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은 익숙했지만 솔직히 동해시는 낯설었다. 강릉과 삼척 사이, 푸른 동해를 품고 있는 이 도시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드라이브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강원도의 그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함. 완벽한 드라이브는 그곳으로부터 시작됐다.

“분명 파랑새였다. 하지만 마치 신기루처럼 카메라에 담으려고만 하면 아주 먼 곳으로 달아나버렸다. 동해의 파란 하늘빛에 물든 것일까. 아니면 하늘보다 더 파란 동해의 바다 빛이 닿은 것일까. 가까이 다가왔다가도 금세  달아나는 작은 새는 온통 동해의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강릉과 속초 그리고 삼척을 오갔지만 동해시를 제대로 만난 적은 없었다. 마치 동해 바다에 조용히 스민 것만 같은 비밀스런 공간의 발견. 동해의 푸른 하늘을 아주 천천히 가로지르던 파랑새를 보았다”

느린오후의 논골담길

서울에서부터 동해까지. 평일이지만 영동고속도로 사정은 생각보다 시원치 않았다. 단 한 번 멈춰 선 휴게소도 쓰나미와 같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돌아보니 주차장을 가득 채운 똑같은 모양의 버스들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다양한 모임의 단체 여행객들 사이에서 도망치듯 동해로 향했다.

강렬한 정오의 햇살이 조금은 기울어진 오후, 동해의 첫 여행지에 차를 세웠다. 묵호항을 묵묵히 비추는 묵호등대는 논골담길이라 불리는 마을 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다. 등대를 만나려면 67m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논골담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산 비탈진 곳에 둥지를 튼 어부의 판잣집들은 감성적인 벽화들을 통해 지나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가던 어부들과 남겨진 가족들의 그리움이 등대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벽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언덕진 마을의 정상에 오르면 묵호등대와 함께 선물같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바다를 향해 뻗은 묵호항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시원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은 논골담길을 오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어느새 오후는 초저녁으로 기울고 있었다. 소금기가 묻어나는 비릿한 바람도 어쩐지 낭만적으로 다가오는 시간. 묵호등대에 기대어 동해의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잘 왔다.

벽화가 아닌 담화, 논골담

   
 
흔한 벽화마을과는 다른 논골담길은 무엇보다 마을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1941년 개항된 묵호항의 역사를 담화에 그려냈다. 황금기를 보냈던 묵호의 과거 모습과 현재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어 의미가 크다. 묵호등대 아래에는 아기자기한 카페도 있어 묵호항을 바라보며 쉬어가기에도 좋다. 모두 네 가지 방법으로 오를 수 있고 자세한 안내는 ‘논골담길’ 어플을 다운 받으면 볼 수 있다.


달리고 싶은 항구, 묵호항

논골담길에서 내려온 발걸음은 자연스레 묵호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논골담길의 비탈진 작은 집들에서 지친 몸을 쉬어가던 어부들도 아침이면 만선의 꿈을 품고 다시 묵호항으로 향했을 것이다.

동문산의 묵호등대에서 바라보던 항구의 모습은 가까이 다가가니 생각보다 더 깨끗하고 밝았다. 여느 항구 주변처럼 횟집과 건어물가게가 모여 있는 시장거리가 있었고 선착장 근처에는 투명한 몸에 필라멘트를 훤히 드러낸 전구가 무수히 달린 오징어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경매의 소란스러움이 지나간 오후, 묵호항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에 백미러에 담겼던 항구는 어쩐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휴일을 보내는 풍경이었다. 어느새 빠른 속도로 질주하던 차는 그 풍경을 놓칠세라 다시금  속도를 늦췄다.

바다가 보이는 묵호항에서 망상해변까지 차를 몰았다. 앞뒤를 막아선 그 어떤 자동차도 없는 한가로운 도로에선 호젓한 드라이브가 가능했다. 이대로 강원도의 낭만가도를 일주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최북단 고성에서 시작된 낭만가도는 속초와 양양 그리고 강릉을 지나 이곳 동해를 관통한다. 삼척을 끝으로 하는 이 낭만가도를 달린다는 것은 동해를 가장 제대로 만나는 법과 같았다.

망상해변

   
 
묵호항에서 북쪽으로 3km쯤 떨어져 있는 국민관광지로 ‘동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망상해변이다. 알맞게 자란 송림을 두른 해안선을 가진 이 해변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고운 모래밭을 가지고 있다. 해변의 길이가 5킬로미터에 달해 ‘명사십리 明砂十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바다, 감추해변

강원도하면 떠오르는 바다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동해에 사는 이에게 물으니 감추해변이라는 생경스런 바다 이름이 나왔다.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감추해변만의 조용한 분위기를 아끼는 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해변이라고 했다.

