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성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중국이다. 지도를 놓고 보면 산동 땅의 동쪽 끝과 우리 땅의 서쪽 끝은 지금 당장 바다를 헤엄쳐 서로의 손을 맞잡기라도 할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산동은 우리와 많은 점에서 닮아있다. 같은 위도 상에 위치하고 있어 뚜렷한 사계절을 나타내고 비슷한 기후와 날씨를 보여준다. 또한 열강에 의한 침략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고 한국인에게 익숙한 음식 맛을 갖고 있어 정서적으로도 친근하다. 제남은 이런 산동성의 성도로 4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간직 한 역사의 땅이자 교통의 요지이며 천성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샘들이 흐르는 곳이다. 제남에서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는 치박이 자리한다. 실크로드의 발원지이면서 오랫동안 상업도시로 이름을 떨쳤던 이곳에는 시대를 넘나드는 유적들이 다양하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풍경이 가득하다면 지금 제남과 치박으로 떠나도 좋지 않을까.

실크로드가 시작된
고도(古都)의 품격

주촌고상성의 옛 거리에서 화사한 무늬를 수놓은 실크의 향연이 펼쳐진다.

박산(博山)의 거리는 도자기와 유리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운집해 길 위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장인들이 연출해놓은 값진 풍경들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도시의 명성과 품격을 아낌없이 드러내어 쉬이 눈을 뗄 수 없다. 제산은 웅장한 병풍이 돼 그 모든 것들을 말없이 지켜낸다.

주촌고상성(周村古商城)

주촌고상성으로 들어가는 길, 뜻밖에도 한글 안내문을 마주했다.

‘1365미터의 대가, 진한 시기에 시작돼 당과 송나라 때 그 모습을 갖췄으며 명·청시기에 번영을 이루었다. 1904년 주촌이 대외에 개방됐으며 여러 유명 상가들이 운집해 한때 극히 번영했다. 대가는 크지 않으나 날마다 되로 금이 들어온다’ 그리고 대가를 걷다가 커다란 비석에 새겨진 또 다른 글씨를 발견했다. ‘금일무세금(今日無稅金), 오늘은 세금이 없다’

주촌고상성과 치박은 이 두 가지 이야기로 설명될 수 있는 곳이다. 중국 최고의 비단을 생산해 실크로드라는 거대한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고 그 명성은 최근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리화시’라는 인물은 스스로 이 마을의 세금을 모두 부담함으로써 각지의 부자들을 끌어모아 이곳을 중국 역사상 최초의 보세구이자 천하의 재화가 모여드는 교역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주촌고상성은 우리가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가 아닐까.

둥근 해가 먼 하늘에서 주촌의 작은 마을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진다. 하지만 그 해는 내일도 어김없이 이곳에 환한 빛을 내려줄 것이다. 기나긴 세월동안 그래왔듯, 내일도 또 그렇게.

제산(齊山)

‘제산’ 두 글자가 펄럭이는 깃발 아래에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준비된 전동카를 타고 도착한 곳은 춘추호. 가뭄 때문인지 물이 말라버린 호수 위를 출렁다리를 통해 건너가면 이 마을의 특산품들을 만날 수 있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늑대의 가죽이 걸려 있는 상점과 특이한 얼굴 형상을 한 돌조각, 53도의 특산주를 파는 제산술방과 대장간, 그리고 직접 만들어 파는 제산 전병가게까지. 제나라의 전통이 느껴지는 이 마을에서 얻어가는 건, 사람들의 따스한 인심과 순수한 마음이다.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 홀로 덩그러니 놓인 작은 절과 폭포가 나타난다. 제산 4경 중 하나인 관음폭포, 해발 700미터의 이곳에는 자연 형성된 관음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는 배가 다닐 수 있는 천연호수가 있다고 한다.

좁다란 길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사람 한 두 명이 지나다닐 수 있는 등산로 아래는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커다란 절벽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풍광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왜 제산이 산동의 그랜드캐니언 이라고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모습은 제산의 또 다른 4경들로 이어진다.

산의 정상에 가까워졌음을 느끼자 성벽이 나타난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와 노나라의 경계가 되었던 이곳, 성벽 너머로 뾰족뾰족 솟아오른 산봉우리들이 한 폭의 그림을 이룬 그 땅은 노나라의 땅이었다.

인근에서 산사람들을 만났다. 잠시 쉬어가는 사이, 그들이 삶은 달걀과 따뜻한 죽을 내온다. 하산하는 길의 백미는 100m 나무구름다리, 천계이다. 225개의 계단이 절벽 사이로 가파르게 꼬불꼬불 이어진 계단을 내려와 뒤를 돌아보면 더욱 아찔하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제왕의 맥, 제문동. 오묘한 형상의 동굴 사이로 나타나는 깊은 산골짜기의 풍경 앞에서 명산의 위엄과 고독을 맛본다. 그것은 아마도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숨결이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주변볼거리]

개원동굴
‘산동제일동’이라는 개원동굴.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이 동굴은 자연 이 창조해낸 예술품과 그 창조물들을 좀 더 아름답게 꾸미려는 인간의 노력이 만나 색다른 분위기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돌고래, UFO, 박쥐떼, 정원, 피사의 사탑 등 뜻밖이지만 낯설지 않은 모습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견해가 달라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관람을 하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첨단기술의 화려함이 융합된 나름의 새로운 시도가 흥미롭다.

중국 제일 유리공예전시관
치박은 예로부터 유리공예가 발달해 중국 유리 산업의 메카로 손꼽힌다. 아주 작은 장식품에서부터 눈이 부시도록 화려한 화병에 이르기까지 생산되는 제품도 무척 다양하다.

치박시 박산구에 위치한 유리공예 전시관에는 이 지역의 유리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과 현대의 유리 예술품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관이 있어 아름다운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으며 또 직접 유리공예를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관수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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