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이 CCTV로 살인 과정 목격해 ‘충격’

6년 전 같은 마을 70대 할머니 성폭행범과 DNA 일치

경찰, 의사 검안서만 믿고 살인사건을 병사로 마무리
 
[일요서울 | 변지영 기자] 경찰의 졸속수사로 80대 노모를 살해한 범인을 놓칠뻔한 사건이 발생해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3시 경 충청북도 증평군의 한 마을 자택에서 홀로 살던 A(80·)씨가 숨진 것을 아들이 발견했다. 경찰은 의사 검안서를 통해 사인을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장례를 마치고 인근 CCTV를 확인한 유족은 A씨가 낯선 남성에게 살인당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이에 안일한 경찰 초동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이번에는 경찰청에서 괴산경찰서에 감사팀을 보내 조사 하는 등 부실한 초동 수사 관행을 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한 마을의 주택 안방에서 숨진 A(80·)씨를 아들이 발견했다. 당시 시신은 숨진 지 닷새 정도 지나 부패가 심했다. 현장에 출동한 괴산경찰서 경찰은 A씨의 시신에서 별다른 외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 시체를 검안한 증평B병원 검안의도 특이한 징후가 없었다며 A씨의 사망을 단순히 병사로 판단했다.
 
유족은 경찰의 말을 믿고, 의심 없이 지난 23일 장례까지 마쳤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A씨의 마지막 사망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집에 설치된 CC(폐쇄회로) TV를 보던 A씨의 아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초동수사 부실,
뒤늦게 허둥지둥
 
CCTV에는 인근 마을 주민인 58세 신모씨가 모친을 살해한 장면이 녹화되었던 것이다. 유족의 제보로 부랴부랴 경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영상을 분석해 용의자를 추적한 끝에 23일 오후 6시경 신 씨를 검거했다. 신 씨는 A씨의 집에 1km가량 떨어진 마을에 살던 주민으로 피해자와 평소 안면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족은 경찰이 CCTV 영상을 가져갔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탓에 중요한 수사단서를 놓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유족은 해당 영상이 담긴 메모리칩을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에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찰은 CCTV 메모리칩을 가져왔지만 제대로 열리지 않아서 두다가 의사의 검안서를 보고 확인하지 않고 돌려보냈다는 황당한 해명을 내놓았다.
 
미흡한 수사에
주민과 유가족 분통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물을 마시러 할머니 집에 들어갔다가 범행했다며 혐의를 인정했다. 영상에는 살해 장면이 고스란히 녹화돼 있었다. 신 씨가 담을 넘어 들어오자 A씨가 나가라며 손짓했다. 신 씨는 안방으로 들어와 목을 뒤에서 감싸고 창고로 끌고 들어갔다. 그 후 목 졸라 A씨를 살해했다. 이후 그는 A씨의 시신을 성추행하는 엽기적인 행동을 벌였다. 경찰은 신씨에 대해 살인과 사체오욕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는 청각장애인으로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생활을 유지하고 아내와 자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이 영상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경찰의 미흡한 초동 수사로 살인사건이 영원히 묻힐 뻔했던 아찔한 사건이었다.
 
경찰의 허술한 대응이 아니냐는 질타에 경찰 관계자는 시신의 부패가 심해 외상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의사의 검안 소견도 단순 병사로 나와 현장에서 한 판단이 적절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경위를 파악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 “수사 과정 감사 징계하겠다
 
경찰은 증평 80대 할머니 살인 사건으로 CCTV 영상을 확보하고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살인사건을 단순 병사로 처리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사건이 졸속수사라는 빈축을 사자 경찰청이 나섰다.
 
충북지방경찰청은 24일과 25일에 걸쳐 경찰청 감찰 직원 4명을 괴산경찰서에 보내 이번 사건을 처리한 경위를 파악했다. 또 사건신고 접수부터 단순 병사로 사건을 마무리했을 때까지의 전반적인 내용을 총괄적으로 감사한다. 당시 사건 현장에 출동했던 직원들과 사건을 맡았던 경찰서 직원, 수사과장 등이 조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일 사건 현장에 출동한 직원 숫자가 근무일지와 다른 점도 조사 중이다.
 
경찰은 사건을 부실하고 졸속으로 처리한 관계자들을 징계위원회 회부할 방침이다.
 
문제는 한두 개가 아니었다. 경찰청은 또 숨진 할머니의 사인을 밝히는 검안서 발급에 문제가 있었던 사실도 밝혀냈다. 그리고 현재 그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숨진 할머니는 21일 아들에게 발견돼 증평의 B병원으로 옮겨진 뒤 단순 병사인 것으로 검안서가 발급됐다.
그러나 경찰청이 확인한 결과 당시 할머니 시신을 검안한 의사와 검안서에 서명한 의사가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법 181항에 의하면 사인이 불분명할 때 사체 검안서를 작성한다. 원인을 정확히 알려면 검사 지휘를 받아 국과수나 병원을 지정해서 부검을 해야 밝힐 수 있다. 또 의료업자는 자신이 검안하지 않고 검안서를 교부하지 못한다고 적혀있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을 검안한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검안서에 서명한 것을 확인했다검안서를 발급한 의사는 당시 응급실에서 근무했다며 의료법 위반행위인 만큼 병원 관계자들을 상대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6년 전 인근
할머니 성폭행범과 동일
 
현재 구속된 피의자 신 씨가 6년 전 이 마을의 70대 할머니를 성폭행하고 도주한 용의자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201010월 혼자 사는 B 할머니의 집에 괴한이 침입했다. 그는 B씨의 얼굴에 두건을 씌운 뒤 성폭행하고 집에 불을 지른 채 도주했다. 다행히 정신을 차려 B씨는 목숨을 건졌다. 당시 경찰은 탐문 수사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범인을 잡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남게됐다. 경찰은 노인을 범행 대상으로 골라 성폭행한 뒤 은폐하려는 범행수법이 6년 전 그것고 유사하다고 판단해 수사를 확대했다.
이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신씨의 유전자와 6년 전 현장서 발견된 DNA 검사를 의뢰한 결과 두 DNA가 일치함을 확인했다. 현재 경찰은 신 씨를 상대로 6년 전 범행도 집중 추궁 중이다.

bjy-021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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