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의 건물들이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 있는 빌딩 숲. 그 가운데 32층 고층건물 맨 꼭대기에서 혼자 덩그러니 요가를 하고 있는 남자. 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으로 만들어지는 몸의 실루엣이 범상치 않은 그가 바로 영화 <올드보이>에서 고독한 악한을 열연하고 있는 ‘우진’역의 유지태다. 100평이 넘는 펜트하우스에서 혼자 사는 우진은 세상에 더 가질 것이 없을 만큼 부유한 사업가지만,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자신이 15년 동안 가둔 후 풀어준 대수(최민식 역)가 전부다. 과거에 갇혀 사는 거부 이우진이 혼자서 즐겨 하는 운동은 요가. 박찬욱 감독은 요가 중에서 가장 어렵다는 ‘메뚜기’ 자세를 유지태에게 지시했다.

그는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수련원에서 개인 강습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문 이 메뚜기 자세는 가슴 아래 두 팔을 펴 바닥에 붙이고 다리를 거꾸로 들어올리는 고난이도의 요가. 허리와 다리의 근육이 제대로 이완이 되지 않고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이 자세를 위해 유지태는 근육치료까지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촬영중에도 짬짬이 요가 연습에 몰두했던 유지태가 마침내 수행의 결과물을 카메라에 담은 이날, 유지태는 몸이 거꾸로 들어올려져 얼굴에 피가 몰린 가운데도 표정 한번 찡그림 없이 고독한 악인의 차가운 인상을 만들어 냈다. 그가 석 달 동안 쏟은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박감독의 오케이 사인은 단번에 떨어졌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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