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호남이 요동치고 있다. 역대 총선에서 야권 발 두 개의 정당이 출현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문재인-김종인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국민의당 야권 후보 간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야권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에서 국민의당의 압승이 점쳐진다. 녹색 바람은 광주에서 시작돼 전남북으로 북상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은 야권 내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다. 호남 없이 차기 대권은 먼 얘기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김 대표는 문 전 대표를 향해 ‘표 떨어진다. 호남 방문에 신중하라’고 분란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김종인 대표가 호남에서 환영을 받느냐면 그렇지 못하고 있다. 호남 발 대권후보 교체론 요구가 차기 대권을 위해 영입한 김 전 대표나 문 전 대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 안철수 호남 20석 석권 文·金 동반 책임론 ‘부상’
- “호남 자민련도 좋다” ‘왕따론’에 야당심판론 선택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전통적 야권 텃밭인 호남에서 제1전통야당 대신 신생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노무현이라는 영남 대통령을 배출시켰고 지난 대선에서 재차 영남 출신 문 전 대표를 지지했지만 호남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정권 교체도 실패했기 때문이다. 근거가 약한 ‘호남 홀대론’보다는 차기 대권에서 ‘문재인으로는 힘들다’는 미래 권력에 대한 실망감이 한몫하고 있다.

‘문재인 대안찾기’… 야권 심판론 부상

호남은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 수권정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지난 재보선에서는 야당 후보 대신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를 전남 순천에서 당선시킬 정도로 매섭게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당 대표이자 유력한 대권 주자인 문 전 대표가 호남에게 보여준 리더십은 분열이었다. 실망한 호남 민심은 안철수의 국민의당으로 쏠렸고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원내교섭단체까지 구성하게 만들었다.

김종인 대표가 문 전 대표의 ‘호남 방문’에 부정적인 뜻을 피력한 배경이기도 하다. 김 대표 본인도 호남을 방문하기 전까지 ‘반문재인 정서가 이렇게 높을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선거 막판 호남에 출마한 후보들이 문 전 대표에게 지원 유세를 요청하자 김 대표는 마지못해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 발 양보했다. 그러면서 “특정 후보를 위해 지원 유세하는 것이 전체 호남 투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선 문 전 대표 스스로 판단하라”고 전제했다.

문 전 대표의 호남 지원 유세를 공식·비공식으로 요청한 인사는 5명의 후보다. 광주 동남갑의 최진 후보, 전남 여수을 백무현 후보와 전북 전주을 최형재 후보, 정읍·고창 하정열 후보,  전주을에 한병도 후보다. 다수가 친노 인사이자 친문인사들로 야권 텃밭에서 당선이 만만치 않은 후보들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백무현 후보는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주승용 후보에 두 자릿수 이상 지고 있다. 전주을에 한병도 후보 역시 국민의당 조배숙 후보에 크게 뒤지고 있다. 최형재 후보의 경우 새누리당 정운찬 후보, 국민의당 장세환 후보와 팽팽한 3파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막판 새누리당 정 후보의 이탈표가 국민의당 장 후보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안심할 수 없다. 최진, 하정열 후보도 국민의당 후보에 맞서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지고 있다.

주목할 점은 호남내 당선권에 있는 더민주당 후보들은 문 전 대표에게 선거 지원유세를 요청하지 않았다. 반면 당선권에서 멀어진 후보들의 지원 요청이라는 점에서 막판 역전을 기대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 측에서는 열세인 친문 후보들이 공천에 배려를 해준 당 대표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선거 지원 요청을 하고 있다는 혹평을 내놓고 있다.

호남 더민주당 후보, “문재인 대권 포기하라!”

급기야 광주 북갑에 출마한 더민주당 정준호 후보는 “문 전 대표는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하라”고 주장까지 나왔다. 유력한 대권 주자이자 더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문 전 대표로서 호남에서 민심 이반은 곧 대권 가도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문 전 대표 역시 이런 지적에 대해 동의했다. 문 전 대표는 “정권 교체는 호남만으로도 안 되고, 호남을 배제한 가운데 친노.민주화 세력만으로도 안 된다”며 “호남의 지지를 받아야 대선 주자 자격이 있다는 말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호남에서 문재인 대표의 ‘총선지원 무용론’을 제기했던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와 각 세우기는 계속됐다. 김 대표는 최근 “야당 내 차기 대선 주자가 없다”며 “아직까지 뚜렷하게 사람을 못 만난 것 같다”고 ‘문재인 비토론’도 제기했다.

또 그는 “제가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에 우리나라의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를 골똘히 생각해보고 찾아봤다"며 “여론조사 상에 나타난 후보들은 여러 명이 있었지만, 여론조사 상 후보가 반드시 실질적인 대권 후보가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의 연이은  ‘문재인 비토론’은 호남 민심을 달래기 위한 발언으로 읽힌다.

문 전 대표 측에서도 불쾌한 모습이다. 김 전 대표가 문 전 대표의 호남 지원유세에 부정적인 발언으로 곤혹스런 처지로 몰렸기 때문이다. 김 전 대표의 발언 전까지도 대권주자이자 전직 대표로서 자연스럽게 호남에 지원유세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호남을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하게 만들었다. 선거 지원을 나선다고 해도 눈치를 보며 선거지원을 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 대표가 호남에서 환영을 받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김 대표의 국보위 전력에 비례 대표 2번 파문으로 호남 민심으로부터 신뢰를 받기 힘든 상황이다. 대신 가장 큰 수혜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이 받고 있다. 안 의원은 최근 호남에서 20석 이상을 가져갈 것으로 내다봤다. 호남을 포함해 전국에 퍼져 있는 호남 출신 인구가 800만명이 넘는다는 점에서 정당지지별 비례대표의석수까지 합할 경우 30석 가까이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호남 발 정권교체 위한  전략적 투표”

야권 내 한 인사는 “호남민심은 분명하다. 문재인 카드로는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힘들다는 정서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며 “이번 총선은 최소한 호남민에게는 ‘야권 심판론’이 ‘박근혜 정부 심판론’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총선보다는 호남 발 정권교체를 위한 전략적 투표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수도권에서 몇 석 얻을 수 없는 국민의당을 선택한 호남이 ‘호남 자민련’이라는 혹평 속에서도 결집하는 배경이다.

이어 이 인사는 “그렇다고 호남 민심이 차기 대권 주자로서 사이즈가 들통난 안철수를 문재인 대안으로 보지도 않는 것 같다”며 “호남민의 지지 속에 안철수가 부각 됐지만 속내는 문재인 이후 새로운 인물을 기대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언급했다. 문 전 대표와 김 대표가 호남에서 열세를 만회할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한 묶음으로 2선 후퇴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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