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사익 편취인가, 비자금 조성 창구인가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가 그룹 수뇌부를 겨냥하고 있는 가운데 내부거래, 비자금 조성에 대한 의혹도 잇따르고 있다. 그룹 계열사 간 일감 주고받기, 오너 일가의 부동산 거래 등이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비리 화약고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내부거래의 경우 거래 비율이 100%에 가까운 곳도 존재한다. 이 같은 논란으로 국내 대기업 그룹들의 내부거래도 재조명받고 있다. 롯데그룹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 그룹들의 상황도 롯데그룹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일요서울]은 국내 대기업 그룹의 내부거래 현황을 들여다봤다.

롯데 비리 화약고 지목…의심 범위 넓어져
내부거래 방지 장치는 무방비…역할 못해

롯데그룹을 둘러싼 부당이득, 비자금 조성 등 비리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검찰은 1차 압수수색에 이어 주요 계열사들까지 비리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2차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룹의 핵심 임원진의 출국금지 조치도 내린 상태다.

검찰은 내부 일감 몰아주기, 매출 부풀리기를 통해 비자금이 조성됐는지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이러한 거래 과정에서 일부 계열사나 오너 일가가 얻은 특혜와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들이 드러난 곳도 존재한다.

내부 거래 의혹을 부른 핵심 계열사는 롯데정보통신과 롯데피에스넷, 대홍기획 등이다. 롯데정보통신은 전산 시스템 운영·관리, 유지·보수 등 정보기술(IT) 서비스 전문기업으로 지난해 말 기준 내부 거래 비중이 86.7%를 차지한다.

롯데정보통신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오너 일가가 직접 지분을 소유한 계열사다. 게다가 그룹 계열사와의 거래 상당수를 수의 계약으로 진행해 자금 흐름이 베일에 싸여 있다.

롯데피에스넷은 전자금융 서비스 업무를 하는 회사로 현금인출기(ATM) 구매 사업 과정에서 롯데알미늄을 부당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008년 ATM 기기를 납품받는 중소기업이 롯데알미늄에 기기를 먼저 팔게 한 뒤, 웃돈을 얹어 되샀다는 것이다.

광고업체 대홍기획도 롯데쇼핑 등과의 거래 과정에서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흡 혹은 전무한 현실

롯데그룹의 내부 거래를 통한 비장금 조성 의혹이 불거지면서 다른 대기업 그룹들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이들도 롯데그룹처럼 내부거래를 통한 부당이득, 비자금 조성 등을 했을 것이란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또 대부분 롯데그룹과 마찬가지로 외부 감시 없이 비리가 개입될 여지가 높은 구조를 유지하고 있어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2013년 공정거래법을 개정하고, 대기업집단 소속회사는 이사회 내에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해 부당한 내부거래를 막는 견제장치로 활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40대 대기업집단 상장 계열사 중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한 곳은 26.6%에 그친다. 내부거래에 대한 내부 통제 장치가 미흡한 게 현실인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10대 그룹 중에도 SK와 LG, GS, 한진그룹의 내부거래 견제장치가 아직 미흡하다. 17개의 상장계열사를 가진 SK가 내부거래위원회를 둔 곳은 3곳뿐이다. GS도 8개사 중 2곳에만 내부거래위원회를 갖추고 있고, 한진그룹은 6개사 중 2곳에만 존재한다.

10대 그룹 이하 20대 그룹에 속하는 CJ와 LS, 금호아시아나, 대림, 부영, OCI 등은 내부거래위원회를 둔 곳이 한 곳도 없다.

이밖에 효성, 영풍, KCC, 미래에셋, 동국제강, 코오롱, 교보생명, 태광, 현대산업개발, 아모레퍼시픽, 대성, 하이트진로, 한솔 등도 견제장치가 전무한 상태다.

한진·한화·하이트·CJ 왜

일감몰아주기 규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규제 대상에 오른 대기업의 내부거래 금액은 60%가량 줄었지만, 2012년 대비 내부거래 금액이 늘어난 곳은 51.4%로 절반이 넘었다.

특히 규제대상 기업을 제외한 30대 그룹 나머지 계열사들의 내부거래금액은 136조 원에서 128조2000억 원으로 5.7% 줄어드는 데 그쳤다.

규제 대상 기업도 27개 줄었지만 내부거래를 줄여 규제에서 벗어난 비율은 18.9%(7건)이다. 나머지는 오너 일가 지분을 매각하거나 줄여 규제 기준치 이하로 낮춘 경우가 32.4%로(1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합병소멸 29.7%(11건), 계열제외 18.9%(7건) 순으로 나타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위원회 현황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고, 부당한 내부거래를 엄중 제재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는 한진과 한화, 하이트 CJ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우선 한진은 대한항공 여객기에 비치되는 잡지의 광고와 기내 면세품 통신판매 등을 담당하는 싸이버스카이가 내부거래를 통해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다. 2013년 매출의 83.7%인 35억9000만 원을 계열사를 통해 올렸으며, 당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자녀들이 지분 100%를 갖고 있었다.

한화그룹은 한화S&C가 일감 몰아주기 수혜를 입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S&C가 지난해 매출 3987억 원 중 54.12%인 2158억 원을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올렸다.

하이트진로그룹은 맥주냉각기 제조업체인 서영이앤티가 계열사 간 거래로 매출 759억 원 중 33.2%인 252억 원을 올려 의심을 사고 있다. 서영이앤티의 지분 99.91%는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CJ그룹은 재산커뮤니케이션즈의 계열사 내부거래가 의혹을 샀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동생인 이재환씨가 지분 100% 보유하면서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재산커뮤니케이션즈가 지난해 매출 721억 원의 6.79%인 49억 원을 내부거래로 올렸다.

이와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15일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가 과거 현대그룹 계열사 시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제부가 보유한 회사를 부당 지원했다며 과징금과 시정명령 조치를 내린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의 부당지원행위 뿐만 아니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에 대해서도 감시를 강화하고, 위법행위 적발 시 엄중 제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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