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판단 유명…‘그림자 경영’ 고수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2016년에도 여풍이 계속 불 것으로 보인다. 각계 분야에서 여성이 리더 자리에 오르는 일이 계속 늘고 있다. 그동안 여성들의 사회 활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이란 의미의 ‘유리천장’에 가로막히는 일이 많았다.

능력과 자격을 갖춰도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차단되는 상황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대통령, 여성 CEO, 여성 임원 등 유리천장을 깬 주인공들이 늘어나면서 ‘여풍당당(女風堂堂)’이란 신조어도 나타났다. 이에 [일요서울]은 여성시대를 주도하고 있는 주인공들을 살펴봤다. 그 열네 번째 주인공은 정유경 신세계백화점부문 사장이다.

분리경영 원년…‘패션·뷰티’ 챙겨
올해 대규모 출점… 확장 어디까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를 외할아버지로 둔 정유경 사장은 오빠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함께 범삼성가 재벌3세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지난 2일에는 오빠 정용진 부회장과의 지분 맞교환으로 면세점 사업을 도맡게 됐다. 정 부회장이 신세계 지분을 모두 처분해 서울 시내 면세점 법인인 신세계DF와의 지분관계도 완전히 정리했다.
정 사장은 지난 3월 11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경영능력과 관련해 업계에서 합격점을 받을 만큼 능력도 인정받는다.

정 사장은 취임 후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냈다. 그는 취임 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신관 증축사업에 열의를 보였다.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재개장한 강남점 5개층 증축과 함께 오는 8월까지 본관 리뉴얼을 마무리하고 2019년까지 매출 2조원 달성으로 업계 1위가 목표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이 지난해 매출 1조8000억 원 가량으로 백화점업계 1위다.

경영능력 시험대 ‘주목’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신관 5개층(1만7521㎡) 완공으로 영업면적 8만7934㎡(2만6600평), 1000개 이상 브랜드로 명실상부 강남 메카로 자리매김한다.
정 사장은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에 총 영업면적 1만6860㎡로 개장 예정인 신세계DF 면세점도 직접 준비상황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면세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화장품 제조업에 뛰어들며 화장품 사업 확대도 가시화하고 있다.
화장품 사업은 그룹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화장품 제조업은 내수 침체 속 유일하게 두 자릿수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계열사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12월 23일 해외 유명 화장품 제조사인 이탈리아의 인터코스와 50대 50으로 합작법인 ‘신세계인터코스코리아’를 설립했다.
정 사장은 오는 2020년까지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며 뷰티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화장품 용기 제조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기 위해 정관도 변경했다.
충북 오산시 가장산업단지 내에 생산공장과 R&D 혁신센터를 만들고 빠르면 올 하반기부터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화장품 사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2년 프리미엄 색조 화장품 업체 ‘비디비치코스메틱(이하 비디비치)’을 인수하면서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4년 9월에도 수입화장품 편집숍 ‘라 페르바’ 매장 2곳과 스웨덴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 매장 3곳도 추가 인수했으며 지난해 1월엔 이탈리아 브랜드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국내 판권을 사면서 화장품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실적은 없었다. 때문에 이번만큼은 성장발판을 꼭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정 사장은 기존 사업도 놓지 않았다. 정 사장은 올해 ‘6대 핵심 프로젝트’도 차분히 수행해나갈 전망이다. 6대 핵심프로젝트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증축 및 부산 센텀시티몰 리뉴얼(3월), 서울 시내면세점(5월)·김해점(6월)·하남점(9월)·대구점(12월) 오픈이 주요 골자다.

경영 보폭을 다양하게 넓히고 있지만 실적 개선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최근 내수 침체와 모바일, 온라인 시장 확대로 백화점 업태는 위기에 봉착했다. 백화점 업체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체험형으로 탈바꿈하는 등 고객들의 발걸음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 사장의 행보와 관련, 업계 일각에서는 “정유경 사장이 진두지휘하는 만큼 올해는 정 사장의 경영 시험대나 다름없다"며 “이번 사업에서 실적을 거둬야 오너로서 입지 굳히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현장 남 모르게 직접 챙겨

정 사장에게는 ‘은둔의 경영자’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언행이 화제가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에 공개되는 사진도 늘 같은 사진 한 장뿐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나 부산 센텀시티점 증축 오픈 같은 굵직한 행사에도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회사 운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본인은 큰 틀과 방향만 제시한다는 게 평소 정 사장의 경영철학이다.

그러나 오너의 결단이 필요한 굵직한 사안에 대해서는 과감한 판단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백화점 본점의 효자 매장이던 스타벅스를 철수시키고 떡집을 들인 것이나 고급 식료품점 개념인 SSG푸드마켓을 청담동, 목동, 부산 해운대 등에 세운 것은 그의 아이디어다. 시장 안팎에서는 정 사장이 모친 이명희 회장을 빼닮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 사장은 어렸을때부터 미술에 조예가 깊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대학에서도 디자인을 전공했다.

학업을 마친 뒤 1996년 웨스틴 조선호텔 마케팅 담당 상무보로 입사하며 신세계그룹에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프로젝트 실장 상무를 맡으며 실무 감각을 익혔다.
어머니 이영희 회장의 해외 출장길에 수시로 동행하며 글로벌 트렌드 감각을 익히는 등 조용히 경영수업을 밟아온 그녀는 2009년 활동무대를 한 발짝 옮겨 백화점 사업에 둥지를 틀고 신세계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말에는 6년 만에 ‘부’를 떼고 신세계백화점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이로써 정 사장은 신세계백화점 부문과 면세점 사업을 총괄하게 됐다.
정 사장의 남편인 문성욱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 역시 글로벌패션 1본부에서 활약 중이다. 초등학교 동창으로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슬하에 문서윤, 문서진 양 두 딸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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