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각기 벌이는 후보 공천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정말 ‘정치판은 개판’이구나 하는 절망적인 대목이 다시 떠오른다. ‘정치판은 개판’은 16년 전인 2000년 7월 서영훈 당시 민주당 대표가 정치 현실에 크게 좌절한 나머지 한 지인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내가 정치권에 들어오려 하니 친구들이 그 개판에 왜 들어가려느냐고 말리던데, 오늘 보니 개판은 진짜 개판이야”라고 토로했다. 서 대표는 흥사단 이사장, 대한적십자사무총장,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등을 역임하면서도 정치판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었다. 그래서 그의 ‘정치판 개판’ 탄식은 과장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후보 공천을 두고 친박(박근혜)계와 비박계로 나뉘어 너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난타전을 벌였다. 친박계가 장악한 공천관리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밉보인 비박계를 대거 탈락시켰다. 여기에 비박계 좌장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옳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독재정권 때나 하는 거다.”고 항변했다.

새누리당의 ‘독재정권’ 때나 하던 짓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배신의 정치’로 찍힌 유승민 의원 쫓아내기에서도 드러났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던 ‘증세없는 복지’와 관련,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쓴 소리를 서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그를 ‘배신의 정치’라고 지목, 원내총무에서 몰아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유 의원을 공천하지 않고 열흘 가까이 애를 먹여 제 발로 당을 걸어나가 무소속으로 출마토록 압박했다. 비열한 유승민 밀어내기와 관련, 국민들은 “수법이 잔인하고 비겁하다” “비루한 간신들” “정당 자격없다” 등 분노를 참지 못했다. 친박계 지배하의 공천위는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 “대통령만 바라본다” “독재정권”이라는 지탄을 면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유 의원을 내쫓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포용했어야 옳다.

정당의 막대한 운영자금은 대부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 당연히 정당의 총선 후보는 국민을 위해 공천되어야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국민이 아니라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공천한다는 질책을 면치 못하게 했다. 설사 국회의원이 정치적으로 대통령을 ‘배신’한다 해도 공익을 위한 배신이라면 ‘배신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로 존중되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도 ‘개판’이다. 더민주당의 김종인 대표는 운동권과 시민단체 출신들을 공천에서 배제시켰다가 거친 반발에 부닥쳤다. 그러던 때 김 대표는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자천, 사욕을 드러냈다. 친문(문재인)·친노 장악 하에 있는 당중앙위원회는 그를 “욕심 많은 노인네” “염치없다”며 비례 후보자 명단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계파로 채워넣었다. 비례대표 후보로 ‘염치없이’ 자천한 김 대표나 자기 파로 채운 중앙위나 똑 같이 내 것만 챙긴다.

국민의당도 예외는 아니다. 애당초 국민의당은 더민주에서 소외된 안철수 의원이 탈당해서 급조한 당이다. 공당(公黨)이라기 보다 ‘안철수의당’이다. 안 대표는 새누리당이 공천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식 학살극’을 벌인다고 비난했고 더민주도 국회의원들을 ‘파리 목숨처럼’날려보낸다고 했다. 그러나 안 대표 자신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 회의장에서 공천탈락 후보 지지자들에 의해 “이게 뭐가 새정치냐”며 폭언을 들어야 했다.

새누리당, 더민주당, 국민의당 모두의 공천 난장판은 조폭 간의 영역 다툼을 연상케 한다. 저런 정당들이 앞으로 대한민국 법을 만들며 정치를 좌지우지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개판’칠 게 뻔하다는 데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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