을 하면서 연달아 CF 대박을 터뜨린 것. 그녀가 광고한다는 사실만으로 KT의 단말기 판매량은 5배 이상 늘었고, 아직 전파를 타지 않은 디오스도 소비자들의 문의전화가 배이상 늘어나 광고 업계에선 고현정이 ‘마이다스의 손’으로 불리고 있다는 후문. 하지만 고현정이 당분간 더 이상의 광고는 찍지 않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업계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심지어 내년 광고를 예약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을 정도로 광고 업계에서는 ‘고현정 잡기’가 제1의 과제로 떠올랐다.

영화계에서도 그녀를 스크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난리다. 고현정의 소속사 후크 엔터테인먼트의 권진영 대표는 “시나리오만 8개나 밀려들어 왔다”며 “드라마가 끝난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시나리오를 꼼꼼히 검토하는데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다.영화뿐 아니라 고현정의 매력을 이미 십분 간파한 방송가에서도 그녀를 다시 한번 안방극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뜨거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대형스타의 부재로 허덕이던 연예가에 봄바람을 몰고 온 고현정, 그녀의 대박 행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Failure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었다’

고현정의 드라마 복귀는 성공적이었지만 이름 값에는 못 미쳤다는 평가다.극 초반 30%에 가까운 시청률로 상큼한 출발을 보인 드라마 ‘봄날’은 극 후반부로 갈수록 시청률이 떨어지는 아픔을 맛보았다. 극 초반 높은 시청률은 ‘고현정 효과’에 기댄 측면이 높다. 10년 전 ‘모래시계’의 그녀를 기억하는 남녀 시청자들이 앞다퉈 채널을 고정시켰고 어머니에 대한 아픈 상처를 안고 말문을 닫은 채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어느 정도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고현정 효과’는 은호(지진희)와 은섭(조인성) 두 형제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정은(고현정)의 모습이 중반 이후 지루하게 반복되면서 크게 약화됐다. 시종일관 자신의 주관을 뚜렷이 드러내지 못하는 정은의 소극적인 캐릭터는 현실의 여성상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진부한 여주인공 캐릭터 설정은 시청률 저하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은섭의 동거녀인 경아(이소연)와 같은 개연성 없는 조연의 등장도 드라마에 찬물에 끼얹었다. 초반부에 ‘고현정 효과’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냈던 스피디한 진행도 갈수록 드라마에 부담이 됐다. 은호와 정은이 비양도에서 순식간에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은호가 생모를 찾아갔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 등 1~5회의 충격적 장면에 적극 반응했던 시청자들은 이후 더 큰 자극을 받지 못했다.여느 드라마와 달리 등장인물 사이에 뚜렷한 선악구도를 설정해놓지 않았다는 점도 흡인력을 약화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이 드라마의 원작인 일본 드라마 ‘별의 금화’는 주인공 형제가 병원 경영권을 놓고 갈등을 빚는 것으로 돼있지만 ‘봄날’에서는 그렇지 않다.

은섭과 은호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사이. 은섭의 어머니나 은호의 옛 여자친구 민정 등도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악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연출자 김종혁 PD는 “당초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행동의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측면에서 드라마를 구상했기 때문에 선악구도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며 “일반적 드라마의 관행에서 차별화해야겠다는 판단하에 인물들의 심리 묘사에도 치중했는데, 그게 시청자들에게 다소 지루함을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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