논골담길을 내려와 저물녘에 들른 감추해변은 동해다운 조금은 거친 파도와 새하얀 백사장, 갯바위까지 모두 노을빛으로 물들어버린 후였다. 말없이 바다낚시를 하고 있는 몇몇 사람들과 해변가를 산책하러 나온 마을 주민들뿐.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과연 감추어진 해변다웠다. 해변가에는 기묘한 모습으로 작은 절이 해풍을 맞고 서 있었다. 너무나도 작은 절이지만 일주문도 없이 해안가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 놀랍게도 이 절은 스님의 권유로 감추 지역에서 지병을 고치게 된 신라의 선화공주가 세운 절이라 고. 물론 설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거친 파도는 사찰 벽에 가 닿을 만큼 높았다. 더 이상 서두를 것도 없었다. 감추해변의 편평한 갯바위를 찾아 아예 눌러 앉은 저녁, 비로소 진짜 동해바다와 조우할 수 있었다.

 

해안선 드라이브, 새천년도로

   
 
고성에서 시작된 동해의 낭만가도는 삼척의 새천년도로에서 정점을 찍는다. 삼척 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이름처럼 새천년을 맞이하는 2000년에 만들어졌다. 하얀 파도와 푸른 바다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흙빛 바위는 새천년도로를 달리는 기쁨을 배가시킨다. 중간중간 차를 멈추고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쉬어가기에도 좋다. ‘소망의 탑’과 ‘조각공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아름다운 풍경에 사계절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지만 여름이면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음악회와 다양한 이벤트로 더욱 인기가 높다.

바다의 기억, 추암촛대바위

동해항을 지나 추암역에 가까워지자 거친 파도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추암촛대바위와 그 주변에 솟아오른 기암괴석들은 가장 동해다운 장관을 이룬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절경 중에서도 손꼽히는 이곳은 특히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가장 아름답다.

태양이 촛대바위 위에 걸리는 모습은 위대한 자연의 조화로움 속에 경이로움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준다. 촛대바위 주변의 기암괴석들에 다가가보니 오랜 시간 파도가 오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단단해 보이는 괴석들이지만 하층부는 물길 을 따라 움푹 패이거나 구멍이 나있기도 했다.

그것은 파도의 흔적인 동시에 오랜 시간이 흐른 흔적이기도 했다. 아주 먼 그 어떤 날의 아침부터 촛대바위 위에 걸렸다 이내 지평선 너머로 뜨겁게 사라지던 태양처럼. 바다는 그렇게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추암의 고즈넉한 고택, 해암정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생활할 때 지은 해암정은 그가 풍월로 여생을 보낸 곳이다. 그 후 화재로 타 버렸다가 1530년에 다시 지어졌다. 고즈넉한 멋이 있는 이 고택은 후에 귀양을 가던 송시열이 들른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더욱 완벽한 여행을 위한 가이드]

도심 속에 숨겨진, 천곡동굴

   
 
1991년 아파트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이 동굴은 국내에선 유일하게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동굴로 알려져 있다. 황금빛이 도는 천연기념물 황금박쥐가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던 곳. 천정에서 내려온 종유석과 바닥의 석순이 만나는 신비한 광경은 동굴의 자랑거리이다. 석회암 동굴과 함께 자연체험학습공원도 조성돼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강원도 동해시 동굴로 50.

바다 위의 화려한 휴가, 동해 크루즈

동해항에서 출발하는 DBS크루즈 페리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일본의 사카이미나토를 운항한다. 리조트와 같은 편안하고 세련된 시설로 바다 위에서 즐거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가족과 연인은 물론 대규모 단체 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타입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레스토랑과 사우나, 면세점까지 갖춘 대형 크루즈로 색다른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편리한 교통, 아이체크 현진호텔

묵호항과 묵호등대는 물론 무릉계곡과 감추해변까지 모두 15분 내에 이동이 가능한 아이체크 현진호텔. 저녁이면 먹을거리와 즐길거리가 밀접해 있는 동해 시내를 도보로 이용 가능하다.아늑하고 세련된 분위기와 함께 편리한 교통까지 갖추고 있는 아이체크 현진호텔에는 최대 4인까지 이용이 가능한 온돌방도 마련돼 있다. 강원도 동해시 한섬로 133-9.

 <프리랜서 김소연 기자>
<사진=여행매거진 GO-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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