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룰라, 2003~2010 재임)은 2002년 말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상파울루에 모인 군중을 향해 말했다.

“제가 재임하는 동안 모든 국민이 하루 세 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브라질을 만들겠습니다!” 당시 룰라 앞에는 5300만 명의 빈민이 있었다. 브라질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었다. 룰라는 기아와 빈곤을 추방하지 못하면 브라질의 미래가 없다고 보고 대통령으로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브라질 국민이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출발점으로 그는 ‘빈곤과 기아 퇴치’를 위한 특별 행정부처를 설치했다. 과거 정부에서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사회복지정책을 통합했고, 그것을 ‘포미 제로’(Fome Zero)와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라는 두 가지 사업으로 정리했다.

‘배고픔은 없다’라는 뜻의 포미 제로는 빈곤층에 식량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제도였고 ‘가족 지원금’이라는 뜻의 볼사 파밀리아는 빈곤층과 저소득층에게 생계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였다. 볼사 파밀리아는 취학지원 사업, 급식지원 사업, ‘서민식당’, ‘서민약국’, 전기공급 사업 등 기존 사회정책들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룰라 정부의 대표적인 복지정책이었다. 볼사 파밀리아는 빈곤층과 저소득층에게 생활 형편에 따라 매월 1인당 13~114달러의 생계 보조금을 지급했다. 보조금은 대부분 식료품, 의약품 및 의류 등을 구입하거나 자녀 학비로 사용됐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브라질 빈곤층은 2002년 5300만 명에서 2009년 말 3000만 명 수준으로 줄었고, 2014년에는 전체 인구의 8퍼센트인 1450만 명으로까지 감소했다.

 

유가하락과 수출 둔화 등
경제 복병 만나

여기까지는 좋았다. 경제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복지가 나쁠 것이 없다. 문제는 경제가 덜컹거리는데 복지 부담으로 브라질 정부가 등이 휘고 복지 조달 때문에 국가 부채가 늘어간다는 것이다. 역동적인 경제를 운영한다고 해서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BRIC(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라는 신조어까지 만들게 했던 브라질의 경제가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자당 출신 대통령들을 거치면서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브라질의 유명 기업인이자 자선사업가인 고(故) 안토니오 에르미리오 지 모라에스는 2014년 타계하면서 “브라질은 폼페이의 마지막 시간들을 살고 있다”는 탄식을 남겼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브라질은 세계 투자가들이 앞 다퉈 달려오던 곳이었다. 그랬던 브라질이 지금은 세계 최대의 경제적 중환자가 돼 있다. 중국 경제의 감속이 세계경제에 우려를 던진다면 브라질 경제의 악화는 지구촌에 위협을 가한다. 왜냐하면 브라질은 국내총생산(GDP)으로 따져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기 때문이다.(1인당 소득은 한국의 약 3분의 1) 만약 브라질 경제가 지금보다 더 나빠져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를 받아야 할 상황에 빠진다면 그로 인한 충격은 세계 신흥국들에 전염될 수 있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도 태국 바트화(貨)의 갑작스러운 폭락으로 촉발돼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브라질 경제는 현재 자유낙하 중이다. 이 나라 경제는 지난해 3.8% 마이너스 성장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브라질이 올해에도 마이너스 4% 성장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브라질이 이처럼 급속하게 내리막길에 들어선 것은 룰라의 복지정책을 룰라의 후계자인 호세프 대통령(2011~)이 그대로 물려받아 실현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경제가 호황이었던 2000년대에 룰라 당시 대통령은 재정을 투입해 수많은 사회적 지원 사업을 벌여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었다. BRIC이라는 용어도 그때 생겼다. 이후 이 용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추가돼 BRICS로 확대됐다. 하지만 그러다 갑자기 유가 폭락이라는 복병이 산유국 브라질에 찾아왔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 해 브라질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이 브라질 천연자원 수입을 줄이기 시작했다.

실시한 복지 되돌릴 수 없어
경제 더 나빠져

브라질 중앙은행장을 지낸 아르미니오 프라가는 브라질의 급속한 추락을 가리켜 “나라가 앞서 나가고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브라질 신문 ‘오 에스타도 지 상파울루’에 말했다. 그는 “브라질은 차입과 재정 확대에 매달림으로써 결국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는 룰라에게서 정부를 물려받은 호세프가 룰라가 했던 사회정의 사업들(복지)을 계속 확대해 나간 것을 가리키고 있다. 프라가는 “브라질은 잠에서 깨어 보니 마비된 국가라는 악몽을 만난 격이다. 그것은 경제적 비극”이라고 말했다.

룰라와 호세프 치하에서 브라질이 한 일은 2000년대의 호황이 영원히 이어지리라고 여긴 것이었다. 그래서 브라질은 지출과 차입을 계속했다. 쉽게 말해 브라질은 ‘복지후생의 덫’을 만들어 그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룰라와 호세프의 노동자당은 사회적 지원과 기업복지 사업을 계속 쌓아 나갔으며 그런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엄청난 차입을 했다. 복지후생의 결정적으로 불리한 면은 그런 사업을 한번 시행하고 나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경우 그런 복지후생 사업이 현재 국가예산의 75%를 잡아먹는다. 복지지출과 소득 재분배를 위한 이전(移轉)지급에 묶인 돈을 삭감하는 것은 사회적 소요를 각오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이전지급은 대부분 노동자당의 텃밭인 북부의 가난한 주(州)들에 뿌려진다. 여기에다 예산의 나머지 25% 가운데 상당 부분이 브라질의 불어난 부채에 대한 이자로 나간다.

브라질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 룰라는 2000년대 정부가 자금을 대는 일련의 사회적 지원 사업들을 맨 앞에서 이끌었다. 그렇게 해서 빈부 격차가 줄었다. 당시는 경제가 호황이어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 복지 사업들은 브라질 정부 예산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전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사람’이라고까지 불리는 호세프는 지금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브라질을 단합시키고 있다. 지난 12월에만 해도 호세프의 지지도는 75%였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 브라질 저소득층의 65%가 호세프를 싫어하게 됐다. 그들은 대통령이 긴축정책으로 돌아서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만약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이 지난 십수 년간 누려온 나아진 생활수준이 뒷걸음질 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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