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성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중국이다. 지도를 놓고 보면 산동 땅의 동쪽 끝과 우리 땅의 서쪽 끝은 지금 당장 바다를 헤엄쳐 서로의 손을 맞잡기라도 할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산동은 우리와 많은 점에서 닮았다. 같은 위도에 위치해 있어 뚜렷한 사계절을 나타내고 비슷한 기후와 날씨를 보여준다. 또한 열강에 의한 침략의 아픈 역사가 남아 있고 한국인에게 익숙한 음식 맛을 갖고 있어 정서적으로도 친근하다. 제남은 이런 산동성의 성도로 4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간직한 역사의 땅이자 교통의 요지이며 천성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샘들이 흐르는 곳이다. 제남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는 치박이 자리한다. 실크로드의 발원지이면서 오랫동안 상업도시로 이름을 떨쳤던 이곳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유적들이 다양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풍경이 가득하다면 지금 제남과 치박으로 떠나도 좋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산동성 여행은 칭다오맥주로 익숙한 중국 속 작은 유럽 청도와 중국의 오악 중 으뜸이자 천하제일산이라 불리는 태산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서울에서 부산 간의 비행거리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마음은 멀기만 했던 산동, 그 땅에서 이제 막 싱그러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봄꽃 같은 여행지, 제남과 치박을 찾았다.

有朋自遠方來不亦樂呼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

산동성을 방문하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문구로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산동 사람들은 외지에서 찾아 온 손님을 매우 반기는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으며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손님이 배부르게 먹고 마실 수 있도록 대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72개의 맑은 샘으로
둘러싸인 성도

지하에서 보글보글 물방울이 솟아오른다. 집에서 흘러나온 물방울이 마을에서 샘을 이루고, 골목과 골목 사이를 흘러나온 샘들은 호수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제남은 그렇게 4000년을 말없이 흘러왔다. 제나라의 수도로, 산동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로 그 세월을 잠시나마 스쳐 지나간 이라면 누구나 다 제남의 샘에 몸과 마음을 내어주었으리라.

흑호천

숙소를 나와 골목을 잠시 걸으니 계절이 의심스럽기만 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막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아나는 때이지만 길가에 펼쳐진 노천탕은 한여름을 방불케 한다.

지하에서 솟아나오는 물의 온도는 18도로 계절에 상관없이 같은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물 속은 따스한 온기를 유지한다. 버드나무가 길게 드리운 산책로 사이로 샘이 운하를 이뤘다.

지난밤 멋진 야경을 자랑하던 해방각 주위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샘물을 긷는다. 오늘 하루 온 가족이 함께 밥을 지어먹고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길어가는 풍경은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 온 이곳의 일상일 것이다.

유람선을 타러 가기 위해 산책로를 걷다가 호랑이상을 만났다. 용맹스러운 표정의 호랑이들 이 샘물을 지키고 선 모습. 다리 위에 올라 물방울이 솟아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니 어디선가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물이 돌에 부딪치는 소리, 마치 호랑이가 외치는 소리와 같아서 흑호천이라 불리게 됐다는 그 소리가 물길을 따라 흐른다.

대명호

도시의 틈을 유유히 흐르던 유람선이 수문을 지나 호수 앞에 다다랐다. 호수의 입구를 알리는 다리 위 난간에 선 사람들이 지나가는 일행을 향해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다리를 통과하자 드디어 호수는 가려졌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72개의 샘이 저마다 흘러들어와 이곳에서 거대한 호수가 된 대명호. 청나라의 문인들은 이 호수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읊었다. ‘사면이 연꽃이고 삼면이 버드나무로 덮였네. 절반은 도시요 절반은 호수로다’ 번화한 도시의 품에 포근히 안긴 채 잔잔히 그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아늑한 풍경에 여행의 노곤함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다.

천연 그대로의 호수 위로 안빈낙도가 그리운 사람들이 스스로 마련했을 인공의 공간들이 발걸음을 이끈다. 한때는 청나라의 건륭제가 머무르기도 했던 대명호를 찾은 사람들은 평범하지만 또 이곳에서 특별하다.

이만큼의 안식과 평화를 매일같이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연꽃이 만발해 있을 풍경이 또 다른 여행을 마음속에 그리게 한다.

[여행TIP] 운하에서의 특별한 체험

흑호천에서 유람선을 타고 대명호로 가는 길에 한 가지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배가 갑자기 앞뒤가 가로막힌 곳에 멈춰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가야만 하는데 물의 높이가 맞지 않아 부잔교를 통해 그 높이를 맞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춰선 유람선이 적당한 높이까지 가라앉고 나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수문이 열리며 다시 길을 내어주니 놀라지 말고 마음 편히 기다리도록 하자.

곡수정거리

대명호 남문을 나오니 맞은편에 곡수정거리가 길을 안내한다. 작은 못 너머로 색이 바랜 회색 벽돌 옛집들과 큰 장대를 들고 통통배를 젓고 있는 사공, 그리고 샘물 앞에 앉아 빨래를 빨고 있는 아낙의 모습이 이 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들려준다.

특별히 가공된 과거가 아닌 이곳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유지돼 온 평범한 일상들이 이제는 민속거리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서인지 소소한 풍경 하나하나가 더 정겨워 보인다.

