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남일 아니다”…그럼 어떻게?

▲ 뉴시스

여전히 책임 입증은 피해자가 해야
초기 대응·증거 확보가 현실적 대안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조정중재원)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4만여 건에 달하는 의료분쟁 상담이 이뤄졌고, 2011~2013년 일어난 의료분쟁을 분석한 결과 81.1%가 의료진 과실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전문 의학지식으로 무장한 의사와 병원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최근 의료사고 피해자의 분쟁조정 절차를 돕는 이른바 신해철법이 통과됐지만 일각에서는 실질적 의료 사고 해결에 영향이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의료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요서울]이 의료사고 사례와 문제, 대처법을 살펴봤다.
 
#사례 1. 2013년 한미자 씨의 남편(55)은 신장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검사 결과 한 씨의 신장과 남편 신장이 잘 맞아 기증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렇게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잘 됐다는 집도의의 말을 듣고 치료를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복부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병원은 단순 섬망(헛소리·잠꼬대 또는 흥분·불안을 동반하는 의식 장애)증상이라며 남편을 침대에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의료진은 계속된 남편의 통증에도 진통제만 투여됐고, 결국 남편은 심정지 후 저산소성 뇌손상에 의해 식물인간이 됐다. 반면 이식받은 신장은 소변도 잘 보고 투석도 하지 않는 등 정상적이었다. 한 씨는 이 날벼락 같은 사고로 갑자기 식물인간이 돼버린 우리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며 울분을 터트렸다.
 
#사례 2. 김인숙씨의 남편(52)20여년 전 엡슈타인기형(일종의 심장병)을 진단 받았으나 특별한 치료 없이 공단에서 근무하며 잘 지냈다. 그러던 20129월경부터 숨이 차고 가슴이 자주 뛰어 6개월 뒤 심장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후 저혈압과 과민반응 증상을 보이며 상태가 계속 나빠졌다. 당시 의사는 발관(기관 내 튜브 제거)조치를 했으나 10여분 후 남편은 침대를 들썩이는 등 이상 반응을 보이다가 심정지가 왔다. 의사는 튜브 재삽입을 시도했으나 11여분이 지나서야 기관 삽관이 이뤄졌고 그 후로 남편은 사지가 굳어버린 채 아직도 누워만 있다.
 
이 같은 의료사고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고, 피해 당사자가 본인 자신이나 가족들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불안은 더하다. 직장인 정(31)씨는 만약 가족이나 주변 친구가 의료 사고를 당한다면 미치고 펄쩍 뛸 것 같다의사의 과실이 있다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고소를 한다고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실제 피해 환자의 의료소송 승소율은 약 1%에 불과하다. 게다가 소송하려면 평균 26개월의 소송기간, 소송비용 부담 등 환자 측은 막대한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진의 과실을 환자가 입증해야 하는 현 규정 때문에 환자가 의사와 병원을 상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12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 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조정중재원을 설립했다. 조정중재원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분쟁 조정 성립율은 94.1%에 달했다. 또 지난달에는 분쟁 신청만 하면 조정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개정안 신해철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울며 겨자 먹기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조치들이 근본적 방안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여전히 의료 피해자가 의사와 병원의 과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료사고 책임을 전환하는 법률(입증책임전환)은 지난 1994년 제14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후 20여년 동안 논의됐으나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이번 신해철법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공동대표는 환자 입장에서 소송비용이나 승소가능성을 따져볼 때 조정절차를 통한 해결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책임 입증을 피해자가 지도록 돼 있기 때문에 본질적인 제도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조정 중재제도를 이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도 의료 분쟁의 초점은 피해자 구제에 맞춰져야 함에도 현재 법과 기구는 단순 분쟁 조정에만 초점이 가 있다이는 마치 분쟁 조정만 들어가면 해결이 되는 것처럼 과포장돼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조정중재원의 평균 조정성립금액900여만 원이었다. 갑작스런 의료사고로 치료비, 간병비 등을 평생 부담해야 하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볼 때 900만 원은 초라한 금액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대처법은?
 
이런 현실에서 의료 사고에 부닥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신속한 초기 대응을 할 것을 주문했다. 발 빠르게 대처해 의료 기록, 진료 기록부 등의 사본을 챙기고, 사진을 찍거나 병력 차트 사본 등을 요청해 보관해둘 것을 당부했다.
 
사실 병원 측이 이 서류들을 내놓아야 할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최대한의 피해 구제를 위해 병원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강태언 사무총장은 병원 측 과실일 경우 문서를 위·변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고 발생 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대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고 직후 의사가 한 이야기 등은 피해 구제 해결에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진과의 대화, 주변 환자 등의 진술을 녹취하고, CCTV 영상도 병원 측에 요청해 확보하면 좋다. 사고 경위서도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보관해둬야 한다. 사고 개연성을 추측할 수 있고, 의료 기록 등과 일치하는지 대조 작업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요 진료 기록이 누락되지 않았는지 꼼꼼히 점검하고, 설사 병원 측이 과실을 인정, 위로하며 병원비 걱정 말라고 말하더라도 100% 그것만 믿고 있으면 안 된다고 강 사무총장은 조언했다.
 
다른 병원으로 이전하는 것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옮긴 병원에서 받은 검사, 진단, 수술 결과는 곧 1차 병원의 책임 여부를 규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타 병원 의료자문을 받아야 할 때도 있으니 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 만약 소송을 간다면 소멸시효 주의도 신경써야 한다. 환자 측은 의료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해야 배상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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