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수사 기관 무차별 통신 자료 수집 논란 왜?

 

▲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7일 국회 정론관에서 자신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사찰 의혹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정대웅 기자)
2014
년 조회된 개인 통신 자료, 국민 4명 중 1
범죄수사에 필수, 다른 용도로 오·남용 가능성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통신 자료 수집이 도마에 올랐다. 이들의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은 정치인, 시민단체 활동가, 언론인 등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침투해 있었다. 더구나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이용될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보·수사기관의 이른바 묻지마 수집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17일의 미스테리. 그날 국가정보원이 대체 무슨 연유로 그렇게 많은 통신 자료를 가져갔는지 알 수가 없다.” 국정원에 의해 본인의 통신 자료가 수집된 더불어민주당의 장하나 의원이 한 말이다. 지난 17일 하루 동안 국정원이 장 의원을 포함해 정치인, 시민단체 활동가,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약 50여 건의 통신 자료를 수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장 의원은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통신 자료도 이렇게 털리는 마당인데 우리 국민들 인권침해는 불 보듯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원·검찰·경찰 등 수사·정보기관의 통신 자료수집 범위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미쳤다. 한 달에 두 번 모여 경기 흐름, 주식 등 경제 문제를 공부하는 김광수경제연구소 시민공부방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서모씨는 지난달 두 차례 본인의 통신 자료가 경찰에 제공됐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경찰이 왜 내 통신 자료를 들여다봤는지 모르겠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평소 정부·여당에 비판적이라고 밝힌 그는 만약 이 같은 이유 하나만으로 일반 시민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들여다봤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라며 이게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 가능한 일인가라며 목청을 높였다.
 
통신 자료는 이동통신 이용자의 이름·주민번호·주소·전화번호 등을 포함하는 개인 신상 자료로, 특히 주민 번호는 추가적인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만능열쇠로 활용될 수 있어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수사기관이 주민번호를 통해 당사자의 범죄경력이나 위치정보를 마음대로 알아낼 수 있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보내면 진료내역, 병명, 소득, 직업 등의 민감 정보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공익법센터 이지은 간사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수사기관에 수집된 통신 자료로 인해 당사자는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회건수, 미국 수사기관에 비해 60배나 많아
 
2014년 수사기관이 조회한 통신 자료는 1300만 건이고, 지난해 상반기에만 590여만 건이 넘는다. 국민 4명 중 1명은 통신 자료가 조회됐다고 볼 수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건수는 미국 수사기관에 비해 60배나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 수사기관의 조회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본래 수사기관이 통신 자료를 조회·수집하는 주된 목적은 범죄 수사다. 통신 자료는 강력사건을 해결하는 필수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살인사건 용의자가 휴대폰을 끄고 종적을 감춰 추적할 방법이 없을 때 수사기관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용의자의 통화내역을 받는다. 경찰은 용의자가 자주 통화하는 전화번호를 확보하지만 번호밖에 없어 누구인지 알아낼 필요가 있을 때 이통사에 통신 자료를 요청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7월 부산의 한 살인사건의 용의자와 공범을 잡은 바 있다.
 
무차별 수집 등 오·남용 가능성 커
 
문제는 수사와 무관하게 개인정보가 손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신 자료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수사에 한해서만 엄격히 사용돼야함이 원칙이다. 그러나 실제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국정원은 지난 17일에만 같거나 연속된 문서번호로 정치인·야당 당직자·기자·대학교 총학생회장 등 32명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번호를 동시에 하나의 공문으로 요청한다는 정보·수사 기관의 설명으로 볼 때 이들은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특정 사건으로 서로 연결될 만한 고리를 짐작조차 못 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이 간사는 현재 통신 자료 무단제공 사례를 분석해 보면 특정 시점이나 문서번호 등에서 자료가 제공된 당사자들끼리 뚜렷한 친분관계나 접점이 없는 경우가 많아 통신 자료가 남용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사찰등 다른 목적을 위해 무작위로 통신 자료를 조회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정보 취급이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도 대두
 
전문가들은 또 통신 자료 수집 과정이 지나치게 불투명하다고 지적한다. 통신 자료가 수집된 당사자들이 수사기관이 자료를 요구한 진짜 이유를 알기 힘들다는 것이다. 적절한 수사에 납득할 만한 이유로 수집된 건지, 악용의 소지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이통사에 물어보면 수사기관의 의뢰가 오면 자동적으로 넘겨줘 모른다고 하고, 수사기관에선 수사상 기밀이란 이유로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뿐이다. 게다가 자신도 모르게 개인정보가 수사기관에 넘어갔는데도, 통신사에 직접 조회해보기 전까지 그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도 큰 문제다.
 
이에 전문가들은 영장이 핵심방안이라고 말한다. 사유를 명확히 해 법원의 영장을 받도록 하면 무분별한 통신 자료 조회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조회 후 대상자에게 결과를 통보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보·수사기관이 계좌추적실시 후 최장 1년 이내, ‘통화내역조회는 사건 종결 후 30일 이내로 당사자에게 그 결과를 통보해주는 것처럼 보완 장치를 마련해 오·남용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제공됐느냐하는 통지권을 다른 부분은 다 보장받고 있는데, 통신자료만 보장 못 받고 있는 건 제도상의 결함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참여연대 등 공동대응 단체들은 통신자료 무단제공 사례를 분석해 수사기관이 필요한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은 권한 남용의심 사례에 대해 헌법소원 제기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 밝혔다.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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