집집마다 샘물이 있고 곳곳마다 버드나무가 서 있는 곡수정거리는 좁은 골목들로 이어지다가 또 하나의 이색적인 풍경을 꺼내놓는다. ‘왕부지자’라는 이름의 인공호수. 집과 집들 사이에 마련된 이곳에서 속옷만 대충 걸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멱을 감고 있다.

그저 몸을 담구고 한가로이 앉아있는 사람, 떼를 지어 수영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진지한 표정과 숙련된 자세로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연세 지긋한 어른들의 놀이터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마을 노천탕, 세상에 이렇게 운치 있는 수영장이 또 있을까.

부용가

곡수정거리는 또 하나의 옛 거리로 이어진다. ‘부용가’라 불리는 이 거리는 금과 명 그리고 청나라 때의 전형적인 상업거리이자 문화거리로 문인들이 술을 마시며 시를 읊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깔끔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들이 넘쳐나는 먹자골목으로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는 곳. 밤에 가야 제대로 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지만 오전 11시가 넘어서자 비교적 한가해보이던 거리에 사람들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상점 앞에는 하나 둘 줄이 늘어서고 사람들의 손에는 각양각색의 먹을거리들이 들렸다. 중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꼬치 는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듯이 대형 기계를 통해 구워지고 한쪽에서는 젓가락으로 메뚜기나 누에고치와 같은 작은 곤충들을 굽느라 여념이 없다.

먹거리의 종류는 그야말로 셀 수조차 없다. 전통적인 먹을거리에서 요즘의 트렌드에 맞춘 예쁘장하고 아기자기한 음식들까지 이곳에 있는 음식을 다 먹어보려면 한 달도 부족하지 않을까. 몇 가지 음식 맛을 보고 깜찍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과일 음료를 사서 부용가를 빠져나왔다.

눈앞에 새롭게 펼쳐진 제남 최고의 번화가는 부용가가 제남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있는 통로임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여행TIP] 부용가에서 가장 인기 많은 집

‘국족이라는 브랜드명의 초두부가 이곳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음식이다. 가게 이름도 ‘초두부’로 자칫하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작은 가게이지만 전국적으로 유명한 제남 최고의 맛집 중 하나다. 삭힌 두부이지만 그리 역하지는 않아 한 번쯤 맛볼만하다.

제남의 또 다른 명소들
‘천성광장’

천성광장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제남의 응접실’ 이라고도 불린다. 유네스코에서 ‘ 국제예술 광장’으로 지정한 곳으로 매일 저녁 8시가 되면 클래식 음악에 맞춰 화려한 분수쇼가 펼쳐진다.

대리석으로 설치된 광장의 바닥과 연꽃 모양의 음악 분수 그리고 38m 높이의 샘을 상징하는 조각상 등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어 분수쇼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주변에는 각종 쇼핑센터들이 밀집해 있고 제남시 최고의 샘으로 유명한 표돌천이 바로 앞에 있어 제남을 찾아온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리는 곳이다.

낮과 밤의 풍경이 너무나 다른 곳이니 시간이 된다면 하루쯤은 천성광장 일대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 .

표돌천

제남의 중심에 위치한 제남을 대표하는 샘물인 표돌천은 제남의 72개 샘물 중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청나라 강희제와 건륭제는 이곳에 찾아와 그 아름다움을 보고 ‘천하제일천’이라 칭하고 친필 글씨를 써 주었다고. 맑은 연못 가운데 자리한 표돌천은 세 갈래로 높은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물이 맑고 투명하며 그 맛 또한 달다. 건륭제는 그 맛에 반해 북경에서 가져온 옥천수를 버리고 표돌천의 샘물로 바꿔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산동박물관

중국 최초의 성립 박물관인 산동박물관은 21만 개의 소장 유물을 자랑하는 50년 전통의 박물관으로서 중국에서 7번째 규모로 손꼽힌다. 5000년 황하문명의 역사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이곳은 공룡 화석부터 근현대 복식사까지 산동성 내 시대별 유물들이 총망라돼 있다. 입구에서부터 웅대한 규모에 놀라게 되고 수십 개의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

[여행TIP]

제남 여행의 정답, 유람선투어
샘물의 도시 제남을 여행하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은 역시 물 위를 떠다니며 노니는 것이 아닐까. 당나라의 대문호 이백과 두보가 노래한 제남의 풍류를 온전히 만끽해보는 100분간의 도시유람.

추천 유람선 여행 코스(소요시간:약 100분)
흑호천 유람선센터-(10 분)-천성광장-(20 분)-표돌천-(30 분)-오용담 -(35 분)-수문-(40 분)-대명호서남문-(50 분)-가헌사-(60 분)-사가항 구-(70 분)-소동호-(75 분)-수문-(80 분)-동대문-(90 분)-청용교-(100 분)

흑호천 기상에 따라 유람선이 운행되지 않을 수 있으며, 각 선착장마다 승선과 하선이 모두 가능하다. 선착장은 총 10 개로 각 선착장에서 10 위안의 요금을 지불한다. 총 10개 선착장, 100 위안. 
 


<다음호에 계속>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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