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옥새 투쟁 25시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메신저役 A 의원 친박 핵심, 靑 참모 수시 통화

[일요서울ㅣ류제성 언론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친박계가 공천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고 4·13 총선 레이스에서 보폭을 맞추고 있다. 김 대표는 3월 30일 공천 파동의 진원지인 대구를 찾아 친박계 최경환, 조원진 의원과 포옹을 하며 단합을 과시했다. 그러나 양 진영의 휴전(休戰) 기간은 짧다. 총선이 끝나면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경쟁, 나아가 2017년 대권고지를 겨냥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동안 김 대표는 청와대, 또는 친박계와의 충돌에서 계속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별명 ‘무대’(무성이 대장)가 아니라 ‘무졸’(무성이 졸병)이란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하지만 선관위 후보등록일인 24일과 25일 양 일 간의 이른바 ‘옥새투쟁’으로 만만치 않은 투쟁력을 선보였다. 그 이틀 동안 양 진영 사이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막후에서 진행된 협상 과정을 정리해 보면 김 대표와 친박계의 정치력을 읽을 수 있다.

도발은 김 대표가 먼저 했다. 그는 24일 오후 2시30분 “후보등록 종료 시(25일 오후 6시)까지 공관위가 확정한 공천안 심사를 위한 최고위원회의를 열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최고위에 올라 와 있던 비박계 유승민(대구 동구을)·이재오 의원(서울 은평을)과 이른바 ‘진박’(眞朴) 후보가 공천을 내정받은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대구 동갑),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대구 달성군)의 지역구를 포함해 5곳을 ‘무공천’ 하겠다고 밝혔다.

무대, 부산서 측근의원들
 대책논의 극비회동

친박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김 대표는 곧장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으로 내려가 영도다리를 거닐었다. 그날 오후 4시 중앙선관위는 “당 대표 직인이 찍힌 신청서가 접수되지 않는 한 출마할 방법은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한 시간 뒤 ‘신박’(新朴)인 원유철 원내대표는 긴급 최고위를 소집해 김 대표에게 최고위 참석을 촉구한 뒤 부산으로 따라 내려갔다.

그날 오후 8시20분, 원 원내대표는 김 대표와 자갈치시장에서 전격 회동했지만 서로 입장차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25일 오전 8시 원유철 원내대표와 친박계 서청원·이인제 최고위원이 간담회를 열어 ‘대표 대행체제’도 불사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들은 그날 오전 11시 30분에 최고위를 소집 했고, 이 자리에 김 대표도 참석했다. 최고위는 4시간 여 후인 오후 3시45분 종료됐다. 황진하 사무총장은 “대구동을(이재만), 서울 은평을(유재길), 서울 송파을(유영하)의 공천 내정자는 의결을 보류하고, 대구 수성을(이인선), 대구 달성군(추경호), 대구 동구갑(정종섭) 3곳은 공천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날 오후 6시 선관위의 후보등록이 마감됐다. 공관위에서 공천을 받았던 이재만 전 동구청장 등 3명은 출마 길이 막혀버렸다. 후보등록 기간엔 당적을 이탈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무소속 출마도 봉쇄됐다.

결국 김 대표와 친박계가 3대 3 빅딜을 한 셈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최고위에서 4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다고 그런 중대한 절충안이 나왔을까. 또 김 대표는 최고위를 열지 않고, 당 대표 직인(옥새)도 찍지 않겠다며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왜 그 다음날 마음을 바꿔 상경했을까.
그런 의구심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과정이 하나 있었다. 김 대표는 24일 밤 원 원내대표와 자갈치시장 회동을 마친 뒤 밤늦은 시간에 부산의 측근 의원 4~5명을 모처로 따로 불렀다. 이 자리서 김 대표는 이한구 공관위원장의 전횡, 친박계 비선 라인의 공천 개입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특히 김 대표는 “유승민 의원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을 여러 경로를 통해 (친박계 핵심부에) 밝혔으나 묵살 당했다”며 “유 의원 지역구인 대구 동을을 무공천으로 남겨 두는 방안도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또 “당의 총선 승리와 박근혜 정부 후반기의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온갖 수모를 감수하고 참아 왔지만, 이러다 수도권 선거에서 참패할 것 같아서 최고위를 보이콧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 회동에 참석한 김 대표의 측근 의원들은 두 갈래 견해를 밝힌 걸로 알려진다. 기왕에 옥새 투쟁을 시작했으니 끝장을 봐야 한다는 강경론과 친박계가 양보하지 않을 경우 당 전체가 공멸할 수 있으니 일단 물러서자는 온건론이 엇갈렸다.

