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의 한 거리에서 자동차가 폭파되는 대규모 액션 장면, 일본 홋카이도와 타히티, 발리의 현지 풍광…. 더 이상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올 초 방영되는 MBC ‘슬픈연가’와 지난 해 여름 방영된 MBC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오는 장면이다. 해외에서 촬영해 제작비가 50억원 이상 투입되는 블록버스터급 드라마가 안방극장에 방영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한해만 해외 촬영 드라마가 10여편이 넘게 방영됐다. 해외촬영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했다는 평을 받지만 한편으로는 외화 낭비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해외촬영 분량을 방영 초반부에서 중반부로

지난 해 초 종영된 SBS ‘발리에서 생긴 일’의 성공 이후 많은 외주 드라마 제작사들이 드라마 초반 이국의 풍광을 안방극장에 보여줘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해외촬영 행렬에 나섰다. SBS ‘파리의 연인’은 프랑스 파리의 풍광을, SBS ‘유리화’는 일본 고베를, KBS 2TV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호주를 각각 드라마 초반에 배경으로 보여줬다. 제작사들은 방영 초반 해외 풍광을 보여주는 게 하나의 흐름처럼 돼 시청자들이 식상해하는 조짐을 보이자 아예 드라마 중반에 해외 촬영부분을 선보이기 위해 그 부분만 따로 촬영하고 오기도 한다. KBS 2TV ‘풀하우스’와 MBC ‘영웅시대’는 발리와 중국 상하이, 베트남 장면을 드라마 중반에 삽입해 자칫 처지기 쉬운 내용에 힘을 실어줬다. ‘풀하우스’의 제작사 김종학프로덕션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드라마 중반에 발리 촬영분을 담기로 했다”고 말했다.

치솟는 제작비, 대안은 사전제작

문제는 해외촬영 행렬이 계속되면서 제작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데 있다. 현행 제작 관행상 방송사들은 대개 제작비를 회당 8,000만원(미술비 제외) 가량 외주제작사에 건넨다. 전체 제작비에 비하면 턱없는 금액이다. 그러다 보니 외주제작사들은 제작비를 충당하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 드라마에 과다할 정도로 PPL을 담는 실정이다. ‘파리의 연인’과 ‘황태자의 첫사랑’이 방송위원회로부터 지나친 간접광고로 경고를 받은 것은 제작사로서는 억울한 측면도 있다.상황이 이렇다보니 외주제작사들은 아예 해외 판권을 염두에 두고 드라마를 사전제작하고 있다. ‘슬픈 연가’와 SBS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가 그런 경우다. 또 최근에는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자국 내 판권을 갖는 조건으로 제작비를 지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영화계에 쏠리던 금융자본이 드라마로 유입되기도 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드라마 해외촬영이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제대로 된 전례가 없어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다는 것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 제작진은 해외촬영 도중 레커차가 없어 스태프들이 직접 차를 흔들었으며, ‘슬픈 연가’ 제작진은 카메라를 도난 당했다. 한국과 촬영 여건이 다른 외국 스태프와 일하는 것도 두통거리 중 하나다. ‘파리의 연인’의 제작사 캐슬 인 더 스카이의 한 관계자는 “‘파리의 연인’을 찍으면서 해외촬영에 관한 사전지식이 없어 무척 고생했다. 나중에 해외촬영을 하는 제작사를 위해 책을 쓰고 싶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기껏 해외촬영을 했는데 시청률이 낮을 경우 제작사가 입는 손해도 어마어마하다. 한 자릿수대 시청률로 고전하던 KBS 2TV ‘북경 내사랑’의 경우, 연기자들은 출연료를 못받았으며 제작사는 도산하다시피 했다.하지만 이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드라마 해외촬영은 계속될 전망이다. 캐슬 인 더 스카이는 올 초 SBS에서 방영될 ‘홍콩 익스프레스’를 홍콩에서 촬영한다.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한류 열풍의 진원지는 드라마”라며 “한국의 대중문화를 알리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당분간 드라마의 해외촬영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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