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더불어 민주당 용인 지역위원장 표창원 의원 인터뷰

-“힘없는 분들에게 다가가는 정치를 하겠다”
-“국회의원으로서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데 기여하고 싶다”

[일요서울 | 박정민 기자] 어쨌든, 인간은 변화하고 진화한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떤 방식이든 성장·발전하고 있다고 믿는다. 기자가 만난 표창원 의원도 분명 변화 혹은 진화하고 있었다. 우리 나라 1호 프로파일러, 경찰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던 표창원 교수가 어느덧 국회에 입성해 있다.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적도 있다. ‘나는 대한민국 보수’라고 외치며 책을 낸 적도 있다. 지금은 중도개혁정당을 표방하고 있는 더불어 민주당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분명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현재 20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표창원 의원. 이러한 그의 변화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져 몇 년 후에는 어떤 분야에 어떤 직책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2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축하드린다. 어떤 의원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나서야 선거가 끝난다고 말을 하던데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국회의원이 된 소감을 말해 달라. 

▲ 선거기간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던지는 대단히 응축된 시기다. 그 시간 동안은 어느 때와도 달랐다. 한 분이라도 더 만나야 했고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 격변하는 상황이었다.

예를 들면 대학 입시 준비할 때 마음대로 못 먹고 못 자고 못 놀지 않나. 선거기간도 똑같았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다. 게다가 불안과 두려움도 있었다. 선거 중간 있었던 저를 향한 많은 공격과 비방, 흑색선전, 네거티브가 진행 됐는데 이런 부분들이 힘든 요소들이었다.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여유가 생기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선거 때만큼이나 바쁘게 달리고 있다. 일 잘하는 의원, 품격 있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초심을 기억할 것이다.

-국회의원 될 생각을 처음부터 갖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나, 중요하게 작용한 생각 같은 것이 있을 것 같다. 

▲ 지난 2012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계기로 교수직을 내려놓고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정부와 거대여당의 일방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독주에 분노를 느꼈고 제1야당에 대한 실망감과 피폐해져가는 국민 경제, 무너진 사회 안전시스템 등을 바로잡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

그동안은 경찰과 교수 방송인과 작가로 정의를 말하고 실천해 왔고 앞으로는 정치를 통해 불의를 바로잡아 보겠다는 결심을 세운 것이다.

입당할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와해되고 분열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고 부족한 힘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극단적인 분열과 내분에 휩싸인 사상 최악의 야당에 들어가서 강한 야당 유능한 야당, 집권이 준비된 수권 정당의 모습을 갖추는 데 기여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지난 13일 국회가 개원 했다. 20대 국회의원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겠다든지 ,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겠다는 각오 등을 말해달라. 

▲정의와 안전을 중심축에 두고 의정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국민 70% 이상이 사회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는 조사가 있다. 국민이 가진 정의에 대한 갈망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수긍할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입법적, 정책적 노력을 모두 쏟을 것이다. 특히 경찰관, 교도관, 소방관의 권익향상, 근무조건, 처우개선을 위한 법안을 최우선에 두고 의정활동을 해나가겠다.

경찰관일 때 늘 피해자 분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을 찾아갔고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다. 프로파일러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의원으로서도 마찬가지로 억울한 분들, 힘없는 분들, 피해 입으신 분들께 마음으로 다가가겠다. 정치는 누리는 것이 아니고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다. 힘 있고 돈 많은 분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만 힘없고 약한 분들, 괴로운 분들, 경제력이 부족해서 어려운 분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분들께 다가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국회의원실 6시 이후에 전화 안 받아요, 라는 선언을 해서 화제가 됐는데 네티즌이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말해 달라. 

▲ 보좌진들을 뽑을 때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발했다. 보좌진들은 단지 저를 보좌하는 역할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입법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활기차게 일하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돕고 싶다. 의원실로 걸려오는 전화 가운데는 입법 제안 차원도 있지만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시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하루 종일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 온다. 의원실이 일종의 신문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아픈 결정이긴 하지만 보좌진은 다음날도 일을 해야 하고 저녁 시간에는 밀린 일도 처리해야 한다. 때문에 ‘공식적인 근무시간 외에는 전화를 걸어주지 마십사’ 요청 드린 것이다. 저의 SNS나 이메일 등 소통 창구는 항상 열려 있다.

