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보호시설 기피 …“엄격한 생활규칙 힘들어”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인면수심의 친족 성폭행 범죄가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친족 성폭행을 검색하면 우리 사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유형의 친족 성폭행이 자행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범죄 발생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친족 성폭행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19세 미만을 위한 특별 보호소가 고작 4곳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곳에서 보호받고 치료받아야 할 피해자 대부분이 보호소를 기피하고 있다는 점. 더 이상 우리 사회의 극한 단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선을 넘어버린 친족 성폭행 사범 유형과 보호소 실태, 피해자들의 보호소 기피 이유, 그리고 성범죄를 줄일 수 있는 방안 등을 <일요서울>이 취재했다.

 
성범죄 줄이기 위해선 형 순차집행제도 실시해야
미국선 친족 성폭행한 60대 남성에게 징역 200년 선고돼
 
여성가족부와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친족 성폭행 사범 입건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하고 있다. 2011389건이었던 것이 2012년에 524건으로 훌쩍 뛰어올랐고, 2013년에는 599, 2014년에는 608, 2015년에는 650건을 기록했다. 입건은 되지 않았으나 친족 성폭행과 관련해 상담을 한 19세 미만의 피해자는 무려 3865명이나 되었다. 이중 부모 형제에 의한 성폭행은 1803, 친인척에 의한 성폭행은 2072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발생한 성폭력 범죄 34641건의 10%가 친족 성폭행이라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친족 성폭행 유형 다양해
 
친족 성폭행 유형을 살펴보면 인면수심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9세 딸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 성추행과 성폭력을 일삼아 징역 8년을 선고받은 40대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8세 친딸을 8년간 성폭행해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50대 아버지도 있다. 10대 의붓딸을 2년여 동안 성폭행한 계부는 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교제하던 남성이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하도록 도와줘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엄마도 있는 등 친족 성폭행 유형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의 친족 성폭행 범죄 중 국민의 공분을 산 것은, 아내가 장모의 병간호를 위해 집을 비운 사이 친딸을 수차례 성폭행한 사건. A 씨는 친딸인 B양을 상대로 3년 전부터 아내가 장모의 병간호를 위해 집에 없는 틈을 타 자신의 집 안방에서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나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두 번째 성폭행 범죄 후 이를 알아차린 아내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이후에도 두 차례 더 성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친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보호시설에서 지내다 명절 때 찾아온 조카를 수차례 성폭행한 삼촌 C씨에게 15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C씨는 9세 때 친부에게 수차례 성폭행당한 조카 D양이 성폭력예방치료센터 피해자 보호시설에서 생활 중 명절 때 놀러올 때마다 D양을 성폭행한 혐의를 법원이 인정했다.
 
이처럼 친족 성폭행 범죄가 다발함에 따라 성폭행 피해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보호시설 확충 역시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전국에는 고작 30곳의 성폭행 피해자 보호시설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매년 늘어나는 피해자들을 수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19세 미만의 친족 성폭행 피해자를 위한 특별보호시설은 단 4곳에 불과하다.
 
대구시의 경우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장기 지원시설은 한 곳뿐이다. 수용 인원은 각 시설 당 20명 수준이다. 게다가 친족 성폭행 피해자 치료는 일반 성폭행의 피해보다 트라우마가 심각해 치료가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특별보호시설에 지원되는 예산은 고작 9000만 원의 추가지원에 그치고 2~3명의 전문 인력만이 추가로 투입될 뿐이다. 일반 보호시설과 별 차이가 없는 편이다. 게다가 임시로 피해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일시보호소도 지자체의 재정악화로 점점 폐쇄되고 있는 추세다.
 
처벌 규정 강화해야
 
특별보호시설확충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이지만, 친족 성폭행 피해자들이 보호시설을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 해 아동 청소년 피해 상담자 중 불과 4.2%만이 일반 및 특별보호시설에 입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대다수 집으로 돌아가거나 거주지를 떠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피해자들이 보호시설을 기피하는 주요 이유는 시설 내 생활규칙이 피해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피해아동은 피해 후유증으로 인한 자존감 상실로 성적 방종으로 흐르기 때문에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이 철저히 제한되고 있다. 입소 후 일정 시간만 휴대폰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시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다 매일 새벽기도에 의무적으로 참여시키는 곳도 있다.
 
보호시설이 전국적으로 몇 개 되지 않아 원하지 않는 보호소로 가야 하는 고충도 감수성 예민한 시기의 피해자들이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
 
대구 해바라기센터의 한 관계자는 보호소가 집보다는 안전하지만 여러 명이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어서 변화가 많은 시기에 있는 피해자들이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피해자들이 보호소를 들락날락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친족 성폭행 등 성범죄 예방프로그램도 확충해야 하지만, 처벌 규정 또한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법조계 관계자들은 외국의 사례를 들며 성범죄에 대한 형량을 지금보다 대폭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성환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법정최고형이 상대적으로 낮은 범죄 등을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형 순차집행제도를 실시하고 있다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 실시해야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형 순차집행이란 각 범죄를 독립된 범죄로 보고 이들의 형량을 합산한 뒤 연속해서 집행하는 것으로, 미성년자 강간의 형량이 10년일 경우 지속적으로 10회 강간해서 기소되면 100년형이 선고된다. 얼마 전 손녀딸을 성폭행하고 또 다른 손녀딸을 성추행한 미국의 한 60대 남성은 20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우리나라도 친족 성폭행의 경우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는 등 최근 성범죄에 대한 형량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추세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성범죄에 대해 관대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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