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공화국’, 이대론 안된다 ② 인사비리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는 ‘비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마다 연쇄적으로 불거지는 부정과 부패는 국민들의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사회 지도층부터 공직 실무자, 말단 사원까지 잘 짜인 각본처럼 이뤄지는 비리 행위에는 감탄사(?)까지 나온다. 혹자는 이를 인체에 비유해, ‘머리부터 심장, 말초신경까지 썩어 있다’고 표현한다. 대한민국을 불치병 환자로 놔두는 것보다는, 이제라도 신약을 개발하고 적절한 요법을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본인의 치료의지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일요서울]이 대한민국 비리 현주소를 시리즈로 조명해본다. 두 번째는 ‘인사비리’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로 서울메트로와 용역업체 간 비리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단순히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사이의 관행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회적 공분이 거셌다. 따지고 보면 각종 비리를 모아놓은 축소판이었다.

서울메트로(원청)와 은성PSD(하청)의 스크린도어 정비·관리 용역계약 이면에는 ‘메피아(서울메트로+마피아)’가 있었다. 서울메트로는 은성PSD측에 일감을 주는 조건으로 서울메트로 출신 퇴직자를 정규직으로 우선 채용할 것을 요구했다.

은성PSD 설립초기 직원 125명 중 90명(72%)이 서울메트로 출신으로 드러났다. 퇴직전 임금의 60∼80%를 서울메트로 잔여 정년에 따라 지급, 복리후생은 서울메트로와 동일한 수준의 보장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관리업무와 비상대기, 육안검수 등 단순 업무를 하는데도 평균 51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대다수가 정비 업무와 무관한 직종 출신이었다. 반면 구의역 사고로 목숨을 잃은 정비계약직 김모(19)씨가 끼니를 컵라면으로 해결하는가 하면, 내부 규정상 식사시간도 거를 만큼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월급은 144만 원에 불과했다.

낮은 업무강도나 적은 업무량에도 서울메트로 출신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을 보장받는 것은 물론, 높은 수준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누린 셈이다. ‘낙하산 인사’의 전형이었다.

사립학교법인 교사채용 비리

인사비리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병폐로 꼽힌다. 최근에는 풍문으로만 떠돌던 일부 사립학교법인의 교사·직원 채용 비리가 사실로 드러났다.

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노만석)는 지난 16일 교사와 직원 채용 과정에 금품을 수수한 혐의(배임수재)로 광주 모 사립학교 법인 이사장 A(76)씨, 이사 B(65)씨, 법인실장 C(64)씨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2012년 2월~지난해 8월 법인 산하 학교 교사와 직원 채용 과정에서 교사지망생 등 9명으로부터 6억3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C씨는 2014년 8월~올해 2월 총 2명으로부터 채용 대가 명목으로 75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들은 가족 관계로 알려졌다. 검찰은 채용을 대가로 A씨 등에게 거액을 건넨 혐의(배임증재)로 교사와 직원, 그 가족 등 총 10명을 불구속 기소(6명) 또는 약식 기소(4명)했다.

한 교사는 자신의 채용 대가로 이사장 등에게 1억5000만 원을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친족관계에 있는 이사장과 이사·법인실장이 사립학교 운영권을 장악, 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채용과정을 어지럽힌 고질적 사립학교 인사비리라고 밝혔다.

검찰은 추징금 환수를 위해 이들의 예금채권, 압수한 수표의 반환청구권 추징·보전명령 청구 등의 방법을 통해 범죄수익을 박탈할 계획이다. 또 광주교육청 관계자들과 사립학교 교원 채용의 투명성 확보방안 등에 대한 ‘클린 피드백 회의’를 개최, 관련 규정 및 사례 검토, 제도적·입법적 보완 필요성과 방법을 논의할 방침이다. 해당 학교법인은 광주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광주지검 수사과는 2014년 12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광주 모 고등학교 이사장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면서, 이사장에게 부탁해 교사로 채용되게 해주겠다고 속이고 3명으로부터 2억5500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사기)로 D씨 등 3명을 구속기소했다.

현대판 매관매직

낙하산 인사뿐 아니라 돈으로 자리를 사고파는 ‘현대판 매관매직’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월 공단 직원 채용을 대가로 2억5000여만 원 상당의 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취업 브로커 강모(46)씨가 업무상 수뢰 혐의로 구속됐다.

강 씨는 2013년 4~11월 구직 희망자들에게 ‘공단 고위직에게 부탁해 기간제 직원으로 채용되도록 해주겠다’며 채용 대가로 1명당 500만∼600만 원씩 총 49명으로부터 2억5000여만 원을 받았다.

강 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시설관리처 인사담당인 정씨에게 ‘힘 좀 써달라’며 수차례에 걸쳐 4000여만 원을 건넸다.

일부는 채용 평가위원회에 평가위원으로 참석하는 관리처장과 팀장 등에게 흘러들어 갔다. 정씨와 이들은 청탁받은 구직자들이 면접 심사에서 다른 심사위원들로부터 받은 평가 점수를 모두 100점으로 고치는 방법으로 채용평가서를 위조했다.

경찰 조사결과 실제 강 씨에게 인사 청탁을 한 49명 가운데 30명은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돼 근무하고 있고, 19명은 채용대기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청탁을 통해 채용된 구직자들은 부부나 모자 지간 등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인사비리는 학계는 물론 사회지도층 곳곳에 만연한 대표적인 부정과 부패로, 그 뿌리가 굉장히 깊다”면서 “이는 건강한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악의 축’이다. 지난 2014년에는 교수 명함을 돈을 받고 판 사건도 있었다. 이런 비리를 감추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수면 위로 드러내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sh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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