-본인의 저서에서 안철수 의원을 ‘초인’, ‘레인메이커’로 표현한 적이 있고 본인이 제2의 안철수로 불렸다고 쓴 적이 있다. 국민의당에 가지 않고 더불어 민주당에 입당을 했다. 어떤 생각 때문인가. 생각이 바뀐 건가. 

▲‘보수의 품격’이라는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안철수 대표를 ‘초인’이나 ‘레인메이커’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신드롬을 극복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저에게 자꾸 안철수의 뒤를 잇는다고 하는 이야기도 흘려 넘길 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고도 말씀드렸다. 누군가가 그런 기대를 하셨다가 ‘너 아니었잖아‘ 하면서 실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는 그런 초인이 되고 싶은 욕심이 전혀 없다.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당 초창기 ‘이승만 국부, 1948년 건국’을 주장했다. 저는 이를 수구적 보수 우파라고 생각한다. 저와는 생각이 다르시다. 저는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독립 민주공화국이며 1919년 3월1일이 대한민국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고한 순간이고 대한민국이 탄생한 때라고 생각한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색깔론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쓴 저서의 제목도 보수의 품격이었으니. 본인이 보수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그런데 막상 개혁을 표방하는 정당의 국회의원이 됐다. 설명해 달라. 

▲ 진보적인 정당에도 보수주의자가 있을 수 있고 그 반대도 가능하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다양한 정당에서 영입제안이 온 것이 사실이다. 주위에서 보수답지 못한 보수 정당에 들어가서 진짜 보수를 만들라는 주변의 권유도 많았다. 강의할 때 청중들로부터 보수정당 입당에 대해 많은 요청을 받아본 적도 있다. 2013∼2014년 당시 ‘야당이 희망이 없어 보이는데 새누리당이 어차피 계속 집권을 할 것 같으니 새누리당을 바꿔서 좋은 정당으로 만들어 주는 게 낫지 않느냐’는 요청이나 질문을 받은 적이 꽤 있다. 그런 생각도 해보지 않은 바는 아니다.

하지만 새누리당 입당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결국, 타협이고 비겁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을 잘못 이끌어 온 부분에 대해선 비판하고 바로잡아야지 그 안으로 들어가서 타협하고 색깔을 감추고 그들의 힘을 빌리는 태도는 옳지 않다고 봤다.

여러 가지로 아쉽고, 안타깝고, 부족한 면도 많이 있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은 결국 더불어민주당 밖에 없었다. 정치를 하고 싶은 마음을 미리부터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요청이 왔기에 거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강남역 사건을 비롯,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수락산 사패산 사건도 묻지마 범죄의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묻지마 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를 사회시스템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이러한 사건들은 약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약육강식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야생, 짐승의 생태계와 달리 문명을 일군 인간사회는 약자 보호와 개인 안전의 확보가 본질이며 특성이다. 완력이나 권력, 금력 등 어떤 힘의 차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생활하고 거리를 활보하고 의사룰 표현하고 사생활의 평온을 누릴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는다. 우리를 이것을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이라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과 어린이,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제대로 보장해 주지 않고 있다. 힘이 약하거나 다수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말하고 행동하고 이동함에 있어 불편이나 불안, 혹은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이번 강남역 사건과 부산 사건 등 연이어 발생한 여성 대상 묻지마 폭행은 상징적이고 두드러진 사건이라고 본다.

-경찰이 된 계기는 셜록홈즈를 감명 깊게 보았기 때문이고 프로파일러가 된 계기는 미제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 국민이 아는 미제 사건으로 유명하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

▲ 실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워낙 사건이 크고 중대하다 보니 영화에서 본 것처럼 여러 경찰들이 경쟁적으로 범인 잡기에 몰입했다. 그 결과 내부 공조가 안 된 아쉬움이 큰 사건이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처럼 DNA 검출 실패 등 지금이라면 있기 어려운 기술적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다. 당시 너무나 끔찍한 사건 앞에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컸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곧잘 싸우는 악동이었다. 약자를 때리지 않았지만 정의를 위해서는 주먹을 썼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셜록 홈스를 만났고, 폭력을 쓰지 않고 뛰어난 두뇌를 이용해 범인을 잡는 셜록홈즈의 매력에 매료됐다. 그 순간부터 저에겐 셜롬홈즈처럼 되고 싶다는 무한한 열망과 꿈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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