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덜덜’… 여성들이 떨고 있다

▲ 뉴시스

여성 인권 보장받지 못한 상징적 사건

혐오 논쟁·범죄의 정치화 이제 그만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 17일 강남 살인 사건에 이어 25일 부산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가 모두 여성인 이유를 들며 여성 혐오에 따른 범죄가 아니냐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일부 남성과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들은 왜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모느냐”, “과도한 일반화다란 반론을 펼치는 등 최근 일어난 범죄 사건을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성 혐오를 둘러싼 남녀 간의 성 대결을 중단하고, 많은 여성들이 다음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남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10일도 안 돼 부산에서 여성을 상대로 무차별 폭행을 가하는 묻지마 범죄가 일어났다. 지난 25일 부산 동래구의 한 대형마트 인근 인도에서 김모(52)씨는 길이 1, 지름 10의 가로수를 지지하는 각목을 뽑아 마주오던 정모(78·)씨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후 김 씨는 20를 이동해 우연히 옆을 지나가던 서모(22·)씨의 머리를 각목으로 타격했고, 쓰러진 여성을 무자비하게 수차례 더 각목으로 가격했다.
 
시민들에게 제압돼 경찰에 연행된 김씨는 조사결과 2000년에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경찰에서 줄곧 묵비권을 행사하다 지난 26일 김씨는 돈이 없고, 주변 사람들이 마귀(망상)에 씌인 것 같아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정신질환에 따른 묻지마 범죄로 보고, 여성 혐오 범죄는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혐오 목소리 여전
 
하지만 최근 잇따라 발생한 묻지마 범죄에 여성 혐오란 용어가 계속해 양산되고 있다. 경찰이 강남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정신질환(조현병)에 따른 묻지마 범죄라고 지난 26일 발표했음에도 여전히 여성 혐오 범죄라고 보는 시각이 상당하다.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여성폭력 수사반장으로 불리며 24년간 활동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당선인(비례대표)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여성을 표적으로 한 여성혐오 범죄가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의자가 여성을 죽이기 전 남성 6명을 돌려보냈다. 묻지마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것이라며 피의자가 말한 살인 동기도 여성을 죽이려고 했다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치안강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이지만 사실 그 말은 여성에겐 잘 해당하지 않는다그런 한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경찰이 그런 발표를 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억압·무서움·두려움 등을 많은 여성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출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 21일 강남·신촌에서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 침묵행진’, ‘여성폭력 중단을 위한 필리버스터를 통해 여성들은 그동안 겪었던 공포와 불안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 참여한 대학생 이모(22·)씨는 어릴 적 여성스럽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오빠에게 몇 년간 괴롭힘을 당했다고 고백했고, 30대 여성은 고등학교 수업이 끝나고 버스에서 누군가 몸을 만지고 지나갔다. 정당하지 못했다는 걸 알면서도 이 사람이 나를 만졌다고 얘기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고 털어났다.
 
사회가 응답해야
 
전문가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남녀 성대결을 벗어나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약자라는 점을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당선인은 26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원인과 대책긴급 토론회에서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과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강남역 사건과 부산에서 발생한 여성 대상 묻지마 폭행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여성혐오 범죄다 아니다로 나뉘어 서로에 대한 날선 공격과 폭력적 언행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 같은 범죄의 정치화에 단연코 반대한다라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여성 범죄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에 발 벗고 나섰다. ··외부 전문가 등은 같은 날 여성안전 대책 간담회를 열고 여성 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을 고심했다. 간담회는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여성 관련 범죄 대책 발표를 앞두고 당과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부 측에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다.
 
새누리당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간담회 이후 브리핑을 통해 조현병 환자를 강제 입원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정책위의장은 또 우범지역에 순찰차를 재배치하고 모자란 경우 증차도 고려하는 한편, 전국의 CCTV 사각지대를 파악해 안전처와 경찰청이 협의해 설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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