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초 파나마 최대 법률회사(로펌)인 ‘모색 폰세카’의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 서류상 회사) 1천1백50만 건 내부 문서와 1만4천153명의 고객 명단이 언론에 폭로되었다. 이 폭로 문서는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 파나마 문서들)’라고 통칭되며 각국 재력·권력자들의 해외 재산도피와 탈세 혐의를 다시 떠올렸다.

그들은 겉으론 지체 높은 명망가인 체하면서 속으론 탈세와 돈세탁을 주저치 않는 추한 두 얼굴의 인간들이다. 전 세계 금융자산의 8%에 해당하는 7조6천억 달러(9천120조 원)가 조세회피처에 숨겨져 있고 매년 2000억달러(240조 원)의 세금이 포탈된다. 조세회피처는 세금이 면제되고 역외회사 설립이 자유로워 돈 세탁과 탈세에 이용된다. 돈세탁은 탈세·뇌물·범죄로 얻은 돈의 출처를 숨기거나 돈의 소유자를 위장해 조사기관의 조사·압수를 피하기 위한 불법 행위를 말한다.

아이스랜드의 시그먼더 군뢰이그손 총리는 부인이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이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소유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다. 영국의 데이빗 캐머런 총리도 선친이 조세회피처 바하마에 설립한 ‘블레어모어 홀딩스’의 역외 신탁자산 1만2천 파운드(1950만 원)를 샀다가 총리 취임 직전 매각했다고 했다. 캐머런 총리도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파나마 페이퍼스에 대한 언론 취재는 독일 뮌헨의 일간지 ‘쥐드도이체 차이퉁’ 편집국에 들어온 익명의 제보로 시작되었다. 이 신문은 취재 대상이 너무 방대하므로 미국 워싱턴의 ’조사언론인국제협회(ICIJ)‘에 협조를 구했다. 이 언론인협회는 80개국의 100개 언론기관과 언론인 400명의 협력을 끌어냈다.

1만4천153명의 명단에는 영국과 아이스랜드 총리 외에도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의 매형인 덩자구이(鄧家貴)가 영국령 버진아이랜드에 회사 2개를 소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최고 권력기구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2명의 친인척들도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거나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나마 페이퍼스에는 중국인들이 가장 많다.

자본주의 사회는 썩었다고 외쳐댔던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측근이며 국토안전부장관을 지낸 안드리안 벨라스케스도 아내와 함께 명단에 올라 있다. 그들은 조세회피처 세이셸공화국에 유령회사를 차려 200만 달러 상당의 자산을 모은 것이 드러났다. 칠레의 반부패 국제척결기구인 ‘국제 투명기구’ 위원장도 파나마 페이퍼스에 걸려들어 사임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들도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인 196명이 포함되었고 그들 중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변호사도 끼어 있다. 노 변호사는 2012년 5월 영국령 버진아이랜드에 회사 3곳을 세워 주주 겸 이사로 취임했다. 세 곳 모두 1달러짜리 주식 1주만을 발행한 유령회사다.

파나마의 ‘모색 폰세카’ 로펌은 자사와 거래한 회사나 개인들의 행위가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한 언론사측에 법적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모색 폰세카’ 거래자들이 상품과 금융 자유이동의 글로벌 자본주의 제도를 이용해 조세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는 건 그들의 저의가 탈세나 돈 세탁에 있었음을 의심받기에 족하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35개국 국세청들은 세무 정보를 공유하고 탈세와 돈세탁 등에 관해 공동 대응키로 했다고 국체청이 14일 밝혔다. 우리 정부는 파나마 페이퍼스에 나타난 196명의 거래가 적법하다 해도 탈세·돈세탁과 관련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정부는 추한 두 얼굴의 가면을 벗겨내 엄중히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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