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안팎 법조비리 대안 실효성은

‘정운호 게이트’ 일파만파, “이참에 비리 뿌리 뽑자”
전화변론 금지 등 근절책 마련…“효과 없다” 비판도

▲ <뉴시스>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정운호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법원·검찰에 대한 전관들의 로비 행태가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를 계기로 법조비리를 척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정 노력도 해봤지만 뿌리 깊이 박힌 전관예우의 관행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법조윤리협의회는 전관 변호사 380명의 수임내역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법원은 전화변론 금지, 신고센터 설치 등의 법조비리 근절책을 논의하고 있다. 특히 19대 국회에서 무산된 검찰청법 개정을 재추진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는 가운데, 이런 대안들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조윤리협의회가 판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대상으로 수임 내역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문철기 사무총장은 지난 24일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제출받은 전관 변호사들의 수임 내역을 조사해 비위 사실이 있는지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전에는 인력이 모자라 수임 건수 상위 50명만 들여다봤지만, 이번엔 전관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한 경위까지 제대로 확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협의회가 파악한 전관 변호사는 지난해 기준 380명. 선임계 없는 ‘몰래 변론’과 수임료 축소신고, 돈을 주고 사건을 알선 받은 사례까지 조사대상이다. 문제가 있는 변호사들은 대한변호사협회에 징계 개시를 신청하거나 검찰에 수사 의뢰할 방침이다.

앞서 법조계의 자정작용을 위해 설립된 협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최 변호사와 홍 변호사 등의 비리 정황을 포착하고도 협의회가 정밀심사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었다.

협의회는 지난 2007년 출범했다. 6개월간 맡은 형사사건이 30건 이상, 변호사회 전체 사건수임 평균보다 2.5배 이상을 맡은 ‘특정변호사’의 수임내역을 심사할 권한과 의무를 쥐고서다.

협의회는 그러나 최근 최 변호사의 사건수임 내역을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최 변호사가 부장판사 직에서 퇴임한 2014년부터 올 하반기까지 공직퇴임변호사로 분류돼 정밀심사 대상에 해당한다. 한국일보는 최근 협의회가 최 변호사의 수임지 위반 여부만 살펴봤을 뿐 사건수임 내역을 심사해 전관예우를 받았다고 볼만한 정황이 없는지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성과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2007년 사법개혁 결과물로 출범한 협의회는 2008년 이후 243건의 비위를 적발해 징계개시를 신청했고, 58건의 비위는 수사 의뢰했다. 2014년에는 공직 퇴임 변호사 339명의 수임내역을 조사해 위반자 77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비리 척결 나선 법조계

대법원도 법조 비리의 근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대법원은 법원행정처에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전화변론 금지, 신고센터 설치 등의 방안을 포함한 여러 대책을 논의 중이다. 법정이 아닌 곳에서 변호사가 판사에게 변론을 하는 ‘소정 외 변론’ 금지 방안, 청탁을 받으면 신고를 하게 하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논의의 배경에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브로커들을 동원해 현직 법관에게 접근한 정황이 포착돼서다. 최 변호사의 경우 현직 부장검사를 만나 구형량을 낮춰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홍만표 변호사 역시 솔로몬저축은행 비리,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등에 대해 정식으로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고 ‘몰래 변론’을 한 사실이 포착됐다.

법무부도 지난 19대 국회 벽을 넘지 못한 검찰청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간 검찰 안팎에선 개정안에 담긴 검사적격심사제도 개편안이 ‘윗선’ 눈치를 강요하도록 오남용될 위험성이 제기돼 왔다.

법무부는 지난 23일 검찰청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검사 임용 2년 경과 뒤 7년마다 실시하던 검사적격심사 주기를 5년으로 단축, 부적격 사유를 신체·정신상의 장애, 근무성적 불량, 품위유지 곤란 등으로 세분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적격심사 결과 부적격으로 판명되면 검찰 안팎 9명으로 구성된 검사적격심사위원회 의결(재적 3분의 2이상)을 거쳐 법무장관이 대통령에게 퇴직명령을 제청한다.

척결 가능할까

법조계가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의문이라는 평가다. 임은정 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부적격 검사로 만드는 기준들에 상급자들의 주관적 평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 때문에 전관예우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위직 전관이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상급자의 평정으로 검사의 신분보장이 좌우된다면 법조비리 척결은 힘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정안에는 근무 성적이 불량하거나 품위 유지가 곤란한 경우 부적격 사유에 해당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임 검사는 상급자의 평가 요소들이 주관적이어서 검찰이 전관의 영향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임 검사는 2011년 과거사 재심 당시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무죄를 구형했다 정직 4개월의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임 검사를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가 ‘부적격 검사’가 돼 퇴출당했던 박모 검사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법무부는 박 씨의 부적격 사유가 상급자들의 평가 결과라고 밝혔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조계 스스로의 자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판검사가 전관 변호사와 통화나 접촉을 할 경우 무조건 보고하거나, 브로커를 통한 사건수임이 드러나면 자격박탈을 하는 등 강경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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