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미술관 관장이자 홍익대 미대 명예교수 인터뷰

우리나라에 산업화가 태동하던 1960년대에는 직장을 찾아 시골에서 상경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그 시대를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생활 터전으로 뛰어들던 그 시기에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택하고 지켜냈다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을 것임을. 아티스트라는 직업은 언뜻 노는 듯이 보이기도 하지만 창작의 고통과 함께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현실적인 면에서 끝까지 그 직업을 지켜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끈을 놓지 않은 사람이 있다. “동기들 중 은행장으로 퇴임한 친구들이 많지만 정작 그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지금의 제가 훨씬 행복하지요”라고 말하는 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이면서 전 대전 시립 미술관장을 지낸 마가미술관 송번수 관장을 만났다. 

 

 

 

-명칭을 마가미술관으로 지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 말 마(馬)자에 집 가(家)자다. 내가 말띠이기 때문에 ‘말이 사는 집’이라는 뜻에서 마가라고 했고, 여기 미술관은 큰 스케일의 미술관이 아니다. 성경에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있는데 ‘마가의 다락방’처럼 작은 규모의 미술관이라는 뜻이다.
 
-섬유 미술이 주 전공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섬유미술을 시작하게 됐나

▲ 홍대 공예과에는 목공예, 금속 공예, 도예 공예, 염직과가 있는데 그중에서 염직과가 섬유미술과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섬유 미술은 미국, 스웨덴, 북유럽 쪽에서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섬유미술의 뿌리는 깊다고 볼 수 있다. 조각보 같은 것도 우리나라의 섬유 미술에서 하나의 태동이라고 볼 수 있고 의상 자체도 섬유 미술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별로 작품의 주제를 다르게 선정한 이유는

▲작가는 작품을 만들 때 주제를 정하게 돼 있는데 나의 경우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제가 조금씩 바뀌었다. 1970년대에는 주로 장미를 활용했고, 1980년대에는 주로 시사적인 사회 문제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상대성 원리를 주로 이용했다. 작품에‘가시’를 주소재로 이용했다.
 
-50여 년 아티스트의 길을 걸어오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올해로 74세이고 61학번이다. 그 당시 최고의 직업은 은행원이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미술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나를 상고로 보냈다. 열심히 주판을 튕겨 보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혼자 스스로 미술반을 만들어서 미술을 공부하고 학교 미화활동도 하다가 결국 홍익대학교에 들어가게 됐다. 


 
1960년대에 미술대학에 들어간 남학생들은 진짜 정신적인 아티스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상황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조차 졸업 후 아티스트로서 입에 풀칠한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림을 내 인생의 하나의 주제라 생각하고 끝까지 놓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할 일이 늘 쌓여있다. 나이도 잊은 지 오래다. 항상 바쁘고 머릿속에 구상한 내용을 작품으로 표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무리 은행장이 되어 돈을 많이 모아놓고 은퇴를 해도 지금 내 친구들은 별로 할 일이 없는 데 반해 나는 늘 바쁘다. 그 점만 생각해도 아티스트의 길을 걸어온 것을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제적이고 생활적인 부분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정해서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때는 신념과 용기가 필요한데 본인의 신념과 용기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했으면 한다.
 
-다른 예술 분야 중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혹시 내가 다시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면 토목을 전공하고 싶다. 미국의 후버댐(Hoover Dam), 골든게이트 브릿지(Golden Gate Bridge, 금문교)를 보면서 같은 아티스트이지만 예술 이상의 에너지와 규모면, 거기에 소모된 인력과 재력,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나 파급력을 보면서 조금 더 의미 있는 아트의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마가미술관이 젊은 작가들에게 도움을 줬으면 한다던데
 
▲현재 젊은 아티스트들이 힘들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곳 마가미술관에는 주로 제 개인 작품이 전시돼 있다. 앞으로는 물론 그레이트 아티스트(대작가)들의 작품을 좀 더 전시할 계획이지만, 미술을 막 시작하는 가난한 젊은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 그런 전람회를 많이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삶을 살아가는 인생철학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바로 오늘이다. ‘오늘에 충실한 생’이라는 모토를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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