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미래 설계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DJ(김대중 전 대통령)맨’ 출신이지만 지난 2012년 제18대 대선 때 국민대통합을 내걸고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도운 호남 출신 정치인.

1971년 당시 김대중 신민당 대선후보 선전기획위원으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기 시작해 유신체제 하에서 재야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신문’을 운영하는 등 15년간 사실상의 ‘망명생활’을 하며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월간 ‘사상계’에서 정치담당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미국에 머물면서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 화제 모았다. 당시 『김형욱 회고록』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 정권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냉정한 기록인 것처럼 포장됐기 때문이다. 회고록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부터 84년까지 미국 뉴욕의 한인을 상대로 한 언론에 연재됐다. 한국에선 금서(禁書)였다가 민주화 시기인 87년 말 세 권으로 출간됐다. 300만 부가 팔리는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다.

김 회장은 1980년대 후반 귀국해 ‘DJ맨’으로 정치활동을 재개, 전남 순천에서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15·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1997년 대선 당시에는 새정치국민회의 홍보위원장으로 DJ의 당선에 기여했다. 다만 DJ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 김 회장은 “1999년 DJ의 지시로 평양을 다녀온 뒤 ‘북한을 무조건 풀어주면 안된다. 노벨평화상 받으려고 서두르시느냐’고 했더니 크게 화를 내시더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김 회장은 2012년 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100% 대한민국 대통합위원회’ 특보로 맹활약했고,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대통령 홍보특보(장관급)를 맡아 박 대통령에게 대국민 소통을 늘리는 방안과 중국, 북한 관련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을 돕게 된 이유를 묻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대통령과 DJ의 정치적 아들인 내가 힘을 합쳐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합하는 ‘산민(産民) 통합’을 이루고 싶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지난 4월 28일 제16대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3년의 임기 동안 통일운동에 매진할 계획”이라며 “연맹이 통일의 선봉대로 나서 박 대통령의 통일정책을 보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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