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신화와 이야기가 탄생한 곳. 포세이돈과 제우스 그리고 아프로디테와 에로스 또 디오니소스와 헤르메스.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그 거대한 이름들은 분명히 신화처럼 내 기억 속에 박제돼 있었다. 잠자고 있던 신화를 깨우는 곳, 그리고 그곳이 세상의 모든 블루를 품고 있는 지중해라면.


아크로폴리스

아크로폴리스를 보는 날이다. 아크로폴리스라면 아니, 파르테논 신전이라면 알현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보려고  그리스에 왔는지도 모른다.

지하철로 아크로폴리역까지 간 후 통합 입장권을 사고 언덕에 올랐다. 12유로인 통합 입장권으로 4일간 아크로폴리스와 제우스 신전 그리고 대도서관 등 일곱 곳을 볼 수 있다. 단, 아크로폴리스 입장은 1회로 제한한다.

대리석 반출을 막기 위해 가방은 물론이고 주머니가 달린 옷도 입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지만 특별히 경비가 삼엄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절벽 위 330m의 길이와 170m 너비로 성역을 이룬 아크로폴리스는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성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고유명사이자 인류 최대의 유산 중에 하나이다.

개관을 하는 이른 아침에 방문한 탓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으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하늘은 아직도 아테네를 정식으로 인사시키고 싶지 않았는지 오늘은 구름만 잔뜩 낀 날씨로 시작되었다.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 여신에게 바쳐진 파르테논 신전이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돌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대적인 공사로 철제 구조물들이 앞을 가로막아 어느 정도 감격스러움이 반감된 것은 사실이지만 파르테논을 실제로 바라보는 것은 어떤 말로 수식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만일 이 시간이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시간이었다면 나는 아마 그 아름다움에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신전 뒤 쪽으로 가니 저 멀리 언덕 밑에 제우스의 신전이 보였다. 공터에서 다소 쓸쓸하게 빛나고 있던 제우스 신전의 모습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기에 놀랄 만큼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갑자기 눈에 들어온 아름다움. 나는 제우스가 갑자기 내 눈 속에 들어왔을 때 실제로 걸음을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순간 그리고 찰나, 제우스에게는 그런 단어들이 어울리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파르테논에 집중할 시간. 25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파르테논은 아테나의 신전으로, 기독교 교회당으로 또 무슬림들의 모스크로 많은 부침을 겪어 왔다. 거대한 지붕도 폭격으로 날아간 거대한 지붕을 보건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현세에도 역시 많은 평범한 인간들의 방문지로 전락(?)해 버린 탓에 신전 안 쪽까지 자세하게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이렇게라도 사람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벽 끝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사슴 인형을 가지고 연신 다른 각도에서 사진을 찍을 정도로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독일에서 왔다는 그 노인은 손자에게 세계의 곳곳을 보여주고 싶어 항상 징표를 사진으로 남긴다고 했다. 손자가 볼 파르테논 그리고 또 아테네의 전경, 나중에 손자가 다 크면 아마 이런 장면들보다 할아버지를 더 추억하겠지. 나는 오늘 극도로 아름다운 장면 두 가지를 본 셈이다.

구름에 가려있던 해가 잠시 모습을 비추었다. 20여 분 남짓, 파르테논이 햇빛을 받아 대리석의 상아빛 자태를 보여주었다. 매끈한 기둥들은 성숙한 여인의 다리처럼 또는 건강한 남성처럼 그리고 두 가지를 섞어 놓은 것 같은 느낌까지, 다양한 이미지와 상상력으로 자극해왔다. 정말이지 잠시 동안 대리석 기둥에 드리워진 순간의 빛은 파르테논의 신성함을 더욱 배가시켜 주었다. 아테네의 상징이자 그리스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 나는 그리스에서 내 삶의 커다란 숙제를 하나 끝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우스 신전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보았을 때의 그 아름다움,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아야만 했던 제우스. 아테네를 떠나기 전 나의 마지막 행선지다.

그리스의 수많은 신들 중의 신이지만 신의 자리를 언덕의 파르테논에 넘겨주고 그저 땅의 왕이 된 제우스. 너른 공터에서 쓸쓸하게 홀로 버티고 있던 안쓰러움 혹은 무언가를 잔뜩 기다리고 있는 절치부심. 그것이 아크로폴리스에서 멀리 보았을 때 느꼈던 제우스에 대한 가장 큰 감정이었다.

