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갑에 대한 폭행 이어 최무룡을 각목으로 위협하는 내용구봉서·신상옥 등 원로영화인들 “임화수캐릭터 왜곡됐다”‘한국반공예술인단본부’ 발대식 후. 좌로부터 차민섭(눈물의 곡절), (현)연예협회 명예이사장 박호. 맨 우측은 임화수, 우측에서 두번째는 원로코미디언 구봉서.S-TV ‘야인시대’ 중 (좌)임화수, (우)‘눈물의 곡절’ 차민섭“이 버릇없는 새끼들… 너희들이 그럴 수 있어? 내가 오늘 느이들 집합시킨 건 버릇 좀 고쳐주려고 그런거야. 이 새끼들 날 뭘로 봤어? 엉?”(배우들 때리는 모습)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임화수가 배우들을 폭행하며 내뱉는 대사다. 이 장면에서는 영화배우 김희갑, 최무룡의 구타장면이 등장하는데, 특히, 유명한 일화로 남겨진 ‘김희갑 폭행사건’을 자세하게 그려냈다.

폭언과 폭력을 자행하는 극중 임화수 캐릭터를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장면은 “야 최무룡이 너 이 새끼 얼마나 맞아야 정신차리겠어?” 라며 임화수가 각목을 집어 들자 최무룡이 “사장님, 잘못했습니다”라며 용서를 비는 모습이다. 당대 배우들이 권력가 임화수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도리어 용서를 빌어야 했던 비참한 현실을 보여주려 한 의도로 해석된다. 하지만 영화감독 신상옥, 연예협회 명예이사장 박호, 배우 윤일봉, 코미디언 구봉서 등 원로급 영화인들이 지난 8월 ‘야인시대’가 고 임화수의 캐릭터를 왜곡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실 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하면서 “드라마 속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나도 김희갑 때린 건 못 봤거든. 그냥 말만 들었지. 근데 알고 보니 때린 게 아니라 화가 나서 확 밀쳤는데, 의자 팔걸이에 부딪혀서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하더라고. 그때 내가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정황은 설명 못하겠지만 의도적으로 폭행하려 했던 건 아니라고 봐. 임화수가 좀 단순하고 욱하는 성격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배우들을 그렇게 때리고 욕하는 사람은 아니었었거든. 사실 임화수가 마음먹고 때렸으면 상태가 그 정도였겠어.”당시 김희갑과 함께 희극 배우로 최고 인기를 누렸던 구봉서 씨의 말이다. 그는 ‘김희갑 구타사건’에 대해서 “확대해석된 부분이 있어 석연치 않다”는 말과 함께 당시 임화수의 위치와 관련한 설명도 덧붙였다.

“임화수라는 양반이 영화계를 휘둘렀던 건 맞아. 그는 많은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 다른 사람들은 못하는 일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 (영화 사업과 관련해서)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고.”‘야인시대’의 배경이 되고 있는 1950년대 극장가. 당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던 ‘홀쭉이 뚱뚱이’ 양석천·양훈씨의 뒤를 이어 김희갑·구봉서씨가 희극 배우로서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을 무렵이었다. 원로급 연예인들이 법원에 제출한 사실확인서를 검토해 보면 당시 연예계의 분위기, 임화수의 실제 성격, 배우들의 위상 등을 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신상옥 감독은 “‘야인시대’에서는 그가 매우 경솔한 인물로 묘사돼 있으나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임화수는 ‘반공예술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고 영화 ‘청년 이승만’을 제작하기도 했다.

‘청년 이승만’은 이승만 대통령을 지지하는 모든 예술인들이 참여해 만든 영화여서 초호화배역을 자랑했는데, 배우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자리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그때 당시 배역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임화수에 대한 이런 저런 루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며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임화수를 중심으로 한 극장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또, 배우 윤일봉씨는” 임화수가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해외 합작영화를 기획·제작하게 됐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홍콩의 쇼브라더스와 합작해 만든 ‘이국정원’이라는 영화였는데, 최무룡, 김진규와 내가 그 영화에 출연을 하게 됐고 그 인연으로 우리 세 사람은 임화수가 운영하는 한국연예 주식회사라는 영화사에 전속배우로 계약하게 됐다. 당시 영화계가 시장도 좁고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여러 가지로 어려운 때였는데, 그 속에서 임화수씨의 역할은 컸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당시 그가(임화수) 이기붕씨나 경무대 서장 곽영주씨와 친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들의 힘을 빌려 한국영화 제작회사나 상영관의 면세조치를 허가받기도 했다. 또, 이승만 대통령과도 각별한 사이였는데, 그래서 배우들은 해외영화제에 나갈 때 이승만 대통령에게 찾아가 인사를 하기도 했다”고 기억을 되살렸다. 이 시점에서 영화 배우 최민수가 아버지인 고 최무룡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야인시대’를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야인시대’는 역사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는 ‘김희갑 폭행사건’을 다루면서 임화수가 최무룡까지 불러내 구타하는 장면을 방영했다. 이에 최민수는 “당시 그와 같은 일은 있지도 않았다”며 “야인시대의 행태는 영화인을 모욕하는 것임과 동시에 문화적 폭력”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또, 최민수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마치 고 최무룡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처럼 그려진 임화수의 유족들도 그와 같은 사실이 없음을 강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허위사실을 방영, 양측 당사자 및 유족들에게 심각한 명예훼손을 야기했다”고 밝혔다.

