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20대 국회 개원식 연설에서 개헌을 촉구했고 16일엔 “가능하면 20대 국회 전반기에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서둘렀다. 그러나 20대 국회가 서둘러야 할 과제는 개헌이 아니다. 망국적인 ‘국회선진화법’ 개정이고 시급한 민생경제 살리기다.

국회선진화법은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5분의3 찬성을 요구, ‘과반 다수결’에 기초한 민주주의 원칙을 짓밟았고 19대 국회를 마비켰다. 이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개헌을 열 번 한다 해도 국회는 여전히 ‘식물 국회’를 벗어날 수 없다.

우리 헌법은 1948년 제정된 후 1987년 까지 39년 동안 무려 9차례나 개정되었다. 1952년 7월 1차 개헌은 대통령의 국회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꿨다. 이승만 대통령이 야당의 국회 다수의석 점유로 국회를 통한 자신의 재선이 어려워지자 직선제로 개헌한 것이었다. 9차례 개헌 중 한 차례만 빼고는 모두 개헌 주도세력에 의해 집권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따름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권력 독점을 위한 데 있었다.

20대 국회 의원들 사이에서 번져가는 개헌 주장 의도도 지난 8차례 개헌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권력 장악을 위한 방편이다. 새누리당은 2원집정부제 쪽으로 쏠리고 있다. 프랑스식 2원집정부제의 경우 대통령은 직선제이고 국방·외교만 담당한다.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되며 내치를 관리한다. 대통령과 총리 권력의 2원화이다.

새누리당측은 2원집정부제로 개헌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외치담당 대통령으로 내세우면 재집권할 수 있다고 계산한다. 그에 반해 문제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비롯한 야당 측은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지방분권형 권력구조를 선호한다. 현행 5년 단임제에 불만을 품고 4년 중임제로 기울어져 있는 민심에 편승하면 승산이 있다고 간주한다.

물론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된 지 29년이 지났으므로 새 시대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헌법만 내각제나 대통령 4년 중임제로 바꾼다고 해서 ‘동물 국회’ ‘식물 국회’가 ‘천사 국회’로 격상되는 건 아니다.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운동권 정치’ ‘장외 투쟁’ ‘제왕적 대통령’ 등의 후진적 정치의식이다.

미국의 경우 1787년 대통령중심제 헌법을 제정한 지 229년이 지났지만 한 차례도 개헌한 바 없다. 다만 부분적인 조항만 보충하는 ‘수정헌법’이 27차례 추가되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자유민주 정치의 표본이 되고 있다. 자유민주 정치의식이 체질화 되어 있어서다.

우리나라 권력구조는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제로 다시 대통령 중심제로 바꿔봤으나 아직도 ‘동물 국회’ ‘식물 국회’ ‘제왕적 대통령’ 그대로다. 헌법을 또 다시 옛날의 내각책임제나 대통령 중임제로 되돌린다 해도 먼저 정치의식이 선진화 되지 않는다면 선진정치는 기대할 수 없다. 잦은 개헌은 막대한 시간과 돈과 국력 소모일 뿐이다. 최근 국회의원을 상대로한 설문조사들에 따르면 개헌 찬성이 83% 내지 93%로 나왔다. ‘동물 국회’ ‘식물 국회’수준 의원들의 견해에 신경 쓸 필요 없다.

정치권은 개헌 타령만 할 게 아니라 비뚤어진 정치의식부터 개혁해야 한다. 먼저 망국적인 국회선진화법부터 개정해야 한다. 동시에 민생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대선 땐 4년 중임제 개헌을 공약했었지만, 개헌보다는 경제가 급하다고 강조한다.

개헌은 졸속이어서는 아니 되고 특정 정파의 대권을 위한 노리개로 이용되어서도 아니 된다. 정세균 의장의 ‘20대 국회 전반기 개헌’ 운운은 성급하다. 20대 국회는 ‘개헌 국회’가 아니라 ‘민생경제 국회’여야 함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 본면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