기둥이 무려 144개에 기둥 하나의 높이가 17미터로, 그리스에 남아있는 신전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었다는 제우스 신전. 현재는 열다섯 개의 기둥만이 남아있지만 그 위용을 가늠해 본다면 굳이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언덕 위의 파르테논보다 더 압도적인 것이 사실이다.

기원전 500여 년 전에 리보라는 건축가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지지만 그것보다도 그때 당시의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신전 내부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였던 제우스 상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대지가 아직 생기를 찾기 전인 계절이라 제우스의 황량함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부활절이 지나면 이곳에 색색의 꽃이 피고 푸르름이 덮이기 시작하겠지.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묘한 한숨을 한 번 쉬고 조용히 제우스를 감상했다. 주변에 부겐빌레아와 크리스마스로즈 같은 지중해성 꽃들이 만발해 제우스를 꾸며주고 있었다면 단상이 반감했을 것이다.

제우스는 이렇게 철저하고 고독하게 혼자 남아 있어야 제우스답다고 생각했다. 만일 눈이 왔을 때 제우스를 보았다면 어땠을까, 폭풍우가 치는 여름날 제우스를 보았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어둠에싸인 밤에 이곳에 왔다면 어땠을까.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에기나

지중해를 본다는 것은 바다를 본다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에게해를 마주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바다의 빛깔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스 바다에 떠있는 수많은 섬 중 한 곳. 그것은 어떤 중대한 선택의 문제는 아니었다. 모든 섬이 바로 그리스의 것이었기에.


눈을 뜨자마자 확인한 것은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그리스에 와서 에게해를 보지 않고 떠난다는 것은 그리스에 대한 일종의 배반행위와 같다. 다행히도 하늘은 북쪽에서부터 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이국적으로 느껴지던 몇 개의 지역들이 있다. 고비와 시나이 그리고 안데스와 지중해. 사막과 반도 그리고 산맥과 바다 등 각각 특성별로 나뉜 이곳들을 떠올리면 이상하리만큼 상념에 젖고 곧바로 눈을 감아 그곳으로 날아가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지중해를 떠올리면 이국적인 바람과 함께 수면 위에서 반짝이는 빛의 알갱이들이 일제히 반사되어 실제로 바다가 주는 현기증처럼, 때론 아지랑이처럼 그리고 신기루처럼 나의 기억 속에 미묘하게 자리잡아 왔다.

나는 몇 해 전 안데스를 보았기에 이번에 만나는 지중해에 대해서는 각별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스 바다를 감싸고 있는 지중해는 이탈리아 쪽으로 타레니아 해(海)와 이오니아를, 발칸 반도에는 아드리아를 덜어주고 그리스에 에게를 나누어주어 넉넉하게 이들을 아우른다. 오늘은 그런 나의 오래된 바람을 현실로 만나는 시간, 마침 날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화창해졌다.

배를 탈 수 있는 피레우스 항구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갔다. 그리스는 지하철 시설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이오니아해를 건너 500킬로미터도 안 되는 바로 옆에 이탈리아가 있지만 그릭(기원전 200년 무렵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인들이 ‘노예’라는 뜻의 그릭이라고 불렀기에 흔히 그리스 사람을 지칭하는 그릭은 이들에게 좋은 표현이 아니라고 한다)들은 이탈리아인들과는 달랐다. 우선 대단히 조용했고 그다지 배타적이지 않았으며 때로는 모두들 다소 웅크리고 있었고 또 표정들이 진지했다.

비수기의 끝자락인 탓에 원래 가려고 했던 이드라 섬으로 가는 배는 이미 끊어지고 없었다. 다시 떠나는 배가 오후 다섯 시나 돼야 있다고 했기에 행선지를 바꾸어야 했다. 하지만 그리스에는 크고 작은 섬이 무려 3000개가 넘는다. 까짓 어디를 가나 그리스 섬이고 원래 여행의 묘미란 노정의 급작스런 변환이 아니었던가.