친박 핵심,
무대와 세 차례 통화 시도

 갑론을박이 오가다 친박계와도 가까운 A 의원이 총대를 멨다. 그는 먼저 친박계 핵심 중진인 B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김 대표와 대화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B 의원은 “그렇잖아도 김 대표에게 세 차례나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더라”며 “연결을 시켜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 대표가 B 의원과 직접 통화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두 사람이 막후 절충을 이뤘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김 대표와의 심야회동에 참석했던 C 의원의 전언이다.

“김 대표와 B 의원이 유승민, 이재오 의원 지역에 새누리당 후보 공천을 하지 않는 대신, 정종섭 전 장관과 추경호 전 실장의 공천을 추인하는 데 의견접근을 봤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당초 ‘OK’를 했던 B 의원이 다시 전화를 걸어와 ‘아무래도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아마도 친박계의 다른 실력자가 ‘NO’ 사인을 보낸 것 같다.”

김 대표와 친박계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했던 A 의원은 친박계의 또 다른 중진인 D 의원과 청와대 핵심 참모인 E씨와도 수시로 통화를 하며 중재를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론엔 상세히 소개되지 않았지만 24일 밤과 25일 아침 사이에 김 대표와 친박 핵심부가 A의원을 메신저로 긴박한 막후 협상을 벌인 셈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김 대표는 25일 최고위에 참석했다. 최고위 멤버인 친박계 5인방(서청원·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공천안 추인을 압박했다. 김 대표는 ‘시간 끌기’ 전략으로 나왔다. 선관위의 후보 등록이 마감되는 오후 6시까지 버티려는 것처럼 보였다.

절충안 잡아 25일
비대위서 최종 확정

회의가 장기화 되자 잠시 정회시간을 가졌다. 이 때 김 대표와 원 원내대표가 따로 회의장 밖으로 나가 귀엣말을 나눴다. 이 자리서 유승민·이재오 의원의 지역구 무공천과 정종섭·추경호 후보 공천 의결을 맞교환했다고 한다. 당초 김 대표와 친박 핵심부의 막후 협상에서 절충됐다가 폐기된 내용과 일치한다.

따라서 원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그런 카드를 제시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는 ‘신박’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정권의 핵심은 아니다. 서청원·이인제 최고위원 같은 기라성 같은 참석자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김 대표와 담판을 벌일 위치에 있지 않다. 이보다는 최고위에 참석하지 않았던 친박 핵심부에서 미리 조율된 맞교환 카드를 수용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린 뒤 이를 김 대표에게 전달하라고 원 원내대표에게 지침을 줬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최고위 회의 막판에 한 친박계 최고위원이 “정종섭, 추경호 2명만 살리면 청와대가 수용을 하겠느냐”고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자 최고위에서 유일하게 김 대표 입장을 두둔한 김을동 최고위원이 “당 공천을 청와대가 한다는 말이냐”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는 말도 들린다.

김 대표 입장에선 이번 타협으로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본인이 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상태이기 때문에 선거 후 곧바로 당권 경쟁이 시작된다. 친박계는 ‘최경환’이라는 든든한 도전자가 있다. 반면 비박계는 김 대표 이후에 당권을 노릴 만한 인물이 마땅찮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성이 있는 유승민·이재오 의원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두 사람이 무소속으로 당선돼 친박계의 반대를 뚫고 복당 절차를 밟으면 ‘최경환 대항마’가 될 수 있다. 대신 김 대표는 친박계로부터 ‘막판에 벼랑 끝 전술로 잇속을 챙기는 구태 정치인’으로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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