최민수 측 법정 대리인의 말에 따르면 당초 ‘야인시대’ 제작진은 이와 관련한 증거 자료가 있다고 했으나 나중에는 고 최무룡씨의 방영분과 관련한 고증 자료는 없다고 말을 바꿨다. 이와 관련해서 임화수의 딸인 권동미 씨(임화수의 본명은 권중각이다)는 “최무룡, 윤일봉, 김진규, 구봉서, 엄앵란 같은 분들은 아버지가 매우 아끼셨던 배우라고 들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못 배우셨기 때문에 그때 당시 학력이 높았던 배우들을 존중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분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말씀을 들었는데, 그분들의 하나 같은 증언이다”며 “또, 아버지는 성품이 불같긴 했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배우들을 막무가내로 구타하고 그러진 않았다고 한다. 최무룡씨 구타 사건 같은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야인시대’에서 표현된 당대의 극장가 상황을 놓고 반박하는 쪽 의견이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드라마일지라도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다소 과장된 표현이 있을 수 있다고 하나 그 생리를 잘 아는 원로배우들까지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라 최종 결론이 어떻게 귀결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인터뷰 구봉서씨 “김희갑 구타 사건은 알려진 것과 달라”

-당시 영화계의 분위기를 설명한다면.▲임화수라는 사람이 영화계를 휘둘렀던 건 맞다. 그는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했다는 얘기다. 좀 단순하고 과격한 성격이긴 했는데, 그런 자신의 성격대로 일을 처리해 남들은 하기 어려운 일을 이루어 놓기도 했다. 영화계에서 상당한 업적을 세운 것이 사실이다.

-얼마전 영화배우 최민수씨가 ‘야인시대’에서 선친인 최무룡씨가 구타당하면서 비굴한 보습을 보였다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드라마에서 처럼 당시 배우들이 구타당하고 그렇게 핍박받으면서 생활했나.▲최무룡이 일은 글쎄 나도 처음 듣는 얘기다. ‘야인시대’는 그대로 믿으면 안된다. 작가의 창작이 대부분이지 않나. 야인시대에서 배우를 그렇게 때리고 그랬다는 건 천만에 말씀이다. 그걸 보면서 사실로 믿으면 안 된다.

-김희갑씨 구타사건은 사실이지 않나. ▲사실 나도 김희갑 때린 건 못 봤다. 그냥 말만 들었지. 근데 알고 보니 때린 게 아니라 화가 나서 확 밀쳤는데, 의자 팔걸이에 부딪혀서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하더라고. 그때 자리에는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폭행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본다. 아마 임화수가 마음먹고 때렸으면 그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임화수는) 누구를 지독하게 때릴 만한 사람은 못돼.

-영화계의 대부였던 임화수씨와 유명 스타였던 김희갑씨와의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인가.▲그렇게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닌데, 단지 배우들이 그 사람(임화수) 말이라면 꼼짝 못하는 건 좀 있었어. 그런데 당시 나랑 김희갑이가 임화수의 전속 제의를 거절했거든. 그 다음 처신이 문제였지. 나는 정중하게 행동한 편이었고 김희갑이는 간다고 해놓고 안 가고 좀 그런게 있어서 미움은 좀 샀지.

-당시 크게 논란이 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그런데 사실 그 구타 사건으로 구속까지 시키고 그럴 건 아니었다. 그때당시 돈도 많았으니까 둘이 적당히 합의하면 됐을 정도라고들 생각했는데… 그런데, 일이 그렇게 커진것은, 이루다 말하긴 그렇지만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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