크레타나 산토리니 그리고 미코노스 같은 유명한 섬들은 원래부터 계획에 없었다. 나는 그저 관광객들보다 그리스 사람들이 더 많고 그들이 직접 살고 있는 섬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마침 지도에서 보이는 에기나는 이드라섬보다 더 작아 보였다. 창구의 직원도 ‘Much better’라는 말로 나를 설득했다. 알고 보니 에기나 섬은 고대에 독립된 도시국가로서 한때 아테네와 극심한 라이벌 관계에 있었을 정도로 그 세력이 막강했던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기도 했다.

배는 생각보다 무척 컸다. 창구에서는 값이 조금 더 비싸고 빨리 갈 수 있는 쾌속선을 추천했지만 에게해를 바라보면서 빨리 간다는 말을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천히 아테네에서 멀어지더니 이내 배는 에게해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선미에 블루 앤 화이트로만 만들어진 그리스 국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푸른 바다와 하늘 그리고 하얀 구름과 햇살. 이토록 자신들에게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국기가 그리스 말고 세상에 또 있을까. 배는 두 시간이 지나 나를 에기나 섬에 내려놓았다. 배가 닿기 전 보이던 섬의 풍경은 실로 아름다웠다.

해를 정면으로 받고 있는 시간 탓인지 모든 색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섬의 미관 때문에 산토리니와 미코노스의 집이나 건물들이 의도적으로 흰색과 파란색으로 통일됐다면 에기나의 건물이며 집들은 그저 자연스러운 현장의 색들이었다.

특별히 치장하거나 다듬지 않은 에기나, 나의 선택은 옳았다.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을 피해 일부러 조금 늦게 움직였다. 먼저 바다를 따라 남쪽 제방을 따라 걸었다. 적당한 지중해의 바람이 나를 스쳐갔다.

에기나의 물은 내가 알고 있던 바다의 물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수족관처럼 맑았다. 물고기들은 실제로 손에 잡힐 만큼 가깝고 또 많았다. 나는 이런 바닷물을 강원도 삼척의 장호항에서 본 적이 있다.

메인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예배당의 창을 통해서 그리스의, 에기나의 그리고 지중해의 햇살이 사선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이곳에서 벌써부터 이번 그리스 여행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배가 정박한 항구와 그 앞으로 많은 수의 식당과 관광객들이 오갔지만 한 블럭만 뒤로 들어가도 그 혼잡함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항구에서 나와 식당가로 이어지는 거리는 그리스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거리로, 카잔차키스가 그의 불멸의 역작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곳이 바로 이곳 에기나 섬이다.

따베르나에서는 사람들이 나른한 듯 또는 열정적으로 대화를 나누었고 그저 골목의 귀퉁이에 앉아 정오의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집의 담벼락을 넘어온 잘 익은 탱자나무, 바람에 살랑거리는 빨래 그리고 타인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 에기나에서 나는 무덤덤함과 무심함의 극을 본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되 타인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 그리스식 개성의 다른 말이었 다. 따베르나에 들어갔다.

단체 관광객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난 시각이라 식당 내부에는 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섬에 왔으니 해산물로 된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깔라마리를 주문했다. 그리스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오징어 튀김이다. 커다란 빵이 덩어리째 나왔고 나는 올리브기름을 듬뿍 뿌려 천천히 한국의 오징어 튀김과는 사뭇 다른 깔라마리를 맛봤다. 그리스는 현재 국가적인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지만 음식값만큼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그다지 비싸지 않다.

바다를 따라 반대쪽으로 걷다가 언덕 위에 있는 유적군을 보게 되었다. 급작스런 변경 탓에 에기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기에 가뜩이나 유적과 유물광인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포인트였다.

유적군 내부에는 에기나 박물관도 있었고 언덕 위로 올라가면 아폴론 템플이라는 조금은 폐허처럼 변한 유적이 있었다. 유적으로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햇살 좋은 바다를 보며 교향곡 즉, 심포니가 떠올랐다.

심포니는 바로 ‘완전히 어울리는 울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나는 그 어원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느꼈다. 멀리, 바다를 미끄러지듯 요트 한 척이 소리 없이 지나갔다. 나는 처음 알았다. 바다가 노래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바다가 춤을 추며 자신만의 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바다에 펼쳐 진 은빛 주단. 나는 그 주단을 내 마음에 깔았다. 

<프리랜서 이곤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