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가 지난 30일 임기를 시작했다. 거의 놀고먹던 지난 19대 국회가 임기종료 직전에 걸작품(?) 하나를 만들어냈다. 바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상시 청문회법이다. 이 법에 관해서는 여야 합의로 안건 상정을 안 하기로 한 것을 정의화 의장이 독단으로 상정해서 통과토록 했다는 점에서 일명 정의화법으로 지칭됐다.

이제 임기 스무 달 남짓 남겨둔 박근혜 정부를 아예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가는데 야당보다 새누리당 출신 무소속이나 비박계가 거품 물고 앞장선 내막이다. 이 상시 청문회법은 별 중요치 않은 안건이라도 상임위 소관 현안이기만 하면 과반수 의결로 언제든지 청문회 개회가 가능하도록 해놓았다. 야당으로서는 자다가 생긴 떡이나 마찬가지다.

민주국가의 세상 돌아가는 일에 국회와 무관한 분야가 없다. 따라서 국회 권력은 아주 대단하다. 미운털 박힌 부처는 국정감사가 아니더라도 ‘민의’를 앞세워 청문회에 올릴 수 있도록 돼있다. 이런 ‘갑’질을 비위 틀리면 언제든 상시로 하겠다는 게 그들 입법 취지다. 이 일에 대들 방법은 유일한 통로인 대통령 거부권 행사 외에는 어떤 것도 없다.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는 새누리당에 복당 신청을 한 유승민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고 그의 계로 분류되는 조해진, 이종훈, 20대 낙선자의 재 뿌리기와 비박계 이병석 낙선자 등의 마지막 반란이 절대적인 몫을 했다. 그들 행보에 새삼 놀랄 필요는 없으나 비애를 안 가질 수 없다. 19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이 추진한 주요법안은 새누리당 소속국회의원 전원이 서명한 노동개혁 5법을 제외해놓고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 19개다.

이 법안 모두에 대해 유승민 의원은 단 한 번도 대표발의나 공동발의를 한적 없다.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와 새누리당이 정책적 사활을 걸고 추진한 법안의 입법발의 조차 외면한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가결된 상시 청문회법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법률안 거부권은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송된 법률안에 이의를 달아 국회로 되돌려 보내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한이다. 결코 비난받을 사항이 아니다. 지극히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법률안에 대해 국회권력을 견제할 마지막 제재 수단이다. 국회는 또 이 거부권을 무력화 시킬 권한도 가졌다. 거부된 법안을 국회에서 재의결에 붙여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2 이상이 찬성으로 의결하면 그대로 확정된다.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19대 국회가 임기를 끝내면서 박아놓은 기막힌 입법 대못이 여소야대화된 20대 국회를 초장부터 쑥대밭으로 만들 공산이 커졌다. 여야 쌈박질 끝에 머릿수에 밀려 1년 365일 상임위마다 청문회 천국이 되면 어떤 의혹 사건에 관한 절차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모든 의혹사안마다 ‘중요안건’ 명목으로 국회가 종결자 역할을 할 수 있다. 견제도, 통제도 없는 무한권력의 만능국회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3권 분립의 헌법에 기초한 대통령 중심제라는 사실을 국회가 잊고 있는 듯하다.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건전한 감시자 역할에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말아야 한다. 툭하면 특별법 제정으로 사법부 영역에 관여하고 인사청문회를 무기로 행정을 무력화 시키는 국회에 상시 청문회가 법제화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빚어질까? 생각하기조차 싫은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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