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다가온 ‘노년파산’…노인 2명 중 1명이 빈곤층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 가장 높은 상황에서 노년파산이 현실로 다가왔다. 서울중앙지법이 올해 1월부터 2월 사이 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은 1727명을 분석한 결과, 60대 이상이 428명에 달했다. 노인 4명 중 1(24.8%)꼴로 파산이 일어나고 있는 것. 전체 비중에서 보면 50(37.2%)보다는 적었지만 40(28.2%)와 비슷하고 30(8.9%)를 웃도는 수치다. 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노년층의 파산 선고는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 이는 최근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진입된 데다가 자녀 부양 등에 전력을 쏟느라 노후 대비에 실패한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신모(70)씨는 2002년 남편과 이혼한 뒤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면서 정신지체장애자인 막내아들과 둘이서 살았다. 그런데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살아가던 큰아들이 실직해 전세대출 빚을 못 갚아 길거리에 내몰리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이를 보다 못한 신 씨는 큰아들이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빚보증을 섰다. 그러나 큰아들은 빚을 갚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신 씨 역시 골다공증과 당뇨에 고지혈증까지 겹쳐 더 이상 식당마저 운영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이에 신 씨는 큰아들의 빚을 갚아주기는커녕 막내아들과 자신의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어려워 결국 서울중앙지법에 파산신청을 내 파산선고를 받았다.

김모(64)씨는 건설회사에서 건축사로 종사하다 은퇴한 후 퇴직금과 평생 모은 돈으로 집을 지어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규모를 점점 늘리기 시작, 은행대출을 받아 다세대주택을 지어 분양했다. 그러나 경제불황으로 서민들의 경제가 어려워져 주택이 분양되지 않으면서 경제난에 직면하게 됐고, 설상가상으로 하청업체의 채무에 대해 연대보증을 선 것이 잘못돼 평생 모은 전 재산을 날렸다. 이후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가던 김 씨는 군대 갔다 온 아들이 결혼할 때 1억 원의 빚을 진다. 하지만 바로 아이를 갖게 된 아들은 빚 갚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고 김 씨 또한 지병인 고혈압이 중증이라 택시 운전을 하는 것이 버겁게만 느껴졌다.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에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 씨는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파산신청을 냈다.
 
노년파산 점점 늘어나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2012년 기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OECD 평균 12.6%4배에 육박,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빈곤층인 셈이다.
 
노년파산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생활비와 병원비 때문이라고 한다. 선진국의 경우 은퇴가 다가올수록 빚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OECD 주요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노년층의 빚 부담이 최악이다가난에서 탈출하려고 많은 노인들이 경제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넉넉한 소득을 얻기는 쉽지 않다.
 
서울연구원의 일하는 서울 노인의 특성과 정책 방향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만 65세 이상 임금 근로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1228,000원에 그쳤다. 시간당으로 따지면 5,457원으로 최저임금(6,030)에도 못 미친다. 암이나 치매 등 노환까지 앓기 시작하면 빚의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노년 빈곤을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는 범죄나 자살 등 극단적인 사회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기준 전체 범죄 가운데 노인 범죄의 비율은 8.8%2004(3%)에 비해 10년 만에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노인 자살 문제도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OECD 최고 수준인 64.2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우리 국민들의 경제적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노후준비 부족’(28.8%)1위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노인의 소득을 높이고, 낮은 금리의 서민금융과 선제적 신용회복 제도로 노년파산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노인빈곤 문제 대비책에 대해 조언했다.
 
불안정한 소득과 병치레 등으로 경제적인 곤궁을 겪다가 결국 맞게 되는 노년파산은 이미 10년 전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꼽히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된 실정이다.
 
법원 관계자는 젊은 사람들은 빚을 져도 벌어서 갚을 수 있지만 노인 계층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 생긴 현상이다고 밝혔다.
 
60살이 넘어도 일하는 사람들이 2년 만에 10% 포인트 가까이 늘었지만 단순 노무직 등이 많아 충분한 벌이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50%에 육박하고 있는 노인빈곤율도 언제든 노년파산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빚 때문에 노년의 삶 파괴
 
홀로 사는 80대 어머니에게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50대의 아들이 찾아왔다. 농촌의 오래된 집이어서 방은 충분했다. 처음에 어머니는 아들의 귀향을 무척 반겼다. 그러나 곧 위기가 찾아왔다. 어머니의 알량한 연금으로 생활하다 보니 적자가 계속되었고, 얼마 되지 않는 연금은 곧 바닥을 드러냈다. 반 년이 지나 아들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주변의 도움으로 아들의 병원비는 겨우 해결했지만 퇴원한 아들은 후유증으로 재취업이 어려워 집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됐다.
 
<노년파산>(NHK 스페셜 제작팀, 다산북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알량한 연금은 계속 줄어들고, 의료간병비의 부담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저축도 없이 살아가는 고령자들은 파산 직전에 몰려 있다.
 
이런 노인들에게 직장을 잃은 자식이 찾아와 부모와 자식이 동반 추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축복으로 여겨지던 장수가 경제적 어려움과 맞물리면 재앙이 되고 있는 것. 노년파산을 신청한 60대 이상의 노인들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했고, 자식 교육에 힘쓰느라 노후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 또 우리나라 사회경제적 상황이나 문화 정서상 자식의 결혼비용까지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많아 노년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다.
 
1955년부터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지금 60대로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노년파산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직장에서 은퇴한 후 자영업에 많이 뛰어들지만 대다수 실패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1년에 자영업에 뛰어든 후 실패하는 인원은 60만 명인데 이 중 상당수가 베이비붐 세대라고 한다. 이렇게 노년에 사업에 실패하면 빚을 지게 되고, 이것을 갚지 못해 노년파산으로 내몰리고 있다.
 
빚 때문에 노년의 삶이 파괴되는 것, 평생 열심히 자식 키우면서 살아왔지만 노년이 돼 빚과 생계에 쫓기다가 생을 마감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최근 노년이 두렵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고 노년파산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 비율이 2050년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통계국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비율은 2050년에 35.9%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40.1%로 예상되는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지난해의 경우 노인 비율이 13%에 불과해 상위 25위에도 들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세계 최고로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보고서는 지난해 73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가 2050년에 94억 명으로 늘어나고, 65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 6억 명에서 16억 명으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5%에서 